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한기 전술훈련 2주 후, 부대로 다시 출근을 하였다.
2월의 내 계획은 전투준비. 내가 없는 동안 도착한 신품 부품들을 교체하고 내 임무수행철을 재정리 하는 것.
하지만, 항상 일은 뜻대로 되지 않는 법, 3월에 상급부대에서 창고사열을 하겠다는 말이 내려왔다.
모든 일과는 후순위로 밀리고 창고정리가 제일 업무로 올라왔다.
전투용창고, 운용용창고, 위장망창고, 포병컨테이너, (통신창고는 내가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것이라) 의 정리를 도와주게 되었다.
그러던 중에 하루, 눈이 내렸다. 겨울에는 눈이 내리는 거지. 그런데 좀 많이 내린 날이었다.
그러면 부대에서는 무엇을 하느냐, 제설작전을 실시한다.
한밤중부터 내려서 그런가, 아침에 출근했을 때는 많이 치워져 있었다.
나는 같이 출근한 정보중대장과 용사 3명을 데리고 우리 담당 초소의 제설을 하거 갔다.
8시 45분에 시작한 제설은 10시 반 정도에 마무리가 되었다.
그리고 또 다시 창고정리를 도와주러 갔다.
내가 왜 ‘창고정리를 한다’라는 표현을 쓰지 않고 ‘창고정리를 도와준다’라는 표현을 쓰는 걸까?
이렇게 표현하게 된 이유를 찾으려면 2년 전, 장기비상근예비군 1기 시절로 돌아가야 한다.
이건…거의 부사관들에게 해당되는 이야기.
장기 비상근예비군이라는 제도가 처음 생기고, 운용되는 2022년.
현역과 동일한 일과를 적용한다… 라는 말이 명확하게 정착되지 않던 시기였다.
그래서 부사관 예비군들이 부대관리를 몹시 열심히 하던 일이 벌어졌다.
새벽부터 출근해서 야근까지 하면서 예초기를 돌렸고
무너진 부대 법사면을 몇달에 걸쳐 흙을 채워 복구하고
그런데, 이것이 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
예비전력 교관 및 전투물자 관리, 전투준비를 하라고 뽑아놨더니
예초기돌리고, 창고정리하고, 배수로 파고 있으면 되겠냐.
이럴꺼면 장기비상근예비군 왜 뽑냐, 현역을 추가로 뽑지…라는 말이 나온 적이 있었고,
이 사건을 결말이, 180일 100일 복무기간이 줄어든 이유일 것이라는 추측 또한 했던 적이 있었다.
그 이후로는 서로 조심한다고는 하지만,
그게 되겠냐 이거다.
장교출신 예비군들은 그나마 지휘관 또는 참모 임무 수행이라 굳이 작업을 하지 않아도 해야 할 일이 많지만,
부사관출신 예비군들은 부대관리에 동참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다.
특히 부사관들.
부대관리가 부사관의 책무라고 한다면
예비역이라도 부사관은 부사관이다.
모두 다 나가서 작업하는데 나만 앉아서 다른 일 하면 부대원들과 퍽이나 잘 어울리겠다 이거다.
또한
그렇다고 부대관리를 하는게 싫은 것은 아니다.
다만 내가 물리적으로 쓸 수 있는 시간의 한계가 있을 뿐.
그렇다고 해서 내가 하는 작업에 책임을 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비상근예비군이라는 신분이 ‘정’ 이나 ‘부’ 또는 ‘실무자’ 될 수 없는 신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행동에 더 조심스럽다.
나의 젊은 지휘관은 괜찮으니, 책임은 본인이 지니까 마음껏 하라고 하지만,
이제는 늙어버린 사회인 출신 예비군은
나의 행동에 나의 지휘관이, 나의 후배들이
그들이 하지도 않은 내 행동에 피해를 입을까 항상 걱정하며 복무한다.
이래저래 말이 두서가 없다.
이번 주제가 그렇다.
평소에도 같이 부대관리를 하고 있지만
(내가 웃으며 말한다. ‘나까지 작업에 나간다는건 더 물러설 수 없이 부대가 바쁘다는 뜻이다.’ 라고.)
부대관리를 하고 있지 않다고 말할 수 밖에 없는 현실.
(공식적으로 지시된 임무에는 부대관리는 없으니)
그렇다고 해서 장비관리나 전투준비에 소흘히 하지도 않겠다는 의지까지.
(나의 올해 목표는 2/3포대 전투물자의 완벽한 치창화이다.)
결국 이 임무도 내가 마무리 하지 못하게 되었다.
나의 이번달 출근일을 모두 소진했지만, 최종 사열은 다음달이기 때문이다.
정말 열심히 했고, 지금도 열심히 하겠다고 하고 있지만,
누구 말처럼 ‘많이 출근하는 예비군’인 것인가.
복잡했던 2월이 이렇게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