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에는 몇 년만에 다시 재개되는 2박3일 동원훈련이 계획되어 있었다. 계획은 포병대장님이 작성하고, 나는 준비를 도와주는 보조 역할로 하여 동원훈련 준비를 시작했다. 비상근 예비군으로 복무하는 동안 단기 시절에는 4.2″박격포 교관, 장기 시절에는 105mm견인포 전포교관 임무수행을 했지만, 올해는 처음으로 지속지원 임무를 받았다.

현역 시절, 병 및 간부생활 내내 나는 본부중대 소속이었다. 수많은 영외훈련에 대한 전투근무지원을 책임졌었다.  잠자리를 마련하고 야전취사 운영을 확인하고 기름 떼와서 야전에서 보일러 돌려서 온수 목욕탕도 만들어보고, 화장실 및 야전총기함 및 야전 탄약고 운영 등을 해봤다. 또한 전술훈련시에는 설영대로 편성되어 대대지휘소 후보지에 선두로 파견되어 기동/화력 수색 및 화생방 탐지, 부비트랩 등 함정 확인, 지휘소 자리 선정 등의 임무를 해봤었다.

하지만 이것은 동원훈련. 한 번도 해본적이 없었기에, 이미 경험해본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 많은 것을 배워야 했다. 작년에 같이 근무했던 포반장(지금은 주임원사)에게도, 우리 여단 주임원사님에게도, 같은 사무실에 있는 체계운용관님에게도 물어보면서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어느 국면에서 어느 것을 챙겨야 하는지 확인하고 배워갔다.

훈련 시간은 다가오고, 1주일이 남은 월요일. 물품을 사기 시작했다. 우리가 생각했던 물건들은 여기저기 흩어져있고, 어떻게든 물건을 사기 시작했다. 그런데 같이 나왔던 포병대장의 상태가 점점 험악해졌다. 일단 오전 구매를 마치고 점심을 같이 먹는데, 일이 안되고 있는데도 왜 그렇게 평온하냐, 비결이 뭐냐고 물어봤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그렇습니다. 계획을 세웠고, 그 계획대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느냐, 과정이 힘들 수 있어도, 계획되로 진행되고 있으니 걱정이 없습니다. 설사 안되고 있다 하더라도 되게끔 잘 하면 됩니다. 굳이 화내지 않아도 됩니다.”

얼추 이런 비슷한 대답이었을 것이다. 나도 일하다가 화가 날 때가 있다. 항상 업무를 진행 중엔 차선책을 생각해 놓는 편인데, 차선책마저도 엉망이면, 그다음부터는 불같이 화를 낼 때가 된 것이다. 하지만 최근 1,2년 동안에는 그럴 일이 없었으니(이도 저도 안되는 상황이 오더라도 굳이 화를 낼 필요를 없다고 느꼈다)

식사 후에는 포병대장과 따로 떨어져서 물건을 구매했다. 오전에 사려고 했으나 살 수 없던 물건들이, 사업자 전명 판매장에서 구할 수 있음이 확인되어서, 내 사업자번호를 활용해서 입장하여 물건을 구매했다. 아마도 이런 부분들이 예비군의 강점일 수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피식 하는 웃음이 나왔다.

 

그런데, 갑자기 건강상태가 좀 이상했다. 몸살기가 좀 있네? 라는 느낌. 어느 순간, 느낌은 통증이 되었고, 몸살이 온몸을 때리는 듯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아 여기서 더 움직이다 악화되면 끝이다’라는 판단이 왔다. 바로 의무대로 향했고, 검사 2가지를 했다. 결과는 코로나 양성반응. 사무실도 들르지 못하고 물건도 밀어내기 방식으로 건네 받으며 퇴영해야만 했다. 도중에 몇 번의 위기를 맞았으나 어찌저찌 해여 집에 도착했다. 아내와 아기는 처가로 보내고, 혼자남은 집에서 5일의 격리생활을 보내야만 했다.

동원훈련 전날, 부대에 복귀했다. 군에서 정해놓은 코로나 격리기간이 해제되었기 때문이다. 내일부터 있을 훈련을 대비해서 물자를 이동시키고 인도인접 준비도 마쳤다. 화포는 이미 이동되어 있었고.

 

여단장님 사열이 끝나고, 남은 준비를 하던 중 나는 퇴근시간이 되었다. 너무 간만에 복귀라 숙영을 하는 것까지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기 때문에, 집에 가서 4일치 숙영준비를 해서 다시 훈련장에 돌아왔다. 최종적으로 다시 예행연습및 3일차의 계획을 되짚어보고 훈련장에서의 첫날 밤을 보냈다. 또 아주 오랫만에 야간 상황근무를 서기도 했다.

동원훈련 첫날. 기상하자마자 식사를 하고 각자의 자리로 배치되었다. 나의 자리는 위병소. 임무는 차량입소자 문진. 도보입소 포인트와 차량입소 포인트, 입소자 주차장이 배치되어 있었다. 준비를 어느정도 끝났을 때,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엄청 내리 기 시작했다. 미친듯이 내리기 시작했다. 캐노피가 폭우가 찢어질 정도의 비였다.

아, 위병소를 내려가기 전에 훈련장 막사에 태극기가 걸려있지 않은 것을 발견했다. 지휘통제실에 국기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 국기를 걸기 위해 꺼내왔다.

입소를 준비했던 모든 장소가 물에 잠겨버렸다. 제일 먼저는 주차장이었다. 주차장을 담당했던 비상근예비군이 너무 안절부절 했다. 지휘관의 지시를 지시대로 이행할 수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내가 직접 다서 살펴봤다. 다행히 전부 잠기지는 않아 사용할 수 있는 부분부터 주차를 하면 가능할 듯 했다. 내가 대신 현장상황 보고를 하고, 담당하는 예비군에게 걱정하지 말고 잠기지 않은 땅부터 주차하면 된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시켜주면서 주차를 같이 유도해주었다. 주차장을 보고 왔더니 이번엔 문진소가 물에 잠기고 있었다. 차량문진소는 반만 잠긴 상태이고, 도보문진소는 검사 후 대기장소가 반쯤 잠겨있었다. 상황을 보고했는데, 일단은 진행하다가 도저히 안될 것 같으면 다른 여단의 화포차양대로 옮기자는 결론이 났다.

폭우 덕분에 상황은 변해가고 있는데, 여지없이 에비군들은 하나 둘 씩 입소하더니, 어느 순간 물밀듯이 밀려들어왔다. 다들 바뻐서 정신이 없어져가고 있는데, 차량입소자포스트를 같이 맡은 중대장이 내게 오더니, 차량입소자 포소트는 다 잠겼다고, 자리를 옮기겠다고 하셨다. 그래서 도보입소자 포스트를 보니, 여기도 거의 잠겨가고 있길래, 포스트를 화포차양대 밑으로 하나로 합쳤다.

그런데, 하나로 합쳐보니 오히려 문진소 운영이 훨씬 더 가벼워졌다. 앞으로 다시 동원훈련을 하게 될 때도 고려하면 좋을 정도로 운영이 심플해졌다. 이렇게 지연입소자까지 모두 처리하고 훈련장으로 넘어가야 하는데, 비상근 한 명이 자기는 밥먹어야 한다고 나보고 어떻게든 해달라고 하는데, 다른 병사들까지 있는데 민망해서 혼났다. 그래서 제일먼저 훈련장으로 올려보내고, 남은 인원들이 자리를 다 정리하고 마지막으로 훈련장으로 올라갔다.

지휘통제실에 도착했다. 역시나 그렇듯 바뻤다. 각 생활관의 준비상태를 확인하고, 동원예비군들의 훈련준비상태를 살폈다. 이번에는 생활관 하나를 전담하지 않았기에 돌아다니면서 준비되지 않은 생활관을 살펴봐줄 수 있었다. 그런데, 동원전력사령관께서 훈련장에 오신다는 연락을 받았다. 전투복 상태와 견장수여식을 보러 오신다는 연락이었다. 사령관은 돌아가시고, 입소식을 위해 예비군들을 안보관으로 이동시켰다. 좁은 실내에서 약 300명이 나와야 하기 때문에 포대별 생활관 별로 순차적으로 내보냈다.

입소식이 끝나고, 지휘관 정신교육이 끝나고 다시 막사로 이동을 하고, 저녁을 먹고, 안보강사 교육을 위해 다시 이동하고, 복귀하고, 샤워를 통제하고, 1일차 야간 점호를 해야 하는데, 포병대장이 내게 1포대를 맡아달라고 했다. 2,3포대는 평소에 단기비상근에비군 훈련에 참석하던 2,3포대장 분들이 맡기로 했다. 포병대장은 본부포대. 이렇게 일석점호(이제는 저녁점호라고….하던가?) 를 하고 지휘통제실로 다같이 모였다. 하루가 엄청나게 길었다. 무려 22,042걸음을 걸었다. 잠깐의 결산을 하고, 다음날을 위해 휴식을 취했다.

 

동원훈련 둘째날. 내 주 임무는 지속지원이기에 다들 훈련을 나간 이후에 스타렉스에 물을 싣고 각 훈련장으로 실어 날랐다. 그리고 훈련장 쓰레기통 제작 등 훈련받기 편한 환경을 만들기 위한 작업들을 했다. 이날은 비는 그쳤지만 습하고 몹시 더웠다. 특히 연병장에서 훈련을 받는 전포 파트 인원들은 무척 힘들어했다. 오후 훈련도 마찬가지로 훈련장에 물을 추가로 보충해 주고 복귀 했는데, 동원예비군 한 명이 화장실을 왔다가 길을 잃은 척을 하길래 내가 다시 훈련장에 데려다주겠다고 말하고, 어디인지 확인했는데, 개인화기 사격장이었다. 그래서 지휘통제실에 방탄헬멧을 가지러 들어갔다가, 여단장님과 부사단장님을 마주하게 되었다. 여단장님께서 나를 소개하시고, 칭찬까지 해주셔서 몸둘바를 몰랐다. 40대가 되면 이런 칭찬에 의연해 질 줄 알았는데, 아직은 레벨이 부족한가 보다 싶었다. 그리고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예비군을 계속 기다리게 할 수 없어 얼른 대화를 마무리 짓고 나왔다.

이 날 오후 생수 이동때부터 내가 운전을 하게 되었는데, 스티어링을 잡고 오프로드를 몇 주행했더니, 갑자기 기분이 좋아지면서 컨디션이 쭈욱~ 하고 올라오는 것이 아닌가. 코로나 회복하고도 아직 풀 가동상태가 아니었는데, 운전대를 잡으니 컨디션이 확 올라오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에 오프로드를 좀 타는건데 말이다. 포병대장이 나한테 ‘참 단순한 사람’이라고 하는데, 군에서 굳이 내 지휘관 앞에서 굳이 복잡한 사람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한때는 뱀처럼 살았던 어리고 어리석었던 시절도 있었지만, 결국 그게 내 군생활에 도움되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지 벌써 15년이다.

날씨가 너무 더워서였을까, 열사병 증세로 의무실로 실려오는 예비군들이 점점 생겼다. 한 명은 지금의 체력으로는 훈련을 버티지 못할 것 같다며 퇴소했지만, 열 명에 가까운 예비군들은 투약 후 휴식을 취하다가 다시 훈련에 복귀했다. 더 많은 도움을 주고 싶었지만, 이런 상황에 대한 정확한 규정을 알지 못했고, 정작과장님이 알려주는 사항 이상을 내 임의대로 판단하면 안되기에 기계적인 도움만 준 것 같아 그저 아쉬울 따름이었다.

이날 저녁에는 각 분과별 야간교육이 있었다. 나는 전포에서 방향틀을 잡았다. 십 몇년 만의 야간방열. 방향틀은 2개, 화포는 12문 거리는 약 70m. 그리고 야간방열에 훈련되지 않는 약 100여명. 아주 그냥 혼돈의 카오스 였다. 새삼 느꼈다. 야간에 작전하는 것은 생각 그 이상으로 어렵구나. 라는 것. 어떻게 해야 효과적으로 야간 작전이 가능한 지에 대한 고민을 동시에 하는 훈련시간이었다.

훈련이 끝나갈 때 즈음, 훈련을 어떻게 정리하면 좋을까 고민하고 있을 때, 한 예비군이 우리 포병대장에게 ‘이렇게 해야 한다, 저렇게 해야 한다’라고 말하는 모습을 보았다. 지휘관이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게 간언하고, 결정에 대한 사항은 실현될 수 있게 하는 것이 부대 간부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는데, 본인이 맞다고 생각하는 바를 관철시키는 모습을 보고 놀랬다. 결국 자기가 원하는 대로 우리 대장을 움직여서 작업을 시작해 놓고는, 중간에 본인은 시간이 되었다고 그냥 복귀해버렸다. , ‘나는 저러지 말아야 겠다’라고 타산지석을 삼는 계기를 삼는 이벤트였다.

 

마지막날. 우리의 임무는 마지막까지의 훈련과 물자정리를 동시에 하는 것이었다. 동원예비군은 여전히 식사하고, 오전에 마지막 훈련을 해야 했지만…. 비가 또 내리기에 우천 시 교육으로 전환했다. 그런데, 비가 점점 거세지더니 또 폭우처럼내리기 시작했다. 생활관 복도를 돌아보니, 상당수의 우산이, 복도에 그대로 있는 것이 아닌가. 이대로 가면 민원이다. 안된다. 포병대장님은 우산을 교육장까지 가져다주기로 결정했고… 정말 우산 제대별 생활관별로 정렬할 수 있게 우산을 실어날랐다. 그리고 잠깐 방심했는데 아차, 수송교육 간 인원들을 태운 중형버스는 포병여단까지 밖에 오지 않는구나. 생각한 순간 대장에게 연락이 왔다. 교육인원을 생활관까지 수송해야 한다는. 때마침 SUV를 끌로 올라온 인접여단 포병대장님께도 도움을 요청해서, SUV2대 트럭 1대로 외부교육 인원들을 생활관까지 수송했다.

이때부터 나는 이미 비를 열심히 맞았다. 나 뿐만이 아니라 포병대장 이하 모든 인원이 비를 맞기 시작했다. 정말 펑펑 내리는 비를 맞으며 훈련의 마무리와 더불어 훈련장정리를 진행했다. 오전교육까지 마치고, 점심을 먹었다.

나는 점심식사 전에 조기퇴소하는 동원예비군에 대한 총기 및 물자 반납 임무 또한 실시했다. 몇 명 되지는 않았지만, 총기수입부터 관물대 확인까지 진행되었다. 딱히 마지막 날에 대한 기억은 없다. 오후부터는 총기 반납과 동시에 전 인원이 달려들어 흔련물자 철수 준비를 했다. 각 대대에서 지원까지 나와주어서 훈련 마무리와 철수준비가 동시에 가능했다.

16시. 동원예비군 퇴소식이 시작되고, 예비군 안보관 인솔이었던 마지막 임무까지 종료되었다. 퇴소식이 시작되는 것을 보고 나는 지휘통제실로 복귀했다. 폭풍같던 철수가 일단락되고(다음날 출근해서 나머지를 징리하기로 했다) 예비군들이 퇴소식 후 내려가는 것 까지 확인하고 다들 그제서야 잠시 앉아 휴식을 취했다. 그리고 마지막 힘을 내어 전 인원 주둔지로 복귀를 진행했다. 이때까지도 비는 잔잔히 내렸다가 폭우로 변했다가 했다.  모든 인원이 복귀한 것을 보며 소집시간이 종료된 나는 먼저 퇴근했다.

훈련종료 다음날.

훈련장 청소 겸 다음 부대 훈련장 인수인계를 위해 다시 훈련장을 찾았다. 오전엔 주로 인수인계 및 청소를 하는데, 나는 예비군인지라 물자 인수인계에 대해서는 관여 할 수는 없었다. 대신 훈련장 여기저기를 총서하는 용사들을 도와주고, 군용 트럭에다가 취사 트레일러를 견인할 수 있게 걸었다. 오후에는 훈련에 사용했던 총기를 다시 닦았다. 무기고에 들여놓을때부터 억수같은 비를 맞고 1주일 내내 비오고 습한 날씨의 연속이라, 총기는 하루 사이에도 발청이 나 있었다. 총기를 열심히 닦고 다음주 훈련부대에 확인받고 정리했다.

이제, 다음주에 있을 타여단 포병대 동원훈련 지원을 준비하러 주둔지로 복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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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장기 비상근예비군 1기. 이 제도가 어떻게 되는지 두 눈으로 보기 위해 다니던 직장을 때려치고 다시 한 번 군에 투신한, 두번째 복무를 불태우는 중년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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