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사관예비학교(陸軍士官豫備學校)는 1946년 11월 초 조선건국청년회(朝鮮建國靑年會) 회원을 훈련시킬 목적으로 서울 당인리에 설치된 좌파계 군사학교이다. 조선건설치안대 총본부는 광복과 함께 치안유지를 해오다가 미군이 진주하자, 이를 해산시키고 1945년 9월 29일 조선건국청년회를 조직하여 위원장에 엄홍수(嚴泓銖), 부위원장에 오병철(吳炳哲)을 선임하였다. 1946년 1월 11일에는 기증 받은 800만원과 전답 2천만원 상당의 돈으로 육군예비사관학교를 당인리(唐仁里)의 전문학원(前文學院) 자리에 설립하고 교장에는 건국청년위원장 오정방(吳正邦)을 임명하였다.

 

광복 당시 군사학교 현황

 

이들 군사단체 및 군사학교는 민족의 정치적 구심점을 제시할만한 뚜렷한 주도세력이 없던 현실에서 설립되어 좌우익으로 갈라져 대립하다가 1946년 1월 21일 미 군정청 군정법령 제28호 에 근거하여 내려진 군사단체 해산령에 따라 해체되었다. 이들 군사단체들 중 학병단과 대한무관학교 출신들은 군사영어학교 및 경비사관학교에 들어가 임관한 후 창군 주역으로 활동하였다.

이외에도 해외에서 활동한 군사경력자들 중 귀국이 늦어지거나 북한에서 뒤늦게 월남한 군사경력자들이 군사단체나 군사학교에 미처 가입하지 못하고 곧바로 군사영어학교나 경비사관을 통해 건군 활동에 참여하였다. 이들 중 대표적인 인사로는 정일권(丁一權), 백선엽(白善燁), 김백일(金白一), 원용덕(元容德), 이한림(李翰林), 최주종(崔周鍾) 장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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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hey Network Architecture (JNA) 최종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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