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이 끝났다.
공직선거기간동안 예비군 훈련 중지라는 규정에 따라, 잠시의 휴식기를 가지고 선거 다음날 바로 출근했다.
바로 다음 주에 예정되어 있는, BCT에 대한 연습이었다.
거대하게 돌아가는 부대의 전황에서 내가 맡은 작은 임무는 ‘적재조’
군사비밀에 저촉되지 않고 쉽게 말하면
‘머리 안쓰고 힘 많이 쓰는 임무’이다.
군인이 갖춰야 하는 일반 물자에서부터 무기까지 대형 트럭에 실려 보내주고,
모든 상황이 끝나면 다시 실어서 원래 저장되어 있던 곳으로 되돌려보내는 것이었다.
자 이제 연습 시작이다.
우리는 무기부터 옮기도록 되어 있었다.
오후부터 연습이 시작되었는데
어라, 열어야 하는 창고의 열쇠의 소재를 아무도 알지 못했다.
훈련 시간은 다가오고, 임무를 담당했던 현역 후배는 어찌할 지를 몰라 하고 있었다.
후배한테 딱 세번 물어봤다.
“자물쇠 부셔도 되겠냐?”
사실, 답은 상관없었다. 나는 이미 부수기로 마음을 먹은 상태였다.
다만, 이 후배가 위기상황에서 뱅뱅 돌지 말고 어떻게든 해답을 찾아내길 바라는 기대의 질문이었다.
손함마를 가져와서
창고 자물쇠를 내리치기 시작하는데, 현역 시절 에피소드가 떠올랐다.
때는 호국훈련,
비상이 걸려서 5분전투대기소대가 출동해야 했는데, 당직자 열쇠 뭉치를 잃어버렸다.
결국 무기고에 오함마를 가지고 들어가
5대기소대 인원 총기함 자물쇠를 죄다 부셔버렸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
바로 옆에 1,2,3대대의 많은 인원들이 보고 있었지만 상관없었다.
훈련의 시작 시각은 어떻게 보면 공격시작 시각, 타이밍을 놓치면 부대가 몰살 당할 수도 있는 위험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생각에 과감하게 진행했다.
이렇게 생각하게 된 이유는 나의 첫 전술훈련에서 기인한다.
초임하사 시절, 정신못차리던 첫 전술훈련에서 나의 잘못으로
장갑차 5대 완파, 소대 전멸이라는 참담한 결과를 경험했던 적이 있었다.
일반 보병이나 포병보다 엄청나게 빠른 템포로 진행되는 기갑/기계화부대 훈련에 시간을 놓친 결과였다.
이렇게 훈련은 시작되었고,
증편동원물자들이 이동하면서 우리도 창고로 이동했다.
무거운 박스를 롤러를 이용해서 대형 트럭에 싣게 되었다.
싣고, 싣다 보니 계획된 양을 다 옮기게 되었다.
그렇게 물자를 보내고 다시 정리하면서 훈련에 대한 연습이 마무리되었다.
연습 후에
간부, 용사, 예비역들이 함께하는 사후강평/회의가 진행되었다.
그렇게 몇 일이 지나고, BCT 당일이 되었다.
평가관들이 돌아다니면서 우리의 행동을 들여다보고, 궁금한 점은 직접 우리에게 물어보기도 하는
긴장감 넘치는 시간이 계속되었다.
다시 나의 임무에 투입되었다.
연습 이후에 몸을 사리면서 체력을 보완하기는 했지만
20대의 체력을 40대인 나는 따라가기 힘들다는 것을 체감하였다.
그렇지만
비록 예비군일지언정
옷깃에 상사 계급장을 달고 있는 부사관이다.
힘들다고 말은 할 지언정
현장에서, 용사들 앞에서 퍼지면 안되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더 앞서서 물자를 운반하며 임무수행을 하였다.
그 와중에도 병력 개개인의 컨디션과 피지컬을 수시 확인하면서
부상의 징후가 보이는 인원에 대한 포지션 교체 등 조치를 동시에 진행했다.
물자를 내리고 동원예비군 입소 현장으로 이동했다.
증편 평가가 끝나는 동안 잠시 대기했다가 평가 종료 후 정리를 시작했다.
큰 건 아니고
내려놓은 모든 물자를 다시 제자리에 옮기는 것이다.
다시 인원들과 함께 물자(총기/탄약)을 원래 자리로 옮겼다.
다 옮기고 나니 정말 힘들어서 잔디밭에 앉아 쉬고 있었는데
간만에 이렇게 있는 힘 없는 힘 다 쓰다보니
세컨드 윈드에 진입한 느낌을 온몸으로 받았다.
다 정리되고 내려왔는데
정보중대장이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옆에서 보면 위험하고 와일드하게 일하는데, 안다치는거 보면 신기하다.”
칭찬일수도 있겠지만, 너무 나서거나 나대는게 아닌가 하는 우려의 의미도 있는 말이었다.
그래도 잘 마무리되고, 부상자 없이 평가가 마무리 되어 다행이고, 후련하다는 기분이 더 커서
너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