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극동방위를 위해 채택한 도서방위전략(off-shore defensive perimeter strategy)은 알류산열도에서 일본⋅필리핀을 연결하는 도서방위선(島嶼防衛線)상의 도서들이 제공하는 해⋅공군기지를 활용하여 전략공군과 핵무기로 전쟁을 수행해 나간다는 개념이다. 미국의 극동군은 소련과 전면전 발생시 최초에는 수세적인 방어자세를 취하다가, 태평양 지역의 일본 및 필리핀에 산재해 있는 미국의 해⋅공군 기지를 이용하여 적의 공격을 이 선에서 격퇴한 후, 공세이전으로 전환하여 아시아 대륙으로 공격을 실시해 나간다는 것이다.
미국의 군부가 극동에서 도서(島嶼)를 연결하여 방위선을 구축한다는 개념은 1947년 중반 대소 전쟁계획에 반영되었다. 맥아더는 1948년 3월 일본 동경을 방문한 소련전문가 케난에게 극동의 안전보장 개념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미국의 방위전(防衛戰)은 남북아메리카 서해안에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아시아대륙의 동해안에서 싸우는 것이며, 필리핀에 있는 방위거점을 북쪽으로 더 추진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U자형(U-shaped Area)으로 알류산열도-미드웨이-마리아나 군도-필리핀의 클라크 기지로 연결되는 선이다. 이 방위선에서는 오키나와의 미 공군 비행장이 그 전진기지로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될 것”51)이라고 다음과같이 말했다.
아시아의 공격에 대항하는 우리의 방어진은 미국 대륙 서해안에 근거하고 있었다. 태평양은 가능한 한 적의 접근로로 간주되었다. 이제 태평양은 앵글로-색슨의 호수가 되었고, 우리의 방어선은 아시아 대륙의 해안을 둘러싼 섬들의 연결선을 지나가고 있다. 그것은 필리핀에서 시작하여 우리의 주요한 요새인 오키나와를 포함하여 류큐열도를 지나간다. 그 다음에는 일본과 알류산 열도로 휘어지고 알래스카로 이어진다.52)
맥아더는 일본 본토에는 미군기지를 설치할 필요가 없고, 북위 29도 이남의 류큐 열도에 대해 미국이 영유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말하였다.53) 맥아더가 도서방위선을 강조한 것은 그곳에 미 국방의 제1선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고, 또 아시아대륙을 방어할 때의 거점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전략상의 이점 때문이었다.
맥아더는 1949년 1월 19일 주한미군 철수연기에 대한 의견이 포함된 회신에서 최근 중국정세와 관련하여 “해군력과 공군력에 의한 해양수송선(Sea Lane)의 완전한 지배야말로 일본을 미국에 붙들게 하는 장기적 포석”이 될 것이며, 일본에 대해서는 “도서방위선을 중심으로 해⋅공군력을 이용해 그 방위를 보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였다.54)
미국 합동참모본부도 이 도서 방위개념에 동의하였다. 합동참모본부는 서태평양 지역의 방위를 최소비용으로 달성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일본 본토 외의 기지를 사용하여 전략적 항공작전을 실시할 수 있다고 지지하였다.55)
미국 국무부도 도서방위선 구상을 지지하였지만, 맥아더나 합동참모본부의 주장과는 다소 차이가 있었다. 미 국무부는 중국대륙에 대한 미국의 개입이 청산된 후, 도서방위선은 아시아 대륙의 민족주의가 소련의 팽창주의에 대항할 받침대 역할을 할 것으로 예측하였다.56)
미국의 국무부⋅맥아더⋅합동참모본부는 아시아대륙에서 소련의 확장에 대처해야할 지상전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극동방위는 일련의 도서방위선 상에서 해⋅공군의 우위 군사력을 활용한다는 개념을 갖고 있었다.

미국 제52대 국무장관 애치슨(Dean G. Acheson, 1890~1971)
미국의 도서방위전략이 대외적으로 공포된 것은 1950년 1월 12일 애치슨(Dean G. Acheson) 국무장관이 전국기자클럽(National Press Club)에서 행한 ‘아시아의 위기(Crisisin Asia)’라는 연설에서 미국의 방위선(defensive perimeter)은 알류산 열도-일본본토-오키나와-필리핀을 연결하는 선이라고 밝히면서 한국과 대만(臺灣, Formosa)을 이 방위선에서 제외시켰다.
미국의 극동 방위선은 알류산(Aleutian) 열도에서 일본을 거쳐 오키나와로 연장되는 선에서 다시 필리핀을 연결하는 선으로 결정한다. 이 방위권내의 태평양지역의 군사적 안전보장에 관한 한 이 방위권외에 속하는 모든 지역에서 야기되는 군사적 공격에 대하여서는 아무도 이를 보장할 사람은 없다 …… 먼저 공격을 받는 국가에 대해서는 차후 UN헌장에 의하여 전 문명세계의 원조에 의존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57)

애치슨 국무장관이 발표한 미국의 극동방위선
애치슨 선언은 한국과 대만이 미국의 방위선 밖에 놓여 있는 것이 문제가 되었다. 그러나 이 지역이 공격을 받을 경우 최초의 저항은 당사국 국민이 부담하고, 차후에는 유엔헌장에 의거하여 전 세계가 개입할 것이라는 연설 내용에서처럼 이 두 지역이 전적으로 무시된 것은 아니었다. 단지 북한을 비롯한 공산측이 이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달려 있었다. 이 의문은 6⋅25전쟁이 발발했을 때 미국을 비롯한 자유 우방 16개국이 한국을 적극 지원하게 됨으로써 풀리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