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원훈련이 끝나고, 또다른 큰 일정이 다가왔다.

전투장비지휘검열.

화포의 작동상태를 확인하고, 부수기재의 보유상태를 확인하는 검열. 포병으로서는 처음 준비하는 검열이라 괜히 긴장이 되었다.

준비시간은 2주. 현역들은 다른 부대관리 업무로 정신이 없어서 이번 검열은 포병대 장기비상근 3명이서 주도를 하기로 했다.

우리의 공략 포인트는 두군데 였다. 하나는 화포차양대, 다른 하는 화포창고. 여기에 대포에 월동준비까지 해야하는 미션이 추가되었다.

여기서 3명의 의견이 엇갈렸다.

선배는 딱히 의견이 없었다.
나는 ‘공략 포인트가 두 군데니 동시에 두 군데를 공략하고 먼저 끝난 파트에서 다른 파트를 지원하자.’
후배는 ‘모두가 다같이 하나 끝내고, 다른 하나를 끝내자.’

결국에는 내가 좀 어거지를 부려서 두 파트로 나눠서 일하기로 결정을 했다.

 

그리고 작업을 시작했다.

나는 창고정리를, 후배에게는 일단 대포 월동준비를 맡겼다. 심지어는 포병대 병력 전부와 선배까지 화포차양대로 보내고, 나는 혼자 창고정리를 맡았다.

이렇게 4일 정도 작업이 진행되었을까, 창고정리를 하다가 화포차양대는 얼마나 작업이 되었나 보러 가는 중이었는데, 후배다 모두를 인솔해서 창고로 오는 것이 아닌가, 중간에서 마주치자 마자 후배는 모든 대원들 앞에서 내게 꾸중을 했다.

“모두가 대포 월동준비 하는데, 혼자 어디서 뭐하는 거냐!”면서.

순간, 당황했다. 이 후배는 작업을 시작 할 때 결정된 사항을 대놓고 무시하고 내가 자기 의견을 따르지 않은 것을 질타하고 있구나…..뭐지 싶었다.

창고에서 검열준비를 했다는 대답을 했지만, 후배는 그건 다음주에 하면 된다는 말만 한 채, 병력들을 데리고 나를 지나쳐버렸다.

당황에 당황을 했다. 회의를 했고 결정을 했는데, 자기 의견이 아니라고 이렇게 무시하다니. 그렇다면 내가 뭐하러 병력도 없이 이렇게 혼자 생고생을 하나, 나도 병력 데리고 하면 더 빨리 끝낼 수 있지만, 화포차양대가 규모도 크고 사람이 많이 필요하니 그쪽으로 다 보낸 것인데.

이렇게 한 주가 끝나가는 오후에 현역 멘토와 휴게장에서 커피 한 잔 하고 들어오는데, 후배가 현역 멘토에게 대뜸 물어봤다.

“장비검열보다, 대포 월동준비가 더 중요하지 않나. 왜 선배가 혼자서 장비지휘검열을 준비하는지 모르겠다.”

명백하게, 자기가 잘하고 있고 내가 잘못하고 있지 않냐고 확인사살하고 싶은 질문이었다.

나도, 멘토도 당황했다. 둘이 생각했을 때 명확한 중요우선순위가 정해진 업무인데 말이다. 멘토가 뭔가 다짐한듯한 어조로 대답했다.

“대포 월동준비는 해야 하는 일이지만, 장비지휘검열이 더 중요한 일정이다.” 라고.

후배는 그때부터 말수가 많이 줄었다.(지휘검열 즈음까지만)

 

나는 이 사건이 지나고, 그 다음주 수요일정도에 화포별 부품 수량 및 상태 정리를 마칠 수 있었다.(결국 혼자서)

후배도 화포정비가 끝났다고 얘기했다.

후배를 데리고 화포차양대로 가서 물었다.
“이 중 검열받을 만한 깔끔한 화포 두 문을 골라 보라.” 그렇게 화포 두 문이 선정되었다.

 

대망의 검열날.

사단에서 총포관련 인원들과 총포담당 장기비상근 선배도 같이 검열을 수행하러 내려왔다.

점검을 시작하는데,
첫번째, 화포의 구동상태는 합격점을 받았다.

그런데, 내가 미처 알지도 못하는 곳의 부품이 파손되어 있었다. 아차 싶었다. 심지어 나는 아직 그 부품의 용도조차 몰랐었다. 지적을 수긍했다.

마지막으로, 화포의 도색상태에 대해서 지적하는데, 이것도 할 말이 없었다. 도장이 너무 건조되어 부서져 나가고 있는 것은 지금의 나로서는 어떻게 할 수 가 없었다.

이렇게 화포점검은 끝났다.

두번째, 화포창고에서 부수기재 검열이었다.
아무 문제 없이, 완벽하게 끝났다.

 

검열이 끝났다. 창고 및 부수기재 부분에서는 문제가 없었지만,
화포 부분에서는 아쉬움이 너무 컸다.
내가 끝까지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
더 잘 할 수 있었는데 그렇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너무 컸다.

그나마, 두 파트로 나눠서 작업을 진행해서 창고 및 화포부수기재 부문에서라도 지적없이 끝난 것에 대해
다행이었다.

 

검열은 끝났지만, 의문은 남았다.

‘저 후배는 나한테 왜 이러는 걸까?’

의문은 있었지만, 대놓고 물어보지는 못했다. 평소에도 자기 말이 맞다고 고집을 좀 부리는 편이었고, 큰 문제가 안된다면 거의 들어주는 편이었는데 이번에는 그 간극이 많이 커서 그랬는지, 더 물어보지 못했다.

그런데, 후배가 먼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이상사님, 나는 이상사님의 경쟁자가 아닙니다.”

아하, 이 말로 인해 이번 검열에서의  부딪힘과, 그간 있었던 몇번의 갈등에 대한 의문이 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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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장기 비상근예비군 1기. 이 제도가 어떻게 되는지 두 눈으로 보기 위해 다니던 직장을 때려치고 다시 한 번 군에 투신한, 두번째 복무를 불태우는 중년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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