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공현 대축일 主 — 公顯大祝日
〔라〕 Sollemnitas in Epiphania Domoni
〔영〕 Solemnity of Epiphany of the Lord
세상의 구세주인 예수의 탄생을 맞아 아기 예수에게 경배드리고 예물을 바치러 온 삼왕(三王)의 방문을 기념하는 대축일. 이 대축일은 본래 1월 6일이지만, 한국에서는 1월 2~8일 사이의 주일에 기념한다. 또한 예전에는 이 날을 ‘삼왕 내조 축일’ (三王來朝祝日)이라고 하였다.
〔유래와 역사〕
그리스어 ‘에피파네이아’ (ἐπιφάνεια) 와 ‘테오파니아’ (Θεοφανία) 는 ‘출현'(apparitio) 을 의미한다. 이 말은 동사 ‘에피파이노’ (ἐπιφαίνω) 에서 파생한 것으로, ‘드러나게 나타나거나 밝혀지는 것’ 또는 ‘스스로를 드러내는 것’, ‘유명한 존재로 나타남’ 등을 의미한다. 곧 왕이나 황제의 오심과 관련되어 있다. 이외에도 신(神)의 발현 또는 기적적인 신의 개입을 가리키는 데 사용되었다. 동방 교회에서는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심’으로 기리는 주님 성탄 축일을 이 용어를 사용하여 불렀다.따라서 오늘날 우리가 지내는 공현 축일은 예수 성탄의 의미가 확대되어 드러난 것이다.
주님 공현 대축일은 동방 교회에서 유래하였다. 동방 교회에서 공현 축일을 기념하게 된 것은 서방의 예수 성탄 대축일이 등장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서방에서 동지 축제(태양신 탄생 축제)를 12월 25일에 지냈듯이, 이집트와 아라비아 등에서는 1월 6일에 이 축제를 지냈다. 그리스도인들은 낮이 점차 길어지는 이 날에 그리스도의 탄생과 공현을 기념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가 참 빛임을 그러내려 했던 것이다.
그리고 2세기 초반에 동방 지역의 그노시스주의자들이 1월 6일에 예수의 세례를 기념하였다. 이는 그들의 교리에 따라 ‘예수가 세례를 받는 순간 하느님의 아들로 입양되었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것은 예수가 인간으로 태어나기 이전부터 하느님의 아들이며 주님이라는 정통 신앙과 상반되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들의 이단에 맞서 동방 교회는 이날 예수의 세례를 기념하면서, 예수가 하느님의 아들로 입양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아들이심이 드러났다’고 선언하였다.
서방 교회가 주님의 공현을 기념한 것은 4세기부터이다. 최초로 이 축일을 기념하였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곳은 361년에 가장 성대하게 공현 축일을 지낸 갈리아이다. 동방의 공현 축일이 360년경에 갈리아에서 전통이 된 점으로 보아, 이 축일의 기원은 로마의 예수 성탄 대축일과 거의 동시대로 여겨진다. 하지만 공현이 성탄보다 더 오래된 것이라 하더라도 서방 교회에서는 제1차 니체아 공의회(325) 이후였다.
살라미스의 에피파니오(310/320~402/403)는 공현 축일에 대한 정통 교리를 전해 준다. 그는 이날에 ‘주님의 오심’ 또는 ‘주님께서 인간으로 태어나심과 완전한 육화’를 기념한다고 하였다. 도 요한 그리소스토모(344/354?~407)가 활동하던 시기에 안티오키아와 이집트에서 이 축일을 지냈는데, ‘예수의 탄생과 세례’를 기념하였다. 그래서 공현 축일은 ‘빛과 물의 축제’ 이다. 주님 공현 대축일은 예수가 메시아로 드러나셨음을 기념한다. 아울러 예수가 오르단 강에서 세례를 받을 때 드러난 그리스도의 공적인 역할에 대한 축하를 거행하는 것이다. 이것은 예수의 유년기에 일어난 사건을 기념하는 축일들(성전에서 찾으심 등)보다 더 크게 지냈다.
한편 서방에서는 예수 성탄 대축일을 지냈고, 동방에서는 공현 축일을 성탄 축일로 지냈다. 그러다가 동방 교회의 공현 축일이 서방으로 전파되었을 때 의미의 변화가 일어났다. 서방 교회에서는 동방 박사들이 탄생한 구세주를 경배하기 위해 베들레헴에 온 것을 기념하게 되었다. 곧 그리스도로 오신 예수의 탄생에 ‘그분의 탄생을 이방 민족들 모두에게 드러내 보이셨다’는 의미가 이 공현 축일에서 강조되었다. 그리고 여기에 ‘예수의 세례’와 ‘가나의 첫 기적’을 덧붙여 기념하였다. 반면 서방 교회의 성탄 축일이 동방 교회에 도입됨으로써 공현 축일의 본래 뜻은 사라지고, 대신 ‘예수의 세례’를 두드러지게 기념하게 되었다. 서방 교회들은 주로 동방 박사들의 방문을 기념하면서, 이들이 인류를 대표한다고 이해하였다. 따라서 예수가 모든 민족의 주님으로 드러났다고 하였다. 이렇게 성탄과 공현을 확연히 구별하게 되었는데, 성탄에는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하고 공현에는 온 민족의 경배를 기념하였다.
오늘날 주님 성탄 대의 전례는 동서방 교회들이 ‘주님 탄생’이라는 동일한 사건을 기념하지만, 주님 공현 전례는 동방과 서방이 서로 다른 특성을 드러내고 있다. 서방 교회는 좁은 의미에서 공현 축일에 ‘현자들의 방문’을 가념하고, 주님세례축일에는 ‘주님의 세례’를 기념한다. 하지만 동방 교회는 두 가지를 모두 주님 공현 축일에 기념한다.
〔축일과 신학〕
이 축일은 1월 6일에 기념한다. 하지만 1월 6일이 공휴일인 곳에서는 고정하여 지내는 반면, 그렇지 않을 경우 1월 2~8일 사이의 주일에 지낸다. 한국도 사목적 편의를 위해 주일에 공현 대축일을 지낸다. 특히 서방 교회에서는 전통적으로 이날 축제를 동방 박사들의 축제로 지냈다. 그래서 구유를 꾸밀 때, 성탄 때에는 구유의 아기 예수를 중심으로 마리아와 요셉 그리고 목동들과 가축들 등에 한정되었다가, 공현 때가 되면 동방 박사의 형상을 배치하여 의 의미를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예수의 공적 생엥 대한 축하를 드러내는 것을 결코 잊지 않았다. 그것은 이 축일에 지내는 세 가지 신비에 대해 시간 전례가 마치 한 가지로 연결된 주제인 것처럼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곧 동방 박사들의 경배, 예수의 세례, 가나의 혼인잔치(제2 저녁 기도의 성모의 노래 후렴 참조)가 그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 날 축일의 기억은 동방 박사들이 아기 예수께 드린 경배에 거의 모든 관심이 집중되어 나타난다.
부활 시기는 성령 강림 대축일로 완성되고 마감한다. 이처럼 성탄 시기의 성령 강림이라는 차원에서, 곧 성탄 시기를 마감하는 축일로 1960년에 전통 축일 중 하나인 ‘주님 세례 축일’을 따로 설정하여 공현 다음 주일날 거행토록 하였다. 곧 공현 축일에는 주님 세례를 기념하지 않고 분리하여 지내게 된 것이다. 하지만 공현 축일을 주일에 지내는 경우 1월 7일 또는 8일에 주님 공현 대축일에 기념한다면, 주님 세례 축일은 그 다음 날인 월요일에 지내도록 규정되어 있다.
〔축일의 전례〕
이날 미사의 제1독서(이사 60, 1-6)는 이스라엘에 대한 위로를 기록한 이사야서를 봉독한다. 예언자는 모든 백성이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모일 것이라는 희망을 예견한다. 시간 전례에서도 구약 독서(이사 60, 1-22)를 읽는데, 복음에서 다시 언급하고 있다. 만백성과 세상의 온갖 좋은 것들이 그 영광을 더하고 기리기 위해 모여든다. 그 빛은 이스라엘이란 테두리를 넘어서며, 그 빛이 별빛이 되어 유다 베들레헴을 비추고 있다(복음). 그래서 제2 독서(에페 3, 2-6)에서 사도 바오로는 자신을 위시하여 이방인들까지 하느님의 축복을 받는 약속의 상속자로 만드시는 하느님의 심오한 계획이 그리스도 안에서 실현되었음을 설명한다. 독서의 기도에서는 교황 레오 1세(440~461)의 “세 현자들은 우주의 창조주를 경배하는 모든 백성을 대표한다”라는 말을 읽음으로써 동일한 주제를 발전시킨다. 그리스도는 모든 민족들의 구세주이고, 세 동방 박사는 우주의 창조주를 경배하는 모든 백성들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인물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그리스도로 이루어질 우리 구원의 신비를 오늘 이교 백성들의 빛”(공현 감사송)으로 계시하신 것이다.
이날 전례의 주제는 ‘그리스도께서 이방인의 빛’으로 널리 계시되었다는 데에 있다. 구약의 독서를 통해 하느님이 이스라엘을 불러 당신의 백성으로 삼으셨지만, 신약에 와서 유대인들에게 약속된 복음 선포가 이방인들에게도 전파된다는 것을 말해 준다. 그래서 구세주의 탄생을 알리는 베들레헴의 그 별빛은 그리스도인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갖가지 어두움 속에서 염원하는 모든 이를 위한 구원의 빛이라는 점을 알려준다.
한국교회사연구소, 『한국가톨릭대사전』 10. pp.7821-78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