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경비대(朝鮮警備隊)는 대한민국 육군의 전신으로 최초 창설의 목적은 국립경찰의 보조였다. 조선경비대의 명칭도 최초에는 남조선국방경비대(南朝鮮國防警備隊)였다가 미 · 소공동위원회에서 소련측 대표가 국방이라는 용어 사용에 항의하자, 국방부를 통위부로 개칭할 때 조선경비대로 변경하였다.

조선국방경비대는 1945년 11월 3일 미군정법령 제28호에 의해 군정청내 군사를 담당하는 부서인 국방사령부가 창설되고, 미 제24군단 헌병사령관 쉬크 준장이 초대 부장에 임명됨에 따라 창설의 기틀을 마련하게 되었다. 1945년 11월 8일 국방사령부는 한국의 군사지도자 이응준(李應俊) 등이 제시한 국방계획안을 기초로 국방군(國防軍) 창설계획안을 수립하였다.

 

건군의 공로자 이응준 장군

 

국방군 창설 계획안에 의하면, 국방군은 국립경찰의 보강을 위해 창설하여 발전시킨다는 계획이었다. 병력 수는 전체 50,000명 수준으로 하고, 그 중에서 육군과 공군은 45,000명으로 하되, 육군은 3개 보병사단으로 된 1개 군단규모로 편성하고, 공군은 1개 수송비행중대와 2개 전투비행중대 및 근무부대로 편성하도록 계획하였다. 해군과 해안경비대는 5,000명으로 제한하였다.

미 군정에서는 한국군 창설계획을 맥아더 장군에게 발송하였다. 맥아더 장군은 군 창설 문제는 자신의 권한 밖의 일이라며 이를 국무․전쟁․해군부의 3부 정책조정위원회(SWNCC) 에 회부하였다. 이에 대해 동 위원회는 미 · 소공동위원회에서 정치적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군 창설에 관한 어떤 결정을 내릴 수 없으며, 그 대신 점령군의 경비 부담을 덜기 위해 경찰을 미군 무기로 장비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이러한 결정에 따라 주한미군사령관 하지 중장은 신임 국방부장 참페니(Arthur S. Champeny) 대령에게 보다 규모를 축소시킨 새로운 방안을 강구하라고 지시하게 되자, 참페니 대령은 군 기능 보다 경찰기능에 가깝게 병력과 장비를 축소한 경찰예비대(警察豫備隊) 창설안을 작성하여 건의하였다. 이때 건의한 경찰예비대 창설계획안이 바로 ‘뱀부계획(Bamboo Plan)’이다.

 

참페니(Arthur S. Champeny) 대령

 

뱀부계획(Bamboo Plan)은 국방군 창설 계획안보다 그 규모 면에서 훨씬 축소된 계획이었다. 뱀부계획에 의하면, 국방경비대는 각 도에 1개 연대씩 모두 25,000명 규모로 8개 연대를 편성할 계획이었다. 이에 대해 당시 국방사령부 고문으로 있던 이응준 장군은 뱀부계획 수립시 각도에 1개 사단 규모를 유지할 것을 조언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뱀부계획에는 경비대의 창설 방법에 대해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즉, 남한의 각 도에 1개 중대씩 먼저 8개 중대를 설치하되, 편성은 중화기가 없는 미군 보병 중대를 기준으로 장교 6명 사병 225명으로 편성하고, 장교는 중앙에서 양성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각 도에 중대를 편성할 때는 정원의 20%를 초과 편성하도록 하여 그 중대의 편성이 완료되고 훈련이 끝나면, 그 초과병력을 기간으로 다음 중대를 추가 편성하도록 계획하였다. 이와 같이 중대를 확대 편성하여 대대를 편성하고, 대대편성이 완료되면 다시 연대를 편성하여 각도에 1개 연대를 편성한다는 계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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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hey Network Architecture (JNA) 최종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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