
북한군의 초기 간부양성은 ‘평양학원’과 ‘북조선중앙보안간부학교’ 등 전문기관을 통해 이루어졌다. 북한은 정규군의 건설을 준비하기 위하여 먼저 군과 정치 간부의 양성을 목적으로 학교의 창설을 검토하였다. 그…
북한군의 초기 간부양성은 ‘평양학원’과 ‘북조선중앙보안간부학교’ 등 전문기관을 통해 이루어졌다. 북한은 정규군의 건설을 준비하기 위하여 먼저 군과 정치 간부의 양성을 목적으로 학교의 창설을 검토하였다. 그…
북한주둔 소련군 제25군사령관 치스챠코프(Ivan M. Chistiakov) 대장은 1945년 10월 12일 북한의 사설 무장단체인 치안대와 적위대에 대하여 해산을 명령하고 그들이 무장했던 일제 병기와 군용물자는 소련…
해방 직후 북한에는 치안유지를 자처하면서 자생적인 무장단체들이 조직되었다. 즉, 민족주의 계열의 ‘자위대’(自衛隊), 국내파 공산주의자들이 조직한 ‘치안대’(治安隊), 소련군 진주 후 각 도청 소재지 중심으로 결성…
중국의 전통적인 방어전략을 이어받아서 모택동은 “타국이 침범하지 않으면, 이를 치지 않고, 타국이 침범하면 반드시 친다(人不犯我, 我不犯人, 人若犯我, 我必犯人)”는 방어전략을 기본 방침으로 정하였다. 또한, 중국…
중국은 그 어느 나라보다도 한국과 오랜 역사를 거쳐서 지리적 정치적, 군사적, 경제적으로 긴밀한 관계를 맺었다. 일제시기에도 좌우익세력을 포함한 한국의 독립운동세력은 중국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였고…
1949년 10월 2일, 소련은 중국정부 승인을 발표하고, 광동(廣東)에 있는 국민당 정부와의 외교관계를 단절하고 중화인민공화국정부와 대사를 교환하기로 결정하였다. 국민당 정부는 소련과의 외교관계를 단절할 것을 결의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냉전이 시작되면서 중국문제는 아시아에서 주요한 위치를 차지하였다. 미국은 극동에서 소련의 팽창을 막기 위하여 중국을 세계 4대강국의 위치로 끌어올려 전후 아시아의 세력균형을…
① 북한군 증강 지원 소련군의 철수발표 직후 북한의 김일성, 박헌영 일행은 모스크바를 방문하였다. 그의 소련행은 명목상 북한 경제지원과 군사지원문제로 논의한다고 하였지만 주목적은 무력통일론에 대한…
한반도에 출현한 38도선은 한민족을 가르는 남북의 분단선인 동시에 동북아시아에서 양대 진영의 분단선이었다. 모스크바 삼상회의에서의 한반도 문제를 구체화하려는 제1⋅2차 미⋅소 공동위원회가 결렬되면서 미국이 한반도 문제를…
소련의 제25군사령관 치스챠코프는 1945년 8월 24일 함흥으로 들어가면서 조선인민에게 낸 포고문에서 “당신들 수중에 행복이 있다”고 해방을 선언하면서도, 38선 분할에 관하여는 언급을 하지 않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