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선물,
내 아이
유아세례 전 부모와 대부모를 위한 길잡이

 

내 안에 머물러라.
나도 너희 안에 머무르겠다.
요한복음 15,4

 

아이를 통해 가족은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인 예수님의 부활은
날마다 우리의 삶을 새로워지게 만듭니다.
오늘도 당신 아이와 가족의 부활을 축하합니다.

 

 

 

 

 

어린 자녀를 위한 기도

하느님 아버지,
당신의 사랑으로 저에게 온 (               )을/를
평생의 모든 삶 안에서, 매일의 일산 안에서 보호해 주십시오.
진지한 호기심으로 무엇인가 탐구할 때,
놀이 안에서 기쁜 미소를 보일 때,
부모나 어른들의 사랑과 보호아래 행복할 때,
맛있는 음식에 감사할 때,
어두운 밤, 잠자리에서도,
세상의 모든 위험 앞에서 두려울 때도
하느님 제 아이 (               )을/를 당신 가슴에 품어주십시오.
(               )의 삶의 모든 것 안에 항상 함께 계시어
당신이 빚으신 모습대로
나쁜 것은 버리고
선하고, 올바른 것들은 잘 받아들여
올곧고 온유한 사람으로 자라도록 이끌어 주십시오.
겸손하고,
지혜롭고,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사람으로 성장하도록 도와주십시오.
그래서 하느님의 깊은 사랑을 잘 깨닫고
그 사랑을 삶 안에서 대하는 모든 이에게 전하는
귀한 하느님의 사람이 되게 해 주세요.
저는 미약하고 부족하지만
제 아이를 사랑하는 오 마음으로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과 자비를 청합니다.
아멘.

 

 

 

 

 

아이들에 관하여

우리의 아이이지만 우리의 것이 아니다.
아이들은 아이들이 사는 삶의 딸과 아들들이다.
우리를 통해 세상에 왔을 뿐 우리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니며
우리와 함께 있지만 우리에게 속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사랑을 줄 순 있지만
우리의 생각을 강요할 순 없다.
아이들은 스스로의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몸의 집을 줄 순 있지만 영혼의 집을 줄 순 없다.
아이들의 영혼은 우리의 꿈에서라도 찾아갈 수 없는 미래의 집에 머물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이들을 닮으려 애써볼 순 있지만
아이들로 하여금 우리를 닮게 만들 순 없다.
삶이란 뒷걸음질 치며 어제로 향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활이며
아이들은 우리를 통해 앞으로 나아가는 살아있는 화살이다.
활을 쏘시는 그분은 능하신 힘으로
활시위를 당겨 영원의 여정을 행해 겨누고
그분의 화살을 멀리 빠르게 날리신다.
그러니 우리는 그분의 손에 기쁘게 맡겨야 한다.
그분께서는 날아가는 화살을 사랑하시듯
머물러 있는 활도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칼릴 지브란(1883 레바노 출신)
영성시인, 철학가

 

 

 

 

 

하느님의 선물, 내 아이

어느 날, 하늘나라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수호천사들끼리 회의가 열렸다. 이제 곧 한 아이를 세상에 보내야하기 때문이었다.

“이 아이는 너무나 사랑스러워서 헤어지기가 아쉬울 지경이에요.”
“걱정 마세요. 이 아이의 수호자인 천사님이 함께 가 늘 돌보실 거잖아요.”
“그런데 부모들이 이 아이의 진가를 알아보지 못하면 어쩌지요?”
“그건 저도 걱정이네요.”
“무엇보다 걱정인 것은 이 아기가 새로운 지상의 삶에 적응하기까지 부모가 인내심을 가지고 지켜봐 줄지 여부에요.”
“그러게요. 그때까지 아이는 분명 어른들이 이해할 수 없는 방법으로 표현하고 지치게 만들면서 자신을 드러낼 텐데요.”
“하지만 부모가 꾸준한 인내심을 가지고 사랑으로 아이를 살핀다면 아이는 곧 본연의 모습을 보여줄 거에요.”
“그러면 부모는 누구로 정하지요?”
“그건…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이지요.”

회의를 마친 수호천사 대표가 아이를 안고 하느님 앞에 나아갔다.

“하느님, 이제 이 아기가 세상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이 아이에게는 너그러운 배려심과 한없는 사랑, 그리고 따뜻한 인내심을 가진 부모가 필요합니다. 저희 수호천사들은 이 아이가 좋은 부모 밑에서 보호받으며 지금의 아름다운 영혼을 그대로 간직하기 바랍니다. 그래서 청합니다. 부디 하느님을 대신해 이 아기를 보살펴줄 좋은 부모를 찾아주세요.”

그러자 하느님께서 인자하신 미소로 대답하셨다.

“걱정 말아라. 내가 이미 보아둔 이들이 있다.
그들은 아이를 품고 키우며 내 손길을 알게 될 것이다.
부족한 부분이 있더라도 아이와 함께 자랄 것이고
이 모든 과정을 통해 이 아이는
사랑이 넘치고 신념이 가득한,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보물이 될 것이다.
그리고 내가 맡긴 이 아이가
나의 특별한 선물임을 알게 될 것이다.
모든 것은 나의 뜻대로 이루어지고 있다.”

 

 

 

 

 

나에게 온 하느님의 선물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사야할 물건도 많았고, 저축이 충분한지도 살펴야 했으며, 직장, 육아, 가사와 같은 현실문제에 맞딱뜨려야 했다. 모든 건 돈으로 연결되었고 아이를 향한 마음은 기쁨 보다는 걱정이 훨씬 컸다. 모든 건 돈으로 연결되었고 아이를 향한 마음은 기쁨보다는 걱정이 훨씬 컸다. 풍족한 환경을 마련하지도 못했고 세상은 살별했으며 나는 내 앞가림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이 와중에 욕심도 자라났다. 내 아이의 이 시기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이유도 한몫 했다. 유명인 누가 쓴던 용품, 생후 몇 개월부더 시작하는 영재교육, 엄마들 사이에 유행하는 물건들, 심지어 어린이집에 보내는 아이의 옷 보랜드까지. 이런 커다란 쳇바퀴에 나는 갇혀 있었다.

그 와중에 제일 괴로웠던 것은 내 아이가 어떤 여건 때문에 다른 아이들이 누리는 무언가를 누리지 못하는 것이었다. 누구누구가 쓰는 값비싼 유모차를 내 아이가 차지 못하면 아이는 순식간에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하는 것처럼 최급받곤 했다. 아이를 향한 나의 사랑이 보잘 것 없어지는 순간이었다.

이 시기만 견디면 나아지겠지, 이것까지만 무리하고 다음부턴 아끼자 마음을 먹어도 아이는 자라면서 계속 관심을 필요로 했고 아이에게 꼭 필요한 것들도 줄어들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늘어만 갔다.

내가 어떤 노력을 해도 아이에게 완벽한 것을 줄 수 없다는 사실을 조금씩 실감하기 시작하면서 괴로웠다. 이렇게 사랑스러운 아이에게 이상적인 여건을 줄 수 없는 자신이 초라했다. 아이를 낳기 이전의 나는 알지 못했던 새로운 세상에서 예전과는 다른 잣대로 평가받는 매일이 버거웠다. 나는 왜 아이에게 늘 한결같이 다정하지 못할까, 나는 왜 아이의 음식을 만드는 것이 힘겨울까, 왜 저 엄마는 저렇게나 잘하는데 나는 매일 허덕일까.

문득 생각했다. 과연 나는 내 아이를 어떻게 키우고 있는 걸까. 한참은 고민해 보았지만 부족한 점만 눈에 들어왔다. 이것만큼은 내가 잘 하고 믿는 부분은 작았고, 이상적인 부모에 비춘 내 모습은 부모라고하기도 부끄러울 지경이었다. 어떻게 해도 아이를 제대로 키워낼 자신이 없었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아이를 주셨는데, 나는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잘 키워내기 못한다는 죄책감까지 더해갔다.

그러다 알게 되었다. 내가 생각하는 시점 자체를 바꾸어야 한다는 것을.

내가 아이를 어떻게 키우는 것인가 고민하기에 앞서 내 아이가 보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지 그려 보아야 한다는 것을.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부모에 나를 끼워 넣는 것이 아니라, 내 아이는 내가 어떤 부모이기를 원할까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는 것을.

나는 아이와 놀아줄 때면 항상 계산했다. 이건 아이의 두뇌 어느 부분에 좋고, 이렇게 감각을 발달시켜 주어야 한다고. 그리고 내 다른 머릿속으로는 이따 해야 할 미뤄둔 일들을 가늠했다. 내일 처리할 일들을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는 아무 계산 없이 시종일관 나를 쫓으며 따라하고 같이 웃고 뒹굴 뿐이었다. 온 마음을 쏟아 나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나는 아이를 사랑한다고 하면서 내 온 전부를 쏟아 아이를 바라본 시간이 얼마나 될까?
서투른 말을 대충 짐작해 먼저 말하기 전에 끝까지 경청한 적은 몇 번이나 될까?
나는 아이에게 마음으로 무엇을 주고 있을까?
내 아이는 나에게 무엇을 바라고 있을까?

이제 곧 아이는 나보다 친구를 더 좋아할 시기가 올 것이다. 내가 온 우주였던 시대는 지나가고 부모로서 새로운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만약 그때까지 내 기준으로 아이를 강요한다면 후회하기 될 것 같았다. 내 아이를 누구보다 사랑하기에 그 아이가 느낄 수 있는 사랑의 언어로 말을 걸어 주고 싶었다.

나는 아이의 눈으로 모든 것을 바라보기로 했다.

나는 아이와 놀 때면 아무 계산 없이 놀이에만 집중해서 함게 만들고 함께 놀았다. 아이가 실수할 때면 구짖기에 앞서 왜 그렇게 했는지 물어보고, 올바른 길이 무엇인지 함께 생각해보고, 아이가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을 이해하고, 그리고 잊어주었다.

대신 좋은 행동은 보일 때마다 칭찬해 주었다. 내가 사랑하는 아이가 좋은 행동을 하니 너무 사랑스럽고 마음이 벅차올라 칭찬을 안 할 수가 없었다.

아이가 울 때면 그러니까 왜 내 말을 안 듣냐고 윽박지르는 대신에 아이의 마음을 함께 느끼면 얼마나 슬프고 힘든지 공감해 주었다.

아이에게 공부를 가르치는 대신에 내가 아이의 존재를 배워보기로 했다.
그러자 아이의 행동 하나하나 눈에 들어왔고 아이가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알게 되었다. 그 동안 아이 때문에 곤혹스럽고 힘들던 일들은 아이가 나에게 일부러 나쁜 마음을 먹고 한 행동들이 아니었다. 그것들은 미처 나에게 와 닿지 못한 아이의 의사소통이었다. 그것들을 나쁘게 해석했던 내 자신이 부끄러울 정도로 아이는 단순하고 순수했다.
그리고 나를 아주 많이 사랑하고 있었다.

내가 노력하는 만큼 아이도 마음을 열었다.
이 과정은 신비로우면서 단순했다.

그리고 아이와 나는 이제 한 몸처럼 순수하게 서로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나는 아이의 말과 행동을 어른의 시야로 감정을 담아 해석하지 않았다. 그냥 있는 그대로 단순하게 이해했고 아이는 나에게 부끄러움이나 두려움 없이 마음을 보여 주었다. 우리는 부모와 자녀이기도 했고 하느님 앞에 손을 잡고 함께 선 영혼이기도 했다.

우리는 함께 나가 달리기 경주를 했고, 나뭇잎은 주워 색칠하기도 했으며, 눈 내리는 날에는 발자국으로 모양을 내기도 했다. 나는 아이에게 어쩌다 해야 할 때를 제외하고는 잔소리할 일이 없었다. 어나, 오히려 옆에서 바라보는 아이의 세계는 굉장하기만 했다. 모든 것에 마음을 열고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아이는 내 몸에서 나온 아이지만 나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아이에게 나는 규율을 가르치는 사람이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지금의 나는 아이와 함께 하며 보호해주는,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세상의 신비를 함께 풀어 나가는 지상의 수호천사다.

 

 

 

 

 

세상의 모든 아이는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났다

이 시대의 뉴스는 종종 가슴을 철렁하게 하는 슬픈 소식을 전합니다.

친아버지와 계모에게 학대당하고 숨진 아이(아동 학대의 80%가 친부모), 어린이집이나 학교 같은 공동체 안에서 어른들의 부조리와 부당함으로 상처받는 아이들, 온갖 사회적 폭력들 앞에서 힘없이 무너지는 아이들.

이것은 암의 이야기인가요? 아닙니다.

내가 오늘 내 아이에게 심한 말을 했다면, 아이가 원치 않는 것을 강요했다면, 욕설을 퍼부었다면, 폭력을 휘둘러 아프게 했다면, 내 감정대로 아이를 다루었다면 비슷한 슬픔을 겪는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내 아이의 가슴에도 고통스런 아픔이 상처로 남게 됩니다.

아이들은 말합니다.
“부모님이 주는 상처가 가정 견디기 힘들다.” 고요.

그리고 그 결과는 여러분께서 더 잘 아실 것입니다.

아이들은 반항, 방황, 탈선, 가출 심지어 자살까지도 생각하면서 부모들에게 자신의 고통을 알리려고 하고 그리고 그 고통을 부모에게 상처로 되돌려 줍니다.

부모들이 흔히 잊어버리는 사실은 “내 아이는 애 것이 아니라 나와 마찬가지인 고귀한 인격체”라는 것을 늘 마음에 되새겨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내 아이를 존중해 주게 되고 다른 존경하는 사람에게 하듯이 내 아이데게도 예의 바르게 대하게 되며 더 소중하게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내 아이와 온 가족이 서로 존중해주고, 아껴주고, 사랑하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가요. 내 아이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으니까요.

우리의 마음가짐과 행동에 따라서 이 행복은 우리 가족의 것이 됩니다.

 

 

 

 

 

아이들은 우리의 모습대로 자란다

아무것도 쓰여 지지 않은 순수한 영혼의 아이들은
우리가 하는 모습 그대로 따르게 됩니다.

우리가 아이들의 행동을 비난하면
아이들은 우리와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게 됩니다.

우리가 아이들을 사랑해주지 않고 무시하면
아이들은 사람을 믿지 않고 쉽게 화를 내게 됩니다.

우리가 아이들의 생각을 진지하게 대하지 않고 가볍게 여긴다면
아이들은 부끄러움과 창피함만을 알게 됩니다.

우리가 아이들을 예의 바르게 대해주지 않고 수치스럽게 본다면
아이들은 죄책감 속에 살아가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가 아이들을 너그럽게 대해준다면 아이들 또한 우리와 다른 사람을 너그럽게 인내심을 가지고 대하게 됩니다.

우리가 아이들의 생각과 행동을 격려해준다면
아이들은 자신감을 얻게 됩니다.

우리가 아이들을 보호해주는 든든한 존재가 된다면
아이들은 다른 사람을 신뢰하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우리가 올바른 판단기준으로 아이를 가르친다면
아이들은 정의에 대해 알게 됩니다.

우리가 아이들의 행동을 잘 살피고 칭찬해주면
아이들은 자존감과 감사를 배우게 됩니다.

우리가 아이들의 생각과 행동을 인정해준다면
아이들은 자기 스스로를 사랑하게 됩니다.

우리가 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여줄 때
아이들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그 안의 사랑을 알게 됩니다.

아이들은 무엇도 아직 혼자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모범을 보인다면,
아이는 그 모습 그대로의 어른이 될 것입니다.

 

 

 

 

 

참된 부모, 우리가 가야 할 길

부모인 우리 또한 부족한 인간이기에 그것을 아이들 앞에서 솔질하게 인정하면서 아이와 함께 날마다 좋은 삶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부모들의 노력은 아이들에게 자신들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계속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줄 것이고 결국에는 더 나은 어른으로 성장하는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 인간의 삶은 부메랑 같은 순환이엉서 부모들이 하는 그대로 나중에 아이들이 부모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지역사회와 가정, 교회를 이끌어 가고 있는 어른이 우리는 비단 우리의 자녀뿐만 아니라 이웃의, 세상의 모든 아이들을 위해 우리의 헌신을 다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모든 아이들을 돌보아주고, 친절하고 자애로운 미소로 아이들을 품어 주어서 그들이 사는 세상이 무서운 것만이 아니고 안전하고 행복할 수도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어야 합니다.

아이들은 사랑입니다.
아이들은 행복입니다.
아이들은 희망입니다.

 

 

 

 

 

성사

성사는 그리스도의 행위입니다.
우리 안의 예수 그리스도로 하여금 사시게 하고 행동하기세 하는 성사에 대해 존경하는 마음과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는 성사의 신비를 통해서 영혼의 깊은 곳에서 활동하시는 그리스도를 닮기 때문입니다.

성사는 교회의 표지입니다.
교회의 성사라면 교회가 맡기고 교회가 소유자로서 베푸는 것을 관리하는 표지이며 교회 안에서만 집행 되는 것을 뜻합니다.
성 아우구스티노도 “교회 없는 성사는 있을 수 없고, 성사 없는 교회도 있을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성사의 목적은 개인의 구원이지만 그것도 교회 안에서, 교회가 베푸는 성사로, 교회가 들어가고 성화되어야 비로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성사는 거룩한 표지입니다.
은총의 표지이며, 신앙의 표지이며, 교회의 표지입니다.

성사는 그리스도인의 갈 길입니다.
성사가 그리스도의 활동이라는 것은 각 성사에서 일하시는 분이시고 성사를 통해 접촉하는 분도 예수 그리스도 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볼 수 없지만 성사에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을 느기면 믿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사의 표징들을 통하여 하느님께서 우리의 삶에 깊이 들어오심을 체험하게 되고 참된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칠성사

1. 세례성사
세례성사는 하느님의 자녀로서 새로 태어나게 하는 성사입니다.
세례의 효과로는 죄의 용서와 새로운 생명으로의 탄생과 그리고 하느님의 자녀, 즉 상속자가 되는 것과 그리스도 신비체 일원이 되면 영혼의 지울 수 없는 인호를 받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세례로써 원죄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이 지은 모든 죄까지도 용서해 주십니다.
따라서 한 번 이상 세례를 받을 수 없으며, 세례를 받아야 다른 성사를 받을 자격이 됩니다.

2. 성체성사
성체성사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심으로써 사랑이신 그 분과 일치하여 영적 생명을 성장케 하는 성사 입니다.

3. 고해성사
고해성사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심으로써 사랑이신 그 분과 일치하여 영적 생명을 성장케 하는 성사입니다.

4. 견진성사
견진성사는 더욱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느님의 일꾼이 되게 하는 성사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성인식’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더욱 성숙한 신앙인으로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며 살아야 함을 뜻합니다.
* 견진성사의 성령 칠은: 슬기, 의견, 통달, 굳셈, 지식, 효경, 두려움

5. 성품성사
성품성사는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제직을 이어 받아 세상의 구원 사업을 계속하는 사제들을 교회의 권위로 축성하는 성사입니다.
사제의 직무는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하느님의 백성을 돌보며, 전례와 성사를 집전하는 것입니다.

6. 혼인성사
혼인성사는 신자은 남녀가 한 가정을 이루어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느님의 강복을 받기 위한 성사입니다.
* 혼인성사의 특징: 단일성, 불가해소성

7. 병자성사
병자성사는 생명이 위급하거나 질병과 노쇠로 죽음의 위험이 보이는 신자들에게 영신적인 목적과 육신적인 건강을 위하여 받는 성사이며 죽음에 임박한 사람이 치유자이신 예수님을 만나 성사의 은총으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성사입니다.

준성사
준성사에는 언제나 기도가 포함되며 흔히 안수, 세례를 상기시키는 십자성호, 성수 뿌림 등의 행위와 사람, 음식, 물건, 장소 등에 그리스도의 십자성호를 그어 축복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성물을 구입했을 때 흔히 “축복해 주세요.”라는 것과 새성전 축성식 등도 이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유아세례의 중요성과 교회 안에서의 의미

우리 아이는 단순히 우리만의 자녀가 아니라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느님께서 세례와 성사들을 통해서 구체적으로 당신 사랑을 드러내신 것처럼 아이들에게도 뚜렷한 표시인 세례를 통하여 당신 사랑을 보여주시고자 하는 것입니다.

유아세례는 우리의 신앙이 아이의 신앙이 되는 중요한 시작입니다.
이겟에 대해서 부모들은 아이의 신앙생활을 어떻게 도울 것이지 충분히 의논해야 하며, 중요한 것은 하느님과 함께, 하느님께서 아이를 사랑하시는 것처럼 어떻게 사랑해줄 것인지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새로운 성가정의 모습을 이루기 위해

1. 함께 기도하기
부모와 아이가 함께 기도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십시오. 모두 둘러 앉은 가운데 초를 켜고 하느님을 초대하십시오. 그리고 각자의 소망과 느낌들을 몇 분씩 얘기하다 보면 처음에는 어색할 수 있지만 차츰 편안해지고 가족간에 놀라운 일치와 친밀감을 느낄 수 있게 됩니다.

2. 미사 참례하기
요즘 부모들은 대부분 맞벌이를 하고 아이들은 어리기 때문에 미사 참례가 어렵고 피곤하게 느껴지기도 할 것입니다. 아이가 미사 중에 산만하다 하더라도 그 시간에 익숙하게 되면 자라면서 스스로 예수임 앞에 있는 그시간이 큰 위로가 되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그 위로는 아이가 앞으로의 삶을 잘 헤쳐나갈 수 있는 힘이 되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미사 중에 우리에게 주시는 예수님의 위로와 사랑은 부모들에게도 꼭 필요한 시간이고 피곤하고 힘든 삶에서도 잘 나아갈 수 있는 힘인 것입니다. 미사시간을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온 가족이 쉬는 행복한 시간이라 생각하십시오.

3. 하느님과 함께 시간 보내기
삶의 모든 것 안에, 만물 안에, 예쁜 꽃, 파란 하늘, 싱그러운 바람, 작은 강아지와 아기 새들, 사계절이 보여주는 자연 안에 하느님께서 함께 계심을 아이에게 가르쳐 주십시오.

4. 서로 사랑하기
우리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유산 중에 가장 위대한 것은 ‘사랑’입니다. 우리 삶을 활기차고 행복하게 만드는 신비한 은총은 사랑을 늘 우리 삶 안에서 유지시키며 아이가 그 실체를 느끼게 해주어야 합니다. 아이를 사랑해주고, 아껴주고, 부부로서 다정하게 서로를 봐주고 부모님들과 어른들에게 예의와 배려의 마음을 보이고 내 이웃과 사회에 필요한 사랑을 베푸는 삶을 살아갈 때 내 가족과 가정은 튼튼한 반석위에 집처럼 우리에게 든든한 안식처가 되어줄 것이고 그 안에서 자란 아이는 사랑을 남에게 베푸는 하느님 마음에 꼭 드는 착한 사람으로 자라게 될 것입니다.

 

 

 

 

 

대부모의 역할

교회 안에서 대부모의 역할이란 세례 받는 대자녀가 신앙생활을 제대로 해나가도록 지지해주고 이끌어 주는 것입니다.
영어로는 God Parents라 하는데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영적으로 맺어진 부모라는 중요한 뜻입니다.

 

 

 

 

 

대부모의 자격

교회에서는 대부모의 자격을 16세 이상의 견지성사를 받은 신앙인이 성숙한 신자로 두고 있습니다. 대부모의 경우 모르는 사람보다는 가까운 곳에 사는 부모의 지인이 제일 좋습니다.

 

 

 

 

 

대부모가 할 일

세례식 전에 고해성사로 마음을 준비하고 세례식에서 대자녀인 아이를 위해서 하느님의 축복을 빌어주십시오.
세례식이 끝난 후 대자녀는 하느님 안에서 당신의 자녀이므로 새로운 마음과 세심한 관심으로 대해야 합니다.
대자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관심을 기울이고 아이를 위해 기도해주십시오. 그러면 당신이 최고의 대부모인 것입니다.

 

 

 

 

 

좋은 대부모가 되기 위하여

먼저 자신과 하느님과의 관계를 신중하게 돌아보어야 합니다. 자신이 온전히 하느님을 신뢰하고 사랑하고 있는지, 하느님의 뜻과 그분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나아가려고 노력하고 있는지, 자신의 삶 안에서 자구 넘어지지만 그때마다 하느님의 손을 잡고 일어나고 있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삶의 힘든 순간마다 하느님께서 도와주실 거는 믿음과 희망이 있는지 등입니다.
이러한 돌아봄은 신앙인으로서 자신의 삶을 바로 세우게 할 것이고, 대자녀들의 신앙의 삶도 올바르게 이끌어 주게 할 것입니다.

 

 

 

 

 

어머니의 기도

사랑하는 예수님,
제 뱃속에 아이가 자리 잡은 그 순간부터
저는 말할 수 없는 기쁨과 함께 아이와 사랑에 빠졌습니다.
이 아이는 제게 보물 같은 아이이며 무엇보다 아끼는 사랑입니다.

그러니 주님, 바라건대 저에게 큰 인내와 사랑을 주시어
순수한 영혼으로 엄마 품속에 살다 태어난 이 아이를
올곧은 당신의 자녀로 키울 수 있도록 해 주소서.

아이가 세상에 대해 알아갈 때
수많은 질문을 던지며 나에게 의지할 때
아이에게 무한히 사랑을 표현해 줄 때
또 아이를 위해 엄하게 대해야 할 때
이 모든 순간에 함께 하시어
아이가 세상을 당신의 눈으로 알아가게 해 주소서.

저에게 온 이 소중한 아이는
제 소유물이 아닌 당신이 창조하신 하나의 인격체 임을 알게 해 주시고
바라는 마음 없이 최선을 다해
아이와 사랑을 나누게 해 주소서.

그리하여 제 아이는
사랑을 계산하지 않고 줄 줄 알고
어떤 일을 행할 때 주님께 먼저 의논하며
다른 이웃과 신념을 가지고
자존감과 신념을 가지고
누구도 닮지 않은 자신의 모습으로 서게 해 주소서.

이 모든 것들은 한낱 인간인 저의 힘으론 할 수 없으니
다만 제가 하는 것은 아이를 사랑해 주는 것뿐입니다.

주님, 부디 도와주시고 함께 하여 주십시오.

아멘.

 

 

 

 

 

아버지의 기도

주님, 이 세상에 온 저의 아이를 위해 기도합니다.

저는 제 아이가 남들보다 뛰어나거나, 앞서가거나,
특출난 재능이 있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단지 제 아이는 웃어야 할 때 웃을 수 있고,
울어야 할 때 울 수 있고, 감사해야 할 때 감사할 수 있고,
기뻐해야 할 때 기뻐할 수 있고, 화내야 할 때 화낼 수 있는
사람다운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건강하며 온유하며 바른 마음을 가지고
작은 것에서도 행복을 느끼는 아이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제 아이가 자라 세상에 나아갔을 때
삶의 험난함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하고자 하는 일을 끝까지 이루어 낼
의지를 지닌 아이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스스로 하고자 하는 일을 깨달아
그 일을 향해 노력하는 아이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설령 그 일이 잘되지 않을지라도 좌절하지 않고
아이가 바라는 대로 주님께서 바라시는 대로 아이를 이끌도록 도와주소서.

주님, 저의 아이를 돌보아 주시고 평화를 주소서.

아멘.

 

 

 

 

 

가정을 위한 기도

○ 마리아와 요셉에게 순종하시며
가정생활을 거룩하게 하신 예수님,
저희 가정을 거룩하게 하시고
저희가 성가정을 본받아
주님의 뜻을 따라 살게 하소서.

● 가정생활의 자랑이며 모범이신
성모 마리아와 성 요셉,
저희 집안을 위하여 빌어 주시어
모든 가족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하시며
언제나 주님을 섬기고
이웃을 사랑하며 살다가
주님의 은총으로
영원한 천상 가정에 들게 하소서.

◎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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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hey Network Architecture (JNA) 최종관리자.

1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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