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장기비상근예비군 제도의 첫 해가 마무리되고 있었다.

그리고 10월에 발표될 것이라던 내년도 선발계획이 12월에서야 발표되었다.
소문으로만 들었던 근무일자 변경이 현실화되었다.

시험운용 1기는 전 인원이 180일 복무였는데,
시험운용 2기는 중령, 원사보직인 몇몇 자리를 제외한 모든 보직이 최대 100일까지만 복무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72사단과 3보급단으로 확장되면서 50명이었던 TO가 줄어들게 되었다는 것.

이 얘기는
‘연봉으로 따지면 2700에서 1500으로 줄었는데도, 그래도 할래?’
‘직장인은 이제 그만 해야 하지 않겠나?’ 라는 이야기를 돌려말하는 듯 했다.

일단 공고는 났지만, 모집 마감까지는 시간이 많았고,

사단의 모든 비상근예비군들이 각자 임무의 마무리를 하기 시작했다. 나또한 마찬가지.

컴퓨터의 파일들을 분류에 따라 분류하고, 불필요 파일들을 정리했다.
인쇄물 중에서도 같은 방법으로 정리해고 불필요 서류를 파쇄했다.
화포차양대의 잡초를 마지막으로 한번 더 정리하고, 묵은 흙먼지를 쓸어냈다.
화포창고를 정리하고, 현황을 전포대장과 포반장에게 각각 직접 인수인계 하였다.

애초에 비밀을 취급하지 않아서 중대하게 진행되는 인수인계 사항은 없었다.

 

이렇게 1년을 마무리하던 중,
12월 19일 00시 55분. 나의 첫 아이가 태어났다.
내 인생의 첫 아이를 군복을 입고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기회를 만들어준 국가와 육군에게 감사했다.

 

이렇게 연말이 다가왔고, 다들 각자의 길을 가야 할 때였다.

우리 여단의 8명의 경우도 각자의 길을 선택하기로 했다.

지원통제과장은 군무원에 최종 합격해서 떠나게 되었다.
보급통제장교, 통신반장, 2포대 전사관은 재취업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정보중대장은 항공준사관 최종시험때 까지는 남아있겠다고 했다.
1대대 통신부소대장은 군무원 준비 하면서 내년에도 함께 하기로 하였다.
3대대 통신부소대장은 취업이 되었지만 최소 일수라도 근무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나, 1포대 전사관은 100일 근무에 지원하기로 했다.

 

이렇게, 나의 1년차 장기 비상근에비군 복무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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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장기 비상근예비군 1기. 이 제도가 어떻게 되는지 두 눈으로 보기 위해 다니던 직장을 때려치고 다시 한 번 군에 투신한, 두번째 복무를 불태우는 중년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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