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사대(海事隊)는 광복 직후 귀국한 손원일(孫元一)과 정긍모(鄭兢謨)에 의해 설립된 군사단체이다. 이 두 사람은 광복 직후 해군을 만들어 보겠다는 뜻을 갖고 각각 동지를 모집하던 중 1945년 8월 21일 우연히 만나게 되어 해군 건설을 위해 서로 협력하기로 하였다.
1945년 8월 16일 중국 상해(上海) 중앙대학 항해과를 졸업하고 유럽에서 활동한 후 만주에서 귀국한 손원일은 윤치창(尹致昌), 민병증(閔丙曾), 한갑수(韓甲洙), 김동준 등과 함께 서울 안동교회(安東敎會)에서 해군 건설을 위해 동지와 대원을 모집하였다.
이때 일본에서 일등기관사의 자격을 획득하고 해방 전에 귀국해 있던 정긍모는 서울에서 홍순진, 서상웅, 오학철 등과 함께 뜻 있는 동지들을 규합하고 있던 중 권태춘, 이시정, 민흥기 등을 알게 되었다.
양측은 서로 같은 취지의 벽보를 부친 것이 인연이 되어 손원일과 정긍모는 1945년 8월 23일 안동교회에서 해사대를 조직하고 해군 건설을 위한 첫 발을 내딛게 되었다. 8월 30일에는 해사대 본부를 서울 종로구 관훈동에 위치한 구 표훈전(表勳展)으로 옮겼다. 그 후 해사대는 80여명을 선발하여 70일간의 해양기술에 관한 교육과 훈련을 시키기로 하고 각 부서별로 책임자를 임명하였다. 손원일은 항해과(航海科)와 해사대 전체 운영을 맡고, 정긍모와 한갑수는 기관을, 윤치창은 영어를, 김동준은 훈련을, 민병증은 행정을, 김영철은 항해술을 각각 분담하였다.
해사대는 일시 건국준비위원회에 가입하였으나, 1945년 9월 9일 남한에 진주한 미군이 군정을 선포하자, 9월 30일 건국준비위원회와의 관계를 끊고 기반을 강화하기 위하여 구 교통국 해사과 산하단체였던 조선해사보국단(朝鮮海事保國團)의 대표인 석은태(石銀泰)와 상의하여 두 단체를 합치기로 하고 명칭을 조선해사협회(朝鮮海事協會)로 정하였다. 새로 발족한 조선해사협회는 본부를 관훈동구 표훈전에서 회현동(會賢洞)에 있는 조선해사보국단 사무실로 이전했다. 그 후 조선해사협회는 미군정과 몇 차례의 협의를 거쳐 약 200명 규모의 해안경비대를 조직할 것과 본부를 진해에 설치할 것에 합의하고, 1945년 11월 11일 해안경비대를 창설하고 그 명칭을 해방병단(海防兵團)이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