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에는 상반기 포술경연대회가 있었다.

포병집체교육을 먼저 실시하고, 다음주에 포술경연대회를 수행하는 일정이었다.

포병집체교육을 실시하는 주간에는 비가 참 많이 내렸다.

화포만 잡으면 비가오는…그런 느낌? 그래서 생각 이상으로 개인주특기 및 반단위 훈련을 많이 하지 못했다.

덕분에, 내 개인주특기 또한 많이 연습하지 못했다.
나의 개인주특기는 대포를 방열하는 장비를 운용하는 것이라 대포 없이는 모든 기능을 연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용사 친구들은 덕분에 시한신관 조작을 마스털 할 정도로 연습했다.

 

이 와중에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우리 포반장이, 다음번 포술경연대회때는 본인이 방향틀을 잡고 싶다고 직접적으로 내게 말한 것이다.

보병여단의 포병대 중에 예비역이 방향틀을 잡는 부대는 우리 뿐이다.
타여단은 포반장이 방향틀을 잡는다.
비상근예비군이 있긴 하지만, 포술경연대회때는 포반장이 잡고 있다.

본인도 욕심이 났을 것이다.

그래서
고별전이다, 생각하니 더욱 의지가 결연해졌다.

어느덧 한 주가 지나고, 포술경연대회가 다가왔다.

화포를 이동시키고, 몇번 더 방열을 실시했다.
그런데 연습을 하면 할 수록 오차가 커지기 시작했다.

정확하게 말하면,
방열하는 장소에 서 있던 가로등에 가까이 갈 수록 방열점검 시의 오차가 점점 커졌다.

혹시 나만 그런 줄 알아서, 속으로 불안함이 엄습했 왔지만, 다른 부대 방향틀도 모두 똑같은 증상을 보여 그나마 조금 안심이 되었다.

포술경연대회날.
용사들의 개인주특기 평가가 끝나고, 반단위 방열평가가 시작되었다.

평가관은 포병여단 주임원사님.
평가용 방열방위각은 내가 쪽지 중 하나를 뽑는 것이었다.

뽑기 결과는, 무려 5,100!!

경쟁하는 여단들이 약 2천밀 대의 방열방위각을 뽑은데에 비해
포를 완전히 뒤로 돌려할 정도의 큰 방위각을 뽑은것이다. 이런 운도 없는 녀석.

방열평가를 시작하기 전에, 자꾸 작년의 악몽이 떠올랐다.
방열점검 100밀오차. 이건…뭐라 말하기도 싫은 사건이었다.

올해도 그럴수는 없다. 라고 다짐을 하면서 방향틀을 쓰다듬었다.

포병여단 주임원사님의 지정한 위치에 서서
방열방위각을 외치고, 정치를 시작했다.
오케이, 예상대로 되었다.

이제 방열편각 장입. 혹시나 있을 오장입을 방지하기 위해 자침을 풀기 전 한번 더 확인했다.
자북을 잡고, 방향포경을 조준하고, 방열편각을 맞추고, 상호조정까지 끝났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다.
이제 남은 것은 방열점검 뿐.

방열점검을 위해 방향틀을 뽑아서 재지정 위치에 정치했다.

정치를 하고, 장입을 하고, 자북을 잡으니
손 때고 물러서라고 했다.

이 때 가슴이 정말 크게 뛰었다.
나도 모르게 오장입했으면 어떻하지?
정치했는데 살짝이라도 틀어졌으면 어쩌지?
자침은 정확했을까? 등등의 고민들이 마구마구 스쳐지나갔다.

주임원사님이 방향틀로 전포 방향포경을 쪼개고,
전포 평가관과 전화하여 상호조정을 하였다.

최종결과는, 시간 내 방열. 그리고 3밀오차!!
방열 부문에서 만점 대비 1점 감점.

만점은 아니지만, 제대로 된 결과가 나오자
속으로 안도와 안심이 밀려들었다.

아, 다행이다. 이번엔 제대로 했다.
나는 엄청 기뻤다. 작년대비 방열점검 오차 -97밀을 달성했다.

하지만
전포 전체 점수에서 2점 정도 밀리고 있어서
포반원들 앞에서 너무 기뻐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사격지휘 부문은 바로 결과가 나오지 않아서 최종결과는 알 수 없는 상태로
포술경연대회는 끝이 났다.

종합우승을 하면 좋겠지만, 작년대비 결과가 좋아서 스스로는 만족스러운 대회였다.

 

 

포술경연대회가 끝나자, 여단전투력측정 연습이 바로 시작되었다.

여단장님을 포함한 평가인원들이 연습을 했을 때는 약 5분 30초 정도가 걸렸다.
가장 마지막 연습에는 방향틀을 내가 잡으라는 요청이 있어서

내가 방향틀을 잡고 3분 23초 정도로 줄었다.
또한 방열점검 오차도 2밀.
차폐가 선정때 잡아먹은 20초를 제외하면 만점에 가까운 성적을 보여주었다.

여단전투력측정때는 내가 현역이 아니기 때문에 평가에서 제외되었기는 하지만,

이 부대에서 소집훈련하는 1년의 시간동안
여단구성원에게, 내가 ‘전포사격통제부사관’이라는 존재의 가치를 보여주는 기회는 없었다.

평소에도 열심히 하고 있지만,
실제 전투 임무에서 현역에 준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가에 대한 부문에 대하여
내 능력을 보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내가 왜 열심히 하냐고?
작년에 처음 배치되었을 때를 지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미력한 나라도, 전투력 발휘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소망이다.

내 딸이 앞으로 살아가야 할 대한민국이다.

 

이렇게 6월이 지나갔고, 나는 이제 62일의 근무일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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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장기 비상근예비군 1기. 이 제도가 어떻게 되는지 두 눈으로 보기 위해 다니던 직장을 때려치고 다시 한 번 군에 투신한, 두번째 복무를 불태우는 중년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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