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안에서 최긘에 가장 많이 들리는 말 중에, 사이비–유사종교를 조심하라는 말일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교묘하게, 때로는 드러내놓고 복음과 예수님의 이름을 내세우며 거짓된 행복과 천국(구원)을 약속하며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들은 누구인가? 무엇이 문제인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 이런 문제에 대해 나누어 보고자 합니다.
1. 유사–사이비 종교 사람들은 어떻게 다가오는가?
1.1 쉽게 알아볼 수 있는 사람들
집에 찾아와 “파수대” “깨어라” 등의 잡지를 내미는 사람들, 버스 정류장이나 전철 역 앞에서 ‘당신은 성서를 얼마나 아십니까?’ 라는 문구를 적은 가판대를 세워놀고 유인물을 나눠주는 이들은 여호와의 증인입니다. “안녕하세요?” “인상이 좋으시네요~”라며 다가오는 이들은 대순진리회 사람들입니다. ⇒ 이런 사람들은 대화하지 말고, 단호하게 ‘사생활 침해이니 다가오지 말라.’ 경고하고 돌려보내야 합니다.
1.2 정체를 숨기고 다가오는 사람들
유사–사이비 종교 사람들은, 봉사활동(환경 정화, 벽화 그리기), 문화활동(음악회, 합창대회, 어린이 사생대회), 평화를 위한 행사, 가정평화를 위한 서명 운동, 무료(또는 최소의 경비)로 진행하는 문화교실(뜨개질, 캘리그라피, 영어, 중국어, 노래교실, 기타교실, 꽃꽃이 등), 청소년–청년을 대상으로 하는 댄스, 축구 같은 스포츠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들의 정체를 숨기고 다가옵니다.
거리나 카레 등에거 심리상담, 성격 유형 분석, 적성 검사, 취업 상담을 해준다며 한두장의 질문지를 작성하거나 그림을 그려달라고 하는 사람들, 학교 과제를 위한 설문조사라고 하면서 설문지를 작성해달라거나 스티커를 붙여 달라고 하는 청년들도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친해진 다음에, 인생과 신앙에 관련된 이야기를 소개해주겠다는 사람들은 거의 확실히 사이비입니다. 거기다 더해 인생의 문제를 성경공부를 통해 풀어낼 수 있다고 말하면 100% 사이비 입니다.
⇒ 이런 사람들이 어떠한 이유이든 개인정보(이름, 주소, 전화전호 등)를 적어달라고 하면 단호하게 거부해야 합니다.
1.3 이전부터 아는 사람
전에 알던 사람, 친한 사람도 어느 날 유사–사이비에 빠져서 다가올 수 있습니다. “좋은 강좌” “좋은 말씀”의 자리가 있다며 초대한다거나, ‘성경공부’를 하자며 전문가(교수, 강사, 외국 유학자)를 소개 해준다면 거의 확실합니다.
⇒ 교회에서 고식적으로 하는 성경 강좌나 성경 공부는 성당이나 수도원, 교육기관에서 이루어집니다.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 추천해도 확인되지 않는 자리는 참여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떻게 만났든지, 고민 해결을 위해 ‘비공식적으로 성경을 배우고 공부하자는 사람들’은 대부분 사이비 종교에 빠진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발견되면, 즉기 성당과 주변 사람들에게 알려 다른 사람들이 이러한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2. 사이비 종교 사람들은 어떤 말을 하나요?
사이비 사람들이 어떤 말을 하는지, 그리고 우리 신앙이 말하는 것이 그들과 어떻게 다른가를 알아두면 쉽게 이들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것입니다.
“성경은 하느님의 말씀이요 진리의 말씀이니 글자 그대로 읽고 받아들여야 한다.”
사이비, 특히 근본주의 계열의 영향을 받은 이들은, 성경의 말씀을 ‘글자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며, 단어 하나, 구절 하나를 따집니다. 또 같은 단어가 등장하는 다른 성경 구절을 찾아가며 이런 저런 말을 하는데, 듣다 보면 얼핏 맞는 듯합니다. 뭔가 찜짐한데 뭐라고 반박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성경은 분명 ‘하느님의 말씀이며 진리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느님의 말슴을 담고 있는 성경을 일반적인 책과 같이 대하지 않고, 우리 신앙의 경전으로서, 곧 주님께 대한 무한한 존경과 사랑, 경외의 마음으로 대합니다.
그러나 문자나 언어가 하느님의 말씀은 아닙니다. 우리말 [성경]은 고대 히브리어, 그리스어, 아람어로 된 것으 현대어로 번역한 것입니다. 그 번역의 대본은 수많은 필사본을 대조비교해서 학자들이 가장 원문에 가까운 본문을 구성한 ‘비판본'(Chritic Version, [성경] 맨 앞에 ‘일러두기’에 실려있습니다)입니다. 새로운 자료의 발굴과 연구의 발전에 따라 이 비판본도 변화 발전해왔습니다. 번역문이라는 것도 참고해야 합니다. 번역자의 언어능력이나 성향에 따라, 또는 문맥에 따라 같은 단어도 다르게 옮기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오한 10장의 ‘목자의 비유’에서, 공동번역성서와 성경은 ‘착한 목자’로 옮긴 것을 200주년 신약성서는 ‘어진 목자’라고 합니다(영어 good shepherd). 창세기에서 히브리어 ‘톨러돗’은 일반적으로 ‘족보'(5,1; 10,1; 11,10.27; 25,12; 36,1.9)라고 옮겨지는데, ‘생성(2,4), 역사(37,2)라고도 옮겨집니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개역성경 욥 8,7; [성경] “자네의 시작은 보잘것없었지만 자네의 앞날은 크게 번창할 것이네.”) 식당에서 많이 본 구절입니다. 이 말씀이 얼핏 그럴싸해보지이만, 문맥을 따져보면 사실은 욥을 비판하는 말이라는 것, 의인 욥을 반대하는 목소리라는 것이 드러나면서 완전히 다른 듯이 됩니다.
하느님은 문자(한글)로 우리에게 다가오시지 않습니다. 하느님은 말씀으로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문자는 말씀하시는 하느님께로, 하느님의 말씀을 듣도록 우리를 이끄는 인도자입니다. 문자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라면, 말씀은 그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에 있는 달이라고 할 것입니다.
특정 단어나 몇몇 구절에 매이다 보면 하느님의 말씀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인간의 언어라는 그물에 걸려 넘어집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읽을 때는 특정 단어나 구절에서 벗어나 작은 소제목 단위, 나아가 앞뒤의 문맥을 같이 보면서 전체적인 의미를 생각하며 읽어야 합니다. 우리는 언어나 문자가 아니라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주님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성경을 펼치기 때문입니다.
3. 신천지 예수교 증거장막성전
3.1 총회장 이만희
이만희 씨는 1931년 경북 청도 출생이다. 1957년부터 박태선의 ‘전도관'(현 천부교)에 다니다가, 거기서 갈라져 나온 여러 사이비 단체를 따라다니다가 1980년 50세에 ‘신천지 증거장막성전’을 시작했다(신천지는 1984년 3월 14일을 창시일로 본다). 이만희 씨는 이전의 사이비 교주들처럼 자신을 ‘오늘날 보내주기로 되어 있는 약속의 목자’ ‘이긴 자’ 보혜사’ 등으로 부른다.
3.2 신천지 현황
[신천지 예수교 증거장막 성전]의 총회본부는 과천에 있다. 전국을 12지파로 나누고 지파 산하에 지교회와 교육장소인 센터(무료신학원), 위장교회가 있다. 의정부 교구 지역은 고양, 서울 영등포 지역을 관할하는 ‘시몬지파’와 다른 서울 지역과 경기, 의정부 지역을 관할하는 ‘서울 아고보 지파’가 활동하고 있다.
2018년 말 현재 신천지 교인은 20만 명 정도로 파악된다. 이들은 수요일 저녁 7시, 주일 정오에 집회(예배)를 연다. 대부분의 신도들은 흰색 상의, 검은색 하의(모나미 패션)를 입고 참석하며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는다. 그리스도교 집회(예비, 미사)의 중요 요소 중 하나인 ‘신앙고백문'(사도신경)을 바치지 않음으로써 자신들이 그리스도교가 아님을 그대로 드러낸다.
언론사 ‘천지일보’, ‘기독교 핫이슈플러스’와 자원봉사단체 ‘만남’, ‘하늘문화세계평화광복'(WHPL), ‘세계여성평화그룹'(IWPG), ‘국제청년평화그룹'(IPYG) 등의 위장단체가 있다.
3.3 신천지의 주장
3.3.1 배도-멸망-구원론
신천지는 창조부터 지금까지가 6,000년이 지났다고 하며, 새로운 천년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성경이 말하는 역사를 살펴보면, ‘약속받은 자의 배도(배신)–멸망–새로운 구원자의 도래’ 라는 도식이 반복된다고 주장한다. 아담–노아–아브라함–모세–여호수아–예수님–이긴자로 ‘시대별 구원자 이론’을 내세우며, 세례자 요한 등을 배도자라고 주장한다. 이 주장은 결국 예수님의 십자가 구원을 실패한 사건으로 보게 해서 예수님 주세주라는 것을 부정하고 교주 이만희를 내세우기 위한 것이다. 이는 박태선 장로가 이미 한 말이다.
3.3.2 조건부 종말론
그는 자신을 따르는 이들이 144,000명이 되면 종말이 온다는 ‘조건부 종말론’을 주창하다 신도수 144,000명이 넘자 비가시적 144,000명과 흰무리 등의 말로 그 주장을 바꾸고 있다. 현재 20만이 넘는 이들이 이 말에 글려다니고 있다.
3.3.3 육체영생
이만희 씨를 다르는 이들은 종말이 오면, 선탣된 144,000명은 순교자의 영 144,000과 결합하여 ‘왕이 되어 세상을 다스리게 될 것’이며, 자신이 원하는 이들을 구원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완전히 세속적이며 물질에 기반 한 가르침으로 부활과 영생에 대한 기본적인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에 대한 무지에서 온 것이다. 우리는 주님이 오실 때 주님께 새로운 몸을 받을 것이다. 이미 죽은 이들도 부활하여 새로운 몸을 받을 것이며, 주님과 함께 사는 삶, 주님을 직접 만나고 대화하며 사는 기쁨의 삶으로 들어설 것이다. 순교자들은 이미 천상영광에 들어간 이들이다. 그들은 지상의 우리의 육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주님과 함께 사는 삶, 영원한 생명을 이미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3.4 신천지 사람들의 접근 방식
신천지에서는 일명 ‘모략 전술’을 사용하여 사람들에게 접근한다. 그들은 자신이 신천지 신자라는 것을 숨기고 다른 이들을 유혹한다.
이들은 기존의 교회, 곧 성당이나 개신교에 열심히 다니면서 신자들에게 성경과 신학을 무료로 배울 수 있는 곳이 있다며 유혹한다. 여러 강좌(문화, 취미, 스포츠, 취업준비 등)나 모임(봉사활동)을 통해 친분을 쌓은 후에 성경 공부를 하도록 유도하기도 한다. 처음에는 둘이나 셋이 모여 성경을 공부하다가 신학원(센터)으로 가자고 꼬드긴다. 설물지나 심리검사지 등으 통해 대상자에 대해 파악하며 그럴싸한 말로 자신들을 따라오게 하기도 한다. 또 교회의 부패(추문, 금전문제, 사회적 논란 등)를 모은 자료를 보여주며 기존의 교회에는 구원이 없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교회에서 상처받은 이들은 이러한 말에 넘어가기 쉽다.
그런데 이들을 따라가면 박사학위가 있다는 사람 또는 전문가가 나와 강의를 하는데 학위도 전문가라는 말도 거짓이다(신천지 이론 전문가는 맞다). 최근에는 가톨릭 수도뢰 사제였다가 교회를 떠나 그 자격을 상실한 김 그레고리오라는 자가 여전히 사제를 사칭하며 가톨릭 신자들을 현혹하고 있다.
3.5 신천지의 성경풀이
신천지에서는 이전에 다른 사이비 지도자들, 특히 자신을 재림예수라고 주장하던 이들이 하던 성경풀이 방식을 마치 이만희 회장이 계시를 통해 알게 된 것인 양 주장한다.
쳇째 신천지에서는 ‘개역한글 성경’만 본다. 둘째 예수님의 말씀은 다 비유라고 주장하며, 비유를 깨달아야 죄사함을 받을 수 있는데, 그 비유를 풀어내기 위해 성경에서 짝이 되는 말을 찾아야 한다며 짝풀이(짝이 되는 말씀 찾기)를 가르친다. 셋째 성경의 말씀이 지금 이 시대에 벌어질 일을 예고한 것으로 그것이 현실화(‘실상’이라고 부름)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성경풀이의 최종목적은 자신들의 교주인 이만희 회장을 따르게 하려는 것이다.
이러한 성경 해석은 성경을 작성한 이들이 사용한 언어인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아람어에 대한 전적인 무지와 무시로부터 온 것이다. 또 성경에 바탕 한 신학이 아니라 자신들의 주장을 설명하기 위해 성경을 이용하는 것, 곧 성경의 도구화가 자리하고 있다.
누군가 다가와서 성경을 갖고 이야기하는데 “씨, 밭, 나무, 새” 등을 먼저 말하며, ‘나무가 사람, 새가 성령’이라고 하면서, 자신 안에 자라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오거나 그림을 그려보라거나 하면 신천지 사람이다.
3.6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요?
무엇보다 먼저 우리 스스로 [성경]을 읽어야 한다. 선경공부는 교회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가톨릭 성서모임, 성서백주간, 성서못자리, 여정, 어르신 성경공부, 거룩한 독서 등)만 참여해야 한다. 성당이나 수도원, 교회의 공식 교육기관이 아닌 다른 곳에서 하는 성경공부는 아무리 친한 사람, 믿을만한 사람이라고 해도 따라가서는 안된다.
또 교리와 교회의 가르침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교리를 다시 배우거나, 신앙서적을 읽음으로써 우리 스스로 튼튼한 신앙을 키워가야 한다. 그리고 주변의 신자들과 자주 교류하면서 가톨릭 신앙이 무엇인지 배우고 익히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4. 여러 가지 신심에 대해
본당에서 매월 첫 목요일에 성시간, 첫 토요일에 성모신심 미사를 봉헌합니다. 5월과 10월이면 매일 성당에 모여 묵주기도를 바치기도 합니다. 주님을 흠숭하지 위한 전례에는 속하지 않으나, 예수님이나 성모님의 메시지에 따라, 성인들의 행적을 본받아, 오랜 교회의 전통에 따라 행하는 여러 신앙의 행위들, 예를 들어 성인유해 공경, 성당 방문, 성지순례, 행렬, 십자가의 길, 묵주기도, 메댈의 소유 등을 ‘신심信心행위’라고 부릅니다.
이러한 신심행위들은 성사생활을 풍요롭게 하기 위한 것으로, 전례와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또 그러한 행위들로 인해 우리 신앙의 본질인, ‘그리스도 예수님에 대한 복음’의 내용이 축소되거나 밀려서는 결코 안 됩니다. 어떤 것이라도 신앙과 관련된 것은 오로지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로 이끄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신심은 신앙의 본질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을 아름답게 이해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특별한 신심 행위가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에 대한 신뢰와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한 구원에 대한 확신이 자라도록 이끈다면 권장합니다. 그러나 어떤 신심이 본래 의도하는 회개로의 인도가 아니라, 하늘로부터 오는 징벌에 대한 근거 없는 두려움을 조장하거나 종말이나 지옥에 대한 공포를 심는다면, 그래서 사람을 움츠러들게 하고 심리적인 불안을 심어준다면 그것은 잘못된 해석이니 따라가지 말아야 합니다.
때로 성인들에게 주어진 ‘사적 계시’라거나, 어디에서 발현하신 성모님의 ‘메시지’라고 하며 그에 따른 기도와 행위를 해야 한다는 이들을 만납니다. 은총을 준다는 상본(거룩한 그림이나 사진) 또는 기도문이 들어있는 책자를 주거나 놀라운 내용의 동영상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명심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신앙의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전하게 주어졌으며, 그 이후 어떠한 계시도 없습니다. ‘사적 계시’라는 것은 특정한 이에게 주어진 특수한 메시지로, 그 시대에 ‘계시를 따른 삶을 더욱 충만하게 살도록 돕기 위한 것일 뿐’입니다. 어떠한 메시지도 ‘예수 그리스도의 결정적 계시’를 개선하거나 보완하지 않습니다.
교회로부터 인가(허락)받은 것이라도, ‘성령의 작용으로 주어진 말씀’이나 ‘성모님의 메시지’라도 무작정 수용하고 전달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모님의 메시지’라도 무작정 수용하고 전달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주어진 특정한 시대, 특정한 개인이나 공동체(사회)에게는 특별하게 중요한 말씀이요 메시지라 해도, 언제나 보편성을 갖고 누구에게나 어느 시대에나 적용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달리 말하면, 누군가에게는 굉장하고 특별하며 놀라운 소식이 다른 사람에게는 전혀 마음에 와닿지 않는 시시한 것일 수 있는 것처럼, 신심과 그와 관련된 메시지도 필요한 이에게는 중요하지만 다른 이에게는 무의미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어떤 말이나 지침에 대해 들을 때, 각자의 성격이나 성향, 심리적 상태, 육체의 건강 상태, 인간관계, 경제 상황, 사회적 위치, 교육의 정도에 따라 다양하게 반응합니다. 신앙의 미시지도 이와 같습니다. 따라서 신심과 관련된 말을 꺼내고 전할 때 상대방이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공격적으로 대해서는 안 됩니다. 반대로, 듣는 이들도 엉뚱한 소리라며 무시하지 말아야 합니다. 상호준종하는 태도가 사랑의 첫걸음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