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날.

올해는
다른 큰 훈련에 참가하는 한 개 포병대를 제외하고
두 여단의 포병대가 연합으로 동원훈련을 진행하게 되었다.

동원훈련에 대한 준비와 더불어, 부사단장 훈련 사열 준비를 시작했다.

건물은 같은 건물 이지만 구성에 변화가 있었다.
하지만 예비군이 쓰는 막사는 변함이 없었기에 준비하는 데 문제는 없어 보였다.

이날은 상용 트럭을 하나 배차 내서
화전동 포병대의 물자도 실어서 훈련장으로 갔었다.
첫날은 퇴근이었어서, 준비를 하다가 주둔지로 복귀를 했다.

둘째날, 이 날부터 마지막 날까지는 나도 숙영하는 형태로 참가한다.
오전에는
통신반장(장기), 2포대장(단기)와 함께 훈련장으로 가게 되었다.

이동하기 전에 필요한 물자를 구매했다.
종이컵, 믹스커피, 간식(뻥튀기).
작년에 엄청 많이 썼던 기억이 있었는데,
올해는 아예 고려사항에 없었기에… 급하니 내 사비로 구매했다.
이러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 좀 많이 급했었나 보다.(내 스스로가)

오후에는 부사단장 훈련 전 사열에 동참했다.

화포를 대형대로 움직여놓고, 각 교장에 교보재를 갖다놓았다.

한창 사열이 진행 중일 때, 어라?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사열이 마무리 중일 때
포병대 전 병력을 이끌고 나가서 모든 장비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훈련기간 내내 1톤 상용트럭을 운전할 수 있게 되어서
20시 언저리까지
훈련교장을 정리하고 우천시 교육을 할 수 있도록 물자를 끊임없이 운반했다.

23시 반이 넘을 때까지
현역과 비상근이 남아서 내일 훈련 시 부족한 부분, 미처 못챙긴 부분에 대해 토의하고
강제로 마무리를 지었다.

훈련 첫째 날.
여지없이 아침부터 비가 펑펑 내렸다.
오전 뉴스가 온통 폭우소식으로 도배될 정도로 많이 내렸다.

나의 임무는 막사 앞 인원 안내와
생활관 총기불출 총괄 보조(총괄은 포병대장님).

하지만 엄청난 폭우로 인해
아침 입소 준비부터 크고 작은 이벤트들이 발생했다.

그 중에 가장 큰 일은, 포병대장님 상용차의 시동불능.
폭우를 뚫고 안보관으로 갔다.
시동이 그지같은 진동만 일어나고 걸리지 않는 것이다.

이럴 때는 어쩔 수 없지.
옛날 방법으로 열심히 시도해서 시동을 걸어놨다.

또 비를 뚫고 안보관 안으로 들어섰는데
두 여단장님과 다섯 대대장님들이 다 여기 계셨다.

다시 지휘통제실로 돌아와 우리여단 작전과장님과 상황유지를 하고 있었다.

이때 아주 웃기지도 않은 일이 벌어졌다.
각 여단의 주무 지방 병무청이 다른 곳이었는데
두 곳의 입소 통제가 대놓고 다른 것이다.

행정력을 동원한다 – 라는 말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목격할 수 있는 이벤트였다.

하지만, 결국 훈련입소는 절차대로 진행되었고
이제 총기불출이 어떻게 되고 있는가 보러 갔었다.

3층 생활관 중앙으로 갔을때,
단기비상근 포대장, 포반장 분들께서 부드러운 절차대로 총기불출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바로 증편식 이벤트를 해결하러 안보관으로 향했다.
증편식이 진행되어야 하는데, 태극기가 없었다.

태극기는 훈련 물자에 포함해서 보냈는데, 깃대를 다시 주둔지로 보내버린 것인다.
사전에 인사장교님과 연락이 되었어서 깃대를 다시 받았다.

태극기를 조립해놓고, 다시 생활관으로 돌아와
여단기를 포함한 여섯개의 기를 다 챙기고
인원들을 챙겨서 안보관으로 행했다.

이미 진행되고 있는 부대의 증편식의 마지막을 시작으로
자리를 배치하고 기수와 각 포대장의 위치까지 잡았다.

포병대장이 전체 지휘를 하기에 포병대기와 함께 하고
전포대장이 1포대기와 함께 해야 했는데 행정업무로 너무 바빠 참석하기 힘들다 하여
1포대 깃발에는 다음서열은 내가 함께 하게 되었다.

내가 무리해서 이 모든 기를 가져온 이유가 바로 증편식때 모든 포대의 기를 들게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부대가 증편되었는데, 부대가 없다는 것은 잘못되었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증편식이 끝나고, 저녁식사를 하고
주특기 교육이 시작되었다.

이번에 내가 맡은 교육분과는 측지.
측지기능이 활성화 디지 않은 포병대에서
이제까지는 포병여단에서 교관을 협조했는데, 이번에는 협조되지 않아서
전포 장비이자 측지장비를 조작할 수 있는
‘전포사격통제부사관’인 내가 측지 교관을 맡게 되었다.

현역 시절에
전쟁이 발생되면 써먹을 기술이라고
반 강제로 익혀두라고 했던 원사 소대장님께 감사했었던 잠시였다.

나의 교육 컨셉은
힘들지 않고 쉽게 필요한 것만 가르친다. 였다.

1일차 교육은 바로 오픈채팅으로 교육평가를 받았다.
다행히 나쁜말은 없고, 열심히 한다는 칭찬을 들었다.

1일 교육이 끝나고,
결산을 하러 갔다.
다음날 교육도 우천시에는 실내교육으로 한다는 방침으로 결산은 마무리 되었다.

2일째, 비가 어제보다 더 내렸다.
새벽에 걱정이 되어 예비군들 차량이 주차되어 있는 곳으로 순찰을 갔다.
어제는 우산만 쓰고 나갔다가 비를 쫄딱 맞아서
오늘은 트럭을 타고 순찰을 돌았다.

2일차에도
오전 교육을 실시하고, 오후에는 전투휴무와 안보교육, 저녁식사를 실시했다.

그런데??
저녁식사 도중 비가 완전히 그치는 것이 아닌가?

여단장님이
모든 교관을 집합시켰다.
비가 그쳤으니 야외교육으로 전환하라고.

우리가 통솔하는 병력이 현역이었으면 아무 문제 없이 모두 ‘YES’라고 했겠지만,
우리가 지금 교육하는 대상은 ‘예비군’.
일단 사격지휘, 통신, 전포 교관들과 함께 연병장으로 나갔다.

다들 할 수 있는지, 없는지 확신이 없었기 때문에
현장으로 나갔다.
여기서 내가 할 일은 최종 답안을 결정하게끔 유도하고, 안되면 내가 결정을 내려서 다음 행보를 이어지게 하는 것.

나는 연병장으로 내려가면서
내 교육을 어떻게 할 지 마스터 플랜을 이미 짜놓고 나갔다.

1. 장비 실습을 할 수 있어야 한다
2. 예비군들이 하나라도 배울 수 있어야 한다
3. 휴식은 편해야 한다
4. 이 모든 조건을 다 지키면서도 야외교육이어야 한다

이 모든 조건을 만족시킬 수 있는 플랜이었다.

이렇게 2일째의 야외교육까지 마무리 되었다.
다시 교관을 집합시킨 여단장님.
“내일 오전 8시 40분까지 전 분과 야외교육 준비를 다 끝내라.”

어허… 하면서 잠자리에 들었다.

3일차.
나는 아침부터 바뻤다.

1. 측지교장 장비 및 의자 세팅
2. 사격지휘 교보재 트럭으로 날라주기
3. 전포 물자트럭 전포교장으로 움직여주기
4. 통신 물자 연변장으로 날라주기

이걸 다 해주다 보니 어느덧 8시 30분,
뭐라도 먹어야 힘을 낼 수 있기에 3층 행정반을 둘러봤는데
비상용 전투식량(이라고는 하지만 병력들도 훈련 준비할 때 먹으려 했는데 시간없어 못먹은)이 눈에 띄었다.

일단 까서 데운 다음에, 일단 들이붓기 시작했다.
시간이 없었으니까.

일단 먹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측지 인원들 내려보내도 되냐는.

나는 5분만 달라고 했다. 밥먹고 있다고.
다행히 측지 인원들을 제일 마지막에 내보내주셔서
교육장소에 지각하진 않았다.

3일차 야외교육 또한 최대한 많은 쉬는 시간을 주면서도
방향틀의 핵심기능, 정확한 방열을 할 수 있게 알려주는 것. 이게 3일차의 목표였다.

자침방열을 실습하면서, 충분한 쉬는 시간을 주다가
이번 교육의 피날레를 찍는 사격임무 시범식 교육이 남았다.

관측-사격지휘-측지-전포-통신이 어우러지는 한번의 사격임무.
이를 끝으로 동원훈련의 교육은 마무리되었다.

이제 관건은 훈련 복귀.
오후부터 바뻤다.
총기반납과 동시에 기술검사, 퇴소식 및 물자적재 및 인원 복귀.
다들 바쁘게 일정을 소화하는 중 이벤트가 발생했다.

복귀차량 좌석수보다 복귀인원이 더 많아진 것.
오잉?
이게 어찌 된 일인가 봤더니
우리와 같이 하는 여단에서는 예하대대에서
조금씩 조금씩 지원인력이 늘면서 최종적으로 인원이 초과된 것이었다.

그래서 나도 상용1톤으로 복귀할 때
5명 풀로 다 채우고 물자적재에 개인짐까지 때려박고 복귀했다.

이제 초보운전을 벗어난 수동 미션 운전자인 나로서는
상당한 부담이 있었지만(게대가 금요일 퇴근시간에 딱 마주쳤어서 더 부담 백배)
천천히 또는 빨리 주행해서 안전하게 복귀했다.

그런데, 포병대장님이 늦게, 복귀도 못하고 계신게 아닌가.

알고 봤더니 복귀운행하자마자 첫 오르막길에서 뒷바퀴 너트가 느슨해져서 사고가 날 뻔했다고 했다.
천만 다행으로 사고나 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이렇게 이벤트를 확인하다 보니,
훈련 복귀날 퇴근은 20시 30분. 와이프와 애기가 위병소로 데리러 나와서
퇴근은 편하게 했다.

훈련 3+1일. 토요일.
출근을 하고 있는데 위병소에서 어떻게 왔냐고 물어본다.
아마도 면회객으로 보였나 보다.
웃으면서 “출근~”이라고 하면서 출입증과 보안어플을 켜서 보여주었다.

– 다음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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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장기 비상근예비군 1기. 이 제도가 어떻게 되는지 두 눈으로 보기 위해 다니던 직장을 때려치고 다시 한 번 군에 투신한, 두번째 복무를 불태우는 중년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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