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포까지 모두 복귀하며, 1년에 가장 큰 훈련인 동원훈련이 마무리되었다.

여단장님의 배려로, 사단 회관에서의 소속대 전체 회식이 결정되었다.

회식이 시작되고 얼마나 지났을까,
고참 분들이 근처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인사도 할 겸 잔 하나 들고 찾아갔었다.
잔도 얼추 돌고, 얘기를 이어갈 때, 내가 말씀 편하게 하시라고 했는데

현역도 아닌데, 어떻게 그러냐.
이상사가 어떻게 후배냐.

먼저 임관했다고 하지만,
군생활 기간이 짧은데 이상사를 어떻게 선배라고 할 수 있는가.
여기 비상근 선배대우 받으려고 온 것이냐.

우리 현역들에게는
장기든 단기든 비상근예비군은 군무원처럼
또 다른 하나의 보조그룹일 뿐이다.

술은 취하려고 마시는 것인데, 술이 확 깼다.
살아남은 자만 선후배로 인정한다니,

나는 내가 하고 싶었던 질문,
“이제는 우리도 공식적으로,
상호존칭을 지금처럼 계속 할 지, 선후배에 속하게 해주셔서 부사관단으로 인정해주실 지 정해도 될 듯 합니다”
라는 말의 첫 글자도 말하지 못했다.

이미 답은 정해져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질문조차 무의미하다는 것은 이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더 이상 가면 싸우는 일 밖에는 남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싸우고 싶지 않다. 그저 한번도 거론되지 않았던 사안을
비상근 예비군이 더 늘어나기 전에 정리해보고 싶었을 뿐,
대우를 바란다거나 반말을 하고 싶다거나 라는 쪼잔한 생각 보다는
조금 더 끈끈한 ‘우리’ 였었으면 좋겠다는 단순한 마음일 뿐이다.

내가 사회에서의 기준을 군에 적용했어서 문제가 되었던 것일수도 있다.
입사동기는 서로 다른 길을 걷고 있어도
동기는 동기, 선후배는 선후배.

이들 눈엔
난 그저 장기복무 비선된, 도태된 한 명의 루저였던 것이다.

그리고 갑자기 또 생각났다.
2022년에 이벤트가 하나 있었다.
동원예비군훈련에 강의 온 강사가

“예비군은 육군의 서자”라고 발언한 것이다.

멀리서 볼 것도 아니었다.
바로 내게 하는 말이었던 것이다.

예비역 복무 3년차.
내가 처음 시작할 때 부터 최근까지 갖고 있었던 질문이 있었다.

“어째서 우리는 좀처럼 현역들과 좀처럼 가까워지지 못하는 것일까?”

답이 나왔다.
그들은 우리를 군인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저
군무원 같은 다른 부류의 ‘군복입은 민간인’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처음 장기비상근 복무를 시작할 때 부터 지금까지,

내가 후배라고 생각했던 현역들에게
단 한번의 경례조차, 인사에 대한 답례조차 받을 수 없었던 의문에 대한 답을
살짝은 솔직하게
(아마 오래전부터 내게 하고 싶었던 말이었을 수도 있다)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게 웃긴 일인데,
2년 넘게 복무하면서 내가 했던 모든 업무들을
이들은 그저 ‘군인놀이’라고 보고 있었던 것이라 생각하니,
내가 했던 무수한 경례들이
사실은
내가 내 처지를 모르고, 마치 나도 군인인 듯한 착각 속에 했던
허공을 가르는 의미 없는 행동이었다고 생각하니,
업무를 감당하지 못했던 후배를 걱정하며 했던
주임원사님과의 대화들이 생각나니,
너무나도 창피했다.

나는 나의 처지를 너무나도 모르고 순진했구나.
같은 옷을 입었다고 해서 같은 구성원이 되는 것을 아니었구나.
부지불식간에
내가 철옹성같은 기득권에 도전하고 말았구나.
까지 생각되니
이런 분란을 일으켜놓고도
내가 내년에도 지금 부대에서 복무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까지 들게 되었다.

더 늦기전에 알게 되서 다행이다.
나 또한 부대에 많이 소집되는 그저 한 명의 예비군이라는 것을.

현역들은 장기비상근은 예비역으로 보고
단기비상근은 장기비상근을 현역으로 보는 끼인 현실에서
결국 나는 예비군이었다는 사실을.

현역과 예비역 사이에서 교각을 이룬다는 허울좋은 말은
현역들이 보기에는 그저 책상놀음 문서쪼가리였다는 것을.

나는 이제 복무일수가 몇일 남지 않아
당분간 출근하지 않는다.

나는 나이가 있어서 이정도에서 멈추었지만,
나보다 젊은 부사관 장기비상근분들은 나보다 더한 처우를 받고 있을 지도 모른다
혼자 생각하니
새벽 선풍기 바람에 함께 휘몰아치는
비관에 비관이 꼬리를 물고 놓아주지 않는다.

그나마 다행이다. 나의 마음을 추스릴 수 있는 약간의 시간이 있어서.
그래도 나의 임무는 명확하고
임무를 완수하라고 국가가 기회를 주고, 다시 군복을 입을 수 있게 해준 것이니.

하지만
출근하게 되면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젊은 현역들에게
‘앞으로 내게 경례하지 마라’
라고 즉각적으로 말해야 한다.

이들의 현역 선배들이 내게 경례하는 것을 보고
이들의 평판을 절하할까 걱정이 된다.

그리고 이제는 나도 경례하지 않아도 되는 듯 하다.
똑같이 군복을 입었다고 해도
군인으로 인정받지 못한다면
경례는 못하는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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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장기 비상근예비군 1기. 이 제도가 어떻게 되는지 두 눈으로 보기 위해 다니던 직장을 때려치고 다시 한 번 군에 투신한, 두번째 복무를 불태우는 중년 아저씨.

2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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