錯認착인
한용운
내려오셔요 나의 마음이 자릿자릿하여요 곧 내려오셔요
사랑하는 님이여 어찌 그렇게 높고 가는 나뭇가지 위에서 춤을 추셔요
두 손으로 나뭇가지를 단단히 붙들고 고이고이 내려 오셔요
에그 저 나무 잎새가 연꽃 봉오리 같은 입술을 스치겠네
어서 내려 오셔요
‘녜녜 내려가고 싶은 마음이 잠자거나 죽은 것은 아닙니다마는 나는 아시는 바와 같이 여러 사람의 님인 때문이어요 향기로운 부르심을 거스르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고 버들가지에 걸린 반달은 해쭉해쭉 웃으면서 이렇게 말하는 듯하였습니다
나는 작은 풀잎만치도 가림이 없는 발가벗은 부끄럼을 두 손으로 움켜쥐고 빠른 걸음으로 잠자리에 들어가서 눈을 감고 누웠습니다
내려오지 않는다던 반달이 사뿐사뿐 걸어와서 창밖에 숨어서 나의 눈을 엿봅니다
부끄럽던 마음이 갑자기 무서워서 떨려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