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레네오, 리용의 Irenaeus Lugdunensis (130/140? ~ 202경)
성인. 리용의 주교. 순교자. 이레네오는 “가톨릭 교회의 수호자”라고 불릴 정도로 2세기 신학자들 중에서 가장 특히 그노시스주의 계통의 이단들에 대항하여 정통 교리를 수호한 대표적인 교부이다. 축일은 6월 28일.
〔 생애 〕
이레네오는 소아시아의 스미르나 출신으로 포리카르포(69~155)의 제자였다. 그는 당시 로마의 사제였던 친구 플로리아노에게 보낸 편지에서 스승 폴리카르포로부터 배웠던 어린 시절의 추억을 회상하고 있다.(에우세비오, 《교회사》 5, 20, 5~7). 이것은 이레네오가 폴리카르포 주교를 통해 사도 시대와 연관되어 있었음을 나타냄으로써 그의 사도적 정통성과 권위를 드러낸다. 그의 출생 연도에 대해 논란이 많지만 130~140년 사이로 추정된다. 그는 로마에 와서 오랫동안 머물렀으며, 이때 유스티노(100/110?~165?)가 세운 교리 학교에서 공부한 것으로 보인다. 그 후 언제 무슨 이유로 프랑스의 리용으로 가게 되었는지 알 수 없다. 그는 177년 리용 교회의 특사로 교황 엘레우테로(174~189?)를 방문하여 몬타누스주의 문제에 대해 상의하고 리용 지방의 순교자들에 대해 보고하였다. 이때 그가 교황에게 제출한 편지에는 그를 추천하는 다음의 내용이 들어 있다. “우리는 당신께 이 편지를 가지고 가는 일을 우리의 현제이며 동려인 이레네오에게 부탁했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계약에 대한 열정으로 명망이 있는 사람이니 잘 맞아 주시기를 바랍니다.사실 우리는 합당한 지위의 사람을 찾던 중에 그를 우리 교회의 장로 자격으로 즉시 선정하였으며, 그는 실상 그런 인물입니다”(에우세비오, 《교회사》 5, 4, 2). 그는 몬타나누스주의가 자신의 고향 지역에서 발생하였기 때문에 이에 대해 걱정이 남달리 컸던 것으로 보인다. 그가 로마에 체류하는 동안 리용의 주교 포티노(Photinus)가 순교하였으며, 리용에 돌아온 즉시 주교로 선출되었다.
한편 교황 빅토르 1세(189~198/199?)가 부활 축일의 일자에 대한 소아시아 교회의 관습을 단죄함으로써 동방교회와 서방 교회 사이에 분열되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사실 서방 교회는 일찍부터 부활 축일을 춘분이 지난 만원 다음 주일로 정했던 반변, 동방교회는 음력에 근거해 니산달 14일로 정함으로써 동 · 서방 교회가 서로 다른 날에 부활 축일을 지냈다. 그래서 교황은 교회 안의 통일 기하기 위해 동방교회 주교들에게 서방교회의 방식을 받아들이도록 강요하였던 것이다. 본래 동방 지역 출신으로서 동방교회의 전통을 잘 이해하고 있던 이레네오는 빅토리 1세 교황에게 여러 차례 편지를 보내어 불목을 청산하고 일치와 화해를 이루도록 종용하였다. 에우세비오 (Eusebius Caesariensis, 260/265?~339)는 《교회사》에서 (5, 24) 그의 주애 역할을 높이 평가하면서 그의 이름— ‘평화’라는 의미의 그리스어 ‘에이레네'(εἰρήνη)에서 나옴—에 걸맞게 ‘평화의 사람’ (εἰρηνοποιός)이라고 불렀다. 이후부터 그의 행적에 관한 기록은 없다. 그러나 후대의 문헌(투르의 그레고리오, 《프랑스 역사》 1, 27)에 의하면, 이레네오는 202년경에 순교하였다고 한다.
〔 저서 〕
이레네오는 많은 저서와 편지들을 썼지만, 현재 전해 오고 있는 것은 《이단논박》(Adversus Haereses)과 《사도적 가르침의 증명》(Demonstratio praedicationis apostolicae)뿐이다. 이레네오의 신학적 공헌을 이단 사상들의 정체를 적나라하게 폭로하면서, 동시에 초기 교회의 정통 신앙을 확립하였다는 점이다.
《이단 논박》 : 이 저서는 이레네오의 대표적인 작품으로써 본래의 제목은 《거짓 그노시스의 정체와 논박》인데, 그리스어로 쓰여진 원문은 유실되고 라틴어 역본만 전해 오고 있다. 이 저서는 흔히 《이단 논박》이라고 하며, 모두 다섯 권으로 되어 있는 방대한 작품이다. 원제목이 암시하고 있듯이 이 저서는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1권)에서 이레네오는 각종 그노시스주의의 역사와 학설을 포괄적으로 소개한다. 우선 발렌티누스파의 삭설과 주장을 비교적 상세히 소개하고 반박한 다음, 마술사 시몬에게서 시작되는 그노시스주의 분파의 창시자 또는 계보 12개를 소개한다. 제2부(2~5권)는 논박 부분으로써 모두 네 권으로 되어 있다. 제2권에서는 발렌티누스(Valentinus)와 그 추종자들 그리고 마르치온(Marcion, ?~160)과 그 추종자들의 거짓 그노시스 사상을 인간 이성에 입각하여 각각 반박한다. 제3권은 가장 핵심적인 부분으로, 여러 형태의 그노시스주의를 거슬러 진리의 보고(寶庫)인 교회 전승의 가치를 역설하면서 성서를 바탕으로 그노시스주의의 허구성을 지적하고, 동시에 그리스도교의 진리를 설파한다. 제5권에서는 그노시스주의자들이 부인하는 인간 육신의 부활에 대해 주로 설명한 다음, 끝에 천년 왕국설에 대해 언급하면서 자신도 그 주창자라고 밝히고 있다.
이 저서는 방대하지만 신학적 체계와 일관성이 부족하다. 논리적 연결이 미흡하고, 잦은 반복과 지루한 설명은 독자들에게 싫증을 느끼게 한다. 그 이유는 이 작품이 일시에 집필되지 않고 상당한 기간에 걸쳐 쓰여졌기 때문이다. 이 작품을 통해 그노시스주의의 계보와 내용, 그리고 초기 교회의 가르침과 모습을 비교적 선명하게 알 수 있다. 이레네오는 자신이 직접 그노시스주의자들의 많은 저서들을 읽고 연구하였으며, 또 이단을 논박한 교회 저술가들의 저서들을 참고하였다고 밝히면서 자기 저서의 내용에 대해서 자신하고 있다. 그가 읽고 참고한 저서들이 대부분 유실되었기 때문에 어떤 것들인지 정확하게 알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레네오의 《이단 논박》은 그노시스주의 연구에 중요한 사료가 되는 동시에 이단 논박에 관련된 후대의 교회 저술가들에게 기초 자료가 되어 왔다.
《사도적 가르침의 증명》 : 교리서적 성격을 디면서 일종의 호교 작품인 이 저서는 97장으로 되어 있으며 두 부분으로 구분된다. 서언(1~3장)에서 저자는 이 글을 쓰게 된 동기를 밝히고, 제1부(4~42장)에서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 내용을 서술하면서 하느님의 성삼(聖三), 창조, 인간의 차락과 범죄, 예수 그리스도의 육화와 구속 등 구원의 역사를 조명하고 있다. 다시 말해, 아담으로부터 예수 그리스도에 이르기까지 하느님의 구원계획을 일목요연하게 제시한다. 제2부(43~97장)에서는 구약의 예언들을 통해 나타난 하느님의 계시를 설명하며, 이 예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성되었다고 역설한다. 따라서 예수 스리스도는 다윗의 아들이며 하느님의 아들로서 당신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인류에게 구원을 보증해 주신 구세주라는 사실을 설파한다. 끝으로 이레네오는 독자들에게 신앙에 따라 충실하게 생활할 것을 권고하면서 어느 경우에도 이단이나 불신앙에 빠지지 말도록 당부한다. 그는 《이단 논박》에서와 달리 이 저서에서는 이단들에 대한 논쟁적인 자세를 피하고 보다 적극적인 의미에서 그리스도교의 핵심 교리를 포괄적으로 설명하는 동시에 이를 입증하고 있다. 이 저서는 에우세비오의 《교회사》에 저서의 이름만 전해져 왔었는데, 1904년에 아르메니아어 역본이 발견되고 1907년에 출판됨으로써 세상에 알려졌다.
〔 신학 사상 〕
그노시스주의의 이원론에 대항한 일치의 신학 : 이레네오는 그노시스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이원론적 신관(神觀), 곧 구약의 창조의 신과 신약의 구원의 신이 별개의 대립된 신이라는 주장에 대항하여 유일하고 같은 한 분의 하느님 ‘유일신'(唯一神)을 역설하는 데에 초첨을 맞추고 있다. 참된 하느님은 바로 우주 만물의 창조주이며 동시에 ‘로고스’의 성부임을 강조한 것이다.
한편 그는 사변적인 관점에서 성삼위(聖三位)의 관계를 논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의 역사 안에 나타난 활동을 통해 성부 · 성자 · 성령의 존재를 설명한다. “우리의 모상에 따라 사람을 만들자”라는 창세기 1장 26절의 말씀에서 ‘우리’라는 복수 표현은 성삼위를 입증하는데, 이것은 성부가 성자와 성령에게 한 말씀이라고 설명한다. 구약의 창조주 하느님과 신약의 구원의 하느님 사이의 일치에서 필연적으로 구약성서와 신약성서의 연속성 또는 일치가 나온다. 이레네오는 유스티노의 ‘로고스 그리스도론’에 따라, 로고스이신 성자가 창조 때에 역서(役事)하셨으며, 또 구약의 성조들과 예언자들에게 계시하셨고, 신약에 와서는 인류 구원을 위해 친히 육화(肉化)하셨기 때문에 신약은 구약의 완성이라고 설명한다. 따라서 구약성서에 나오는 내용을 그리스도론적 관점에서 이해하고 설명해야 한다고 하였다. 마치 밭에 숨겨진 보화처럼 구약성서 안에 그리스도가 숨겨져 있으므로, 구약의 예표(豫表)와 비유(比喩)를 통해 암시된 의미를 올바로 알아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하느님께 바쳐지기 위해 장작을 메고 모리야 산으로 올라산 이사악은 십자가에서 자신을 하느님께 희생 재물로 바친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며,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 바다를 건너간 것은 신약의 파스카를 예표한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수렴 이론 : 이레네오의 ‘수렴 이론'(收斂理論, recapintlatio)은 그리스도록 뿐만 아니라 그의 신학 전반을 좌우하는 중요한 개념이다. 이이론은 “역사를 완성으로 이끄시어, 하늘에 있는 것이든 땅 위에 있는 것이든 만물을 그리스도 아래에 모으시려는 것입니다”(에페 1, 10)라는 말에 기초를 두고 있는데, 이레네오는 구원론적 측면에서 이를 더욱 발전시켰다. 이 이론의 핵심은,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된 인간의 모습이 아듬의 범죄로 인해 송상되었는데, 하느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를 복원시키시며, 더 나아가 하늘과 땅의 모든 존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수렴되고 그분은 머리로 하여 완성된다는 것이다. 그에 의하면, 첫째 아담이 범죄함으로써 전 인류에게 멸망을 초래하였지만, 둘째 아담인 예수 그리스도는 전 인류의 새로운 창조를 실현시키기 위해 사람이 되어야만 하셨다. 왜냐하면 아담이 육신 안에서 범죄하였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 역시 그 육신을 지니시고 인간을 구원하신 것이다. “멸망한 인간은 살과 피를 지니고 있었다. 주님께서 땅의 진흙을 취하시어 인간을 만드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님께서 오셔서 구원하실 만큼 인간을 사랑하셨다. 그래서 그분이 친히 살과 피를 취하신 것은 당신 안에 모든 것을 모아들이고 멸망한 인간을 다시 찾기 위해서인데, 이 과업은 성부께서 처음 계획하신 것이다.”(《이단 논박》 5, 14, 2).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사업은 단지 인간을 범죄 이전의 상태로 복원시키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그 이상의 것을 인간에게 주셨다는 것이다. 첫째 아담은 단지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되었지만, 둘째 아담인 하느님의 외아들이 인간이 되었기 때문에 인간은 머리인 그분 안에 수렴되고 결집됨으로써 하흐님의 자녀가 되는 영광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이단 논박》 3, 18, 1~2).
마리아론 : 이레네오의 수렴 사상은 그의 마리아론에도 깊은 영향을 미쳤다. 유스티노는 로마서 5장 12-21절에 기초하여 마리아를 ‘둘째 하와’로 소개하였는데, 이레네오는 이 개념을 자신의 수렴사상에 연결하여 발전시켰다. 하와는 불순종으로 죄와 죽음을 잉태하였지만, 둘째 하와인 마리아는 순종하였기 때문에 동정성을 간직한 채 하느님의 말씀을 잉태함으로써 죄와 죽음의 속박에서 하와를 해방시킨 것이다. 둘째 아담인 예수 그리스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둘째 하와인 마리아의 경우에도 철저한 보상주의 원칙이 적용된다. 즉 인간이 구원되기 위해서는 타락하여 범죄한 과정과는 반대 방향으로 보상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새 하와인 마리아가 새 아담인 예수 그리스도에게 생명을 전해 주었기 때문에 마리아는 진정한 의미에서 모든 ‘산 이들의 어머니’가 되며, 따라서 인류의 새로운 어머니로서의 보편적인 모성을 지니게 된다는 것이다(《이단 논박》 3, 18, 1~2).
교회론 : 이레네오의 교회론 역시 그의 수렴 사상과 관련되어 있다. 하느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과거 뿐만 아니라 미래까지 포함하여 수렴하셨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는 온 교회의 머리로서 세상 끝날 때까지 구원의 새로운 창조 사업을 계속 이루신다(《이단 논박》 3, 16, 6). 이레네오는 사도들의 가르침이 변질되는 일 없이 교회 안에서 계속 전승되고 있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 이 전통은 신앙의 원천이며 기준이 되고 진리의 규범이 된다. 이 규범은 세례성가 때 하는 ‘신경’을 나타내는 듯하다. 왜냐하면 그는 세례 때 이 규범을 받는다고 하기 때문이다(1, 9, 4). 한편 사도들에 의해 세워진 교회들만이 올바른 믿음을 가르치고 진리를 증언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런 교회들 안에서 끊임없이 이어져 오는 주교들의 계승이 그들 가르침의 진실성을 보증하기 때문이다(3, 3, 1).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모시고 있는 교회는 사도들의 가르침 즉 거룩한 전승 위에 세워지고 계승되기 때문에 사도적 계승이 없는 이단자들은 근본적으로 자격이 없다. 다시 말해, 그들은 사도들의 계승자가 아니기 때문에 진리의 은사를 지닐 수 없다는 것이다(4, 26, 2).
로마 교회의 수위권 : 이레네오는 사도들에 의해 임명된 주교들 뿐만 아니라 자기 시대에 이르기까지 이러져 오는 계승자들을 열거할 수 있다고 전제한다. 그런데 사도들에 의해 세워진 교회들의 주교들 계보를 일일이 다 열거하려면 너무 많기 때문에 중요한 몇몇 교회들의 주교 계보만 소개하겠다고 하면서 로마 교회에 대해 지일 먼저 언급하고 있다(《이단 논박》 3, 3, 2). 그는 사도 베드로와 바오로에 의해 세워진 로마 교회의 사도적 정통성을 강조한 다음, 로마 교회의 권위에 대해 이렇게 서술한다. “모든 교회 즉 온 세상에 있는 모든 신자들은 이 로마 교회가 이니고 있는 강력한 권위(potentiorem principalitatem) 때문에 이 교회와 일치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로마) 교회 안에는 그들을 통해 전해 오는 사도적 전승이 항상 보존되어 있기 때문이다”(3, 3, 2). 이것은 로마 교회 즉 교황의 수위권과 연관하여 가톨릭 교회와 프로테스탄트 사이에 논란이 되는 민감한 내용이다.
《이단 논박》의 라틴어 역본만 전해지기 때문에, 여기서 라틴어 ‘프린치팔리타스’ (principalitas)가 그리스어 원문에서는 어떤 단어가 사용되었겠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 학자들(d. van den Eynde, G. Bardy, A. Ehrhardt 등)은 여러 가지 가설을 제시하였다. 문맥으로 보아서는 ‘권위’ (εξουσία)가 가장 타당하다는 주장이 지배적이다. 글레멘스 1세(90/92~101?)와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35?~107) 그리고 이레네오가 일관되게 내세우는 로마 교회의 권위는 으뜸사도인 베드로와 이방인들의 사도인 바오로가 세웠고 순교로 증언한 교회라는 데에 기초하고 있다. 사실 이레네오는 진리의 순수성의 척도로써 ‘사도 전승’을 중시하는데(3, 3, 3), 두 위대한 사도에 의해 세워진 로마 교회는 어느 다른 교회보다 더 권위를 갖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는 것이다.
성서 : 이레네오는 네 복음, 바오로 서간들, 사도 행전, 요한 서간들과 묵시록, 베드로 제1서간 그리고 헤르마스의 《목자》를 신약성서의 정경(正經)으로 인정하는데, 여기에는 히브리서가 빠져 있다. 이레네오 당시에는 교회 안에 신약성서의 정경 목록이 아직 확정되지 않았었다. 그는 신약의 이러한 저서들이 구약성서처럼 성령의 감도로 쓰여졌기 때문에 ‘성서’ 라고 부른다고 하였다. 그는 네 복음의 기원에 대해 다음과 같은 중요한 증언을 하였다. “베드로와 바오로가 로마에서 복음을 전하며 그곳에서 교회를 설립하고 있을 무렵, 마태오는 히브리인들 가운데서 그들의 언어를 사용하여 복음을 기록하였다. 베드로와 바오로가 순교한 다음, 베드로의 제자이며 통역이었던 마르코도 베드로가 설교한 것을 기록하여 우리에게 전해 주었다. 또 바아로의 동행이었던 루가도 바오로가 선포한 복음을 책에 기록하였다. 그 뒤에 주님의 제자이며 그분의 가슴에 기대었던 요한도 에페소에 머무는 동안 복음을 썼다”(《이단 논박》 3, 1, 1). 또 이레네오는 4개의 복음서가 요한 묵시록 4장 7절에 생뭉의 모습으로 나오는 네 케루빔에 기원을 두고 있다고 하였다. 이것은 후대 그리스도교 예술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케루빔도 네 가지 모양이 있는데, 이 모양들은 하느님 아들의 구원 활동의 상징들이다. ‘첫째 생물은 사자 같고'(묵시 4, 7)라는 말은 그분의 탁월한 능력과 주권과 왕권을 상징하며, ‘둘째 생물은 송아지 같고’ (묵시 4, 7)라는 말은 제헌자와 사제로서의 그분의 품위를 의미한다. 또 ‘셋째 생물은 얼굴이 사람 같고’ (묵시 4, 7)라는 말은 그분이 사람으로 오셨다는 것을 보다 명백히 서술하는 것이며, ‘넷째 생물은 날아다니는 독수리 같았다’ (묵시 4, 7)라는 말은 교회 위를 나는 성령의 은총을 분명히 가리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복음서들은 가운데 앉아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둘러싸고 있는 네 생물들과 일치한다”(3, 11, 8).
인간론 : 플라톤 철학에서는 인간이 육체 · 영혼 · 이성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주장하였는데, 이레네오는 이에 영향을 받아 육신 · 영혼 · 영으로 인간이 구성되어 있다고 하였다. 인간 안에 있는 육신은 흙에서 왔으며, 영혼은 하느님에게서 그분의 영을 받게 된다(《이단 논박》 3, 22, 1). 따라서 육신이 자연적인 영혼에 의해서만 생기를 얻게 될 때에는 아직 완전한 인간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는 사도 바오로의 영향을 받아 인간은 ‘영’을 통해서 완성된다는 가르침을 반복해서 강조하였다. 사실 예수 그리스도는 제자들과 신자들에게 은총의 선물인 성령을 약속했고, 우리는 이 성령을 모시는 하느님의 성전이라는 사실을 부단히 일깨워 주었다(5, 9, 1). 그런데 이레네오의 저서에서 때로 모호한 점이 발견되기도 한다. 그는 인간의 완성을 위하여 제3의 요소인 ‘영’을 늘 강조하였지만, 이것이 하느님의 성령을 말하는지 아니면 인간의 영을 말하는지 단정하기 어렵다. 어쨌든 이 제3의 요소는 선을 항하려는 굳센 의지 및 윤리 실천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영혼은 그 자체로 불사적 존재가 아니라 영에 의한 선행을 통해서 영원한 존재가 된다고 하였다(2, 34, 3). 이레네오는 그노시스주의자들을 논박하는 과정에서, 영혼 자체가 인간의 선행에 관계없이 불사(不死)한다는 그노시스주의자들의 핵심적인 가르침을 거부 하는데 너무 집착하여 영혼이 불사적이 아니라고 말하는 오류를 범하였다.
구원론 : 거원론의 핵심은 인간 문제이다. 이레네오는 인간이 하느님으로부터 구원받아야 한다는 필요성과 그 가능성을 언급하였다. 원조들의 범죄로 인간은 모두 타락하였으며, 하느님의 모상이 훼손되었다. 인간은 성자의 구원 사업을 통해 사탄과 죄악의 권세에서 해방되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수렴된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이레네오는 인간의 신화(神化, deificatio)라는 표현을 피하였다. 그는 인간이 “하느님과 결합된다” · “하느님과 일치한다” ·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한다” 등의 표현을 사용하면서도 하느님과 인간 사이를 구분하는 경계를 분명히 하려고 노력하였다. 이것은 이교나 그노시스주의자들이 흔히 말하는 범신론적 오류에 빠지지 않으려 하였기 때문이다. 이레네오는 ‘하느님의 모상'(imggo Dei) 과 ‘하느님과 유사함'(similitudo Dei) 사이의 구별을 분명히 하였다. 인간은 비물질적인 영혼 때문에 본성상 ‘하느님의 모상’이다. 반면 ‘하느님과 유사함’은 선하신 하느님의 은총으로 주어진 하느님과의 초자연적 유사함을 뜻한다. 따라서 ‘하느님과 유사함’은 성령의 은사와 상통한다.
한편 각자의 구원은 교회 안에서 상사들을 통해 예수 스리스도의 이름으로 이루어진다. 인간은 세례성사를 통해 하느님 안에서 새로 태어나며, 따라서 어린아이도 모두 세례를 받아야 구원된다고 하였다. 이런 점에서 이레네오는 유아세례에 대하여 언급한 첫 교부라고 할 수 있다.
한국교회사연구소, 『한국가톡릭대사전』 9, pp.6962-69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