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항공사관학교(陸軍航空士官學校)는 1949년 10월 1일 발족한 공군사관학교의 전신이다. 1948년 12월 1일 육군항공부대가 육군항공사령부로 정식 개편되자, 1949년 1월 14일 육군항공사관학교를 김포에 설치하게 되었다.

육군항공사관학교 창설에 따라 1949년 2월 15일 초대 교장에 김정렬(金貞烈) 중령이 임명되었고, 그 해 3월 15일 제1차 소집학생에 대한 입교가 있었다. 입교학생은 육군 이등상사(二等上士) 민영락(閔泳洛) 등 45명이었다. 이들은 부대 현역 하사관 중에서 성적이 우수하고 지도력이 있는 자들 가운데 선발되었다. 항공교육에 소집된 학생들은 1개월간의 교육훈련을 마친 후, 4월 15일 42명을 육군항공소위로 임관시켰다.

이로써 육군항공의 장교 수는 150명으로 늘어났다.97) 항공사관학교는 김포에서 5월 31일 김포비행장 내에 있는 병사로 이동한 후인 6월 10일, 제1기 간부후보생으로 김중보(金重寶) 등 97명이 입교하여 교육을 받았다. 교수부장에는 박원석 대위, 생도대장에는 서한호 대위, 중대장에는 전명섭(全明燮) 중위와 이갑록 중위가 보직되었다.

간부후보 제1기생으로는 최용덕(崔用德), 김정렬, 장덕창(張德昌), 박법집(朴範集), 이근석(李根晳), 김영환(金英煥) 등이 있었고, 제2기에는 김신(金信), 장성환(張盛煥), 박원석(朴元錫), 장지량(張志良) 등이 있었고, 제3기에는 전명섭, 오점석(吳占石), 윤응열(尹應烈) 등이 있었고, 제4기에는 김성룡(金成龍)과 김병택 등이 있었고, 제5기에는 김두만(金斗萬), 김성배, 전봉희 등이 있었다.98)

정부 수립 이후 육군항공사관학교(공군사관학교 전신)는 1949년 6월 10일 입교한 제1기 및 그 후 입교한 제2기는 2년제, 1951년 11월 10일 입교한 제3기는 3년제, 그리고 1952년 5월 5일 입교한 제4기부터는 오늘날과 같은 4년제 교육을 받게 되었다.

제1기 사관생도들은 20세 미만의 중학교 6학년 졸업생 및 재학생 중에서 우수한 자를 선발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교육 중이던 제1기 사관생도 36명은 1949년 6월부터 3차에 거쳐 제15교육비행전대에서 F-51 지상교육을 받았다. 육군항공사관학교는 정부수립 이후 항공부대가 대한민국 공군으로 독립되면서 1949년 10월 1일 대한민국 공군사관학교(空軍士官學校)로 정식 개칭되었다. 당시 공군사관학교 교장에는 이근석(李根晳) 대령이 임명되었다가, 1950년 5월14일 최용덕 준장으로 교체되어 6․25전쟁을 맞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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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hey Network Architecture (JNA) 최종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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