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해안경비대에서 해군으로 독립한 해군부대들은 각종 법적 근거를 통해 설치되었다. 여기에는 1949년 5월 5일 공포된 해군사관학교령(대통령령 제87호)을 비롯하여 해병대령(대통령령 제88호), 5월 7일 해군기지설치령(대통령령 제100호), 그리고 6월 25일 통제부직제령(대통령령 제135호)과 경비부직제령(대통령령 제136호) 및 1950년 3월 2일 해군기지법(법률 제102호) 등 해군 관련 법규였다.

1949년 2월 14일 해군은 인천기지에 제1정대, 부산기지에 제2정대, 목포기지에 제3정대, 진해기지에 훈련정대를 설치하였다. 제1정대는 서해 38도선으로부터 군산, 제2정대는 동해 38도선으로부터 진해, 제3정대는 군산으로부터 여수, 그리고 훈련정대는 여수에서 진해에 이르는 해상을 경비하는 임무를 수행하였다. 그 해 4월 15일에는 인천에 제2해군병원이 설치되었다가 5월 15일 인천 해군병원으로 개칭되었다. 1949년 6월 1일에는 진해특설기지(鎭海特設基地)를 진해통제부(鎭海統制府)로 개편하고, 각 해군기지도 해군경비부로 개편하였다.

 

묵호경비부

 

해군의 요람지였던 진해특설기지에는 통제부가 설치되어 사령장관이 취임하였다. 진해통제부 예하에는 진해해군병원, 조함창, 항해 · 기관 · 통신 · 공작 · 경리 · 위생학교 등 6개 학교를 두었다. 통제부사령장관은 군항구역의 방어를 위하여 진해만 해역을 3개 구역으로 구분하여 경비와 출사(出師)에 관한 임무를 수행하였다. 해안경비대 이후 해군기지로 사용되던 목포․포항․묵호 등 각 기지에 설치된 경비부(警備府)에도 경비부사령관이 임명되어 부대를 지휘하였다.215) 경비부사령관은 육상과 해상으로 경비책임구역을 확정하여 맥아더 라인 내 불법선박의 침입방지 등 연안경비 임무를 수행하였다.

 

목포경비부

 

이렇듯 해군은 1949년 6월 1일을 기준으로 하여 해군본부 예하에 진해통제부를 비롯하여 인천경비부 · 목포경비부 · 묵호경비부, 부산기지 · 군산기지 · 포항기지, 제1정대 · 2정대 · 3정대 · 훈련정대, 해군사관학교, 인천해군병원, 해병대를 두게 되었다. 1950년 4월 15일에는 부산기지와 포항기지를 해체하여 부산경비부와 포항경비부를 창설했다.

 

진해 해군통제부

 

한편 그동안 사용해 오던 고유명사로 된 함정 이름을 1948년 8월 30일부로 숫자로 된 번호명칭을 추가 제정하여 병행하여 사용하게 되었다. LCI와 YO 함정은 100단위, JMS 함정은 300단위, 그리고 YMS 함정은 500단위를 부여하여 운용하였다. 6․25전쟁 당시 해군은 총참모장 손원일 소장(미국 출장 중)을 비롯하여 총참모장 대리 김영철 대령, 인사국장 김일병 대령, 작전국장 박옥규 중령(미국출장 중), 작전국장 대리 김용호 소령, 경리국장 김경선 중령, 함정국장 이종간 중령 등이 보직되어 있었다. 예하부대 지휘관에는 진해통제부사령관에 김성삼 대령, 인천경비부사령관에 유해거 중령, 목포경비부사령관에 정긍모 대령, 군산경비부사령관에 김종기 소령, 포항경비부사령관에 남상휘 중령, 묵호경비부사령관에 김두찬 중령이 보직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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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hey Network Architecture (JNA) 최종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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