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지 아니하면
한용운
나는 잠자리에 누워서 자다가 깨고 자다가 깨다가 잘 때에,
외로운 등잔불은 각근(恪勤)한 파수꾼처럼 온 밤을 지킵니다. 당신이 나를 버리지 아니하면,
나는 일생의 등잔불이 되어서
당신의 백년을 지키겠습니다.
나는 책상 앞에 앉아서 여러가지 글을 볼 때에, 내가 요구만하면,
글을 좋은 이야기도 하고, 맑은 노래도 부르고, 엄숙한 교훈도 줍니다.
당신이 나를 버리지 아니하면, 나는 복종의 백과 전서가 되어서 당신의 요구를 수응하겠습니다.
나는 거울에 대하여 당신의 키스를 기다리는 입술을 볼 때에,
속임이 없는 거울은 내가 웃으면 거울도 웃고, 내가 찡그리면 거울도 찡그립니다.
당신이 나를 버리지 아니하면, 나는 마음의 거울이 되어서,
속임없는 당신의 고락을 같이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