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은 시작하자마자 훈련이었다.

현역과 예비군이 하나되어 사격하는 포병대 대포사격훈련.
내가 왔을 때는 이미 우리 여단은 주관부대에 파견형태로 건너가 있은 후였다.

주관 여단으로 합류하고
실제 사격과 같은 형태로 주특기 훈련을 실시했다.

본래 받은 보직은 ‘전포사격통제부사관’이지만, 이번에는 하나의 포반에 대한 1차 안전통제관으로서의 명령을 받았다. 훈련에 합류하자마자 안전통제관 인증 시험을 위해 일과 시간중에 훈련하고, 매일 퇴근 한시간 반 전부터 평가 대비 시험공부를 했다. 당황한 것은 시험 전날 있었다. 필기시험만 보는 것이 아니라 실제 장비에서의 구술 평가도 진행다는 것이었다! 결국 시험 당일에 출근시간보다 한시간 반 일찍 도착하여 시험공부를 시작했다. 필기시험을 치르고, 구술평가까지 진행하였다. 나는 속으로 합격여부를 많이 궁금해했지만,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 듯하여 나도 딱히 묻진 않았지만, 많이 궁금해었다.

안전통제관 시험 전에, 훈련 중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를 통해 한번 더 안전에 대한 생각과, ‘했다 치고’ 라든가 ‘이쯤하면 되었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이 얼마나 위험한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대포사격을 위한 준비 중에 한 가지 문제가 발생했다. 여단 작전과에서 장기비상근예비군 육본 지침에는 동원훈련은 28시간만 인정된다는 것이다. 나 또한 작년 말 올해 운용지침에서 확인한 바 있었기에 고민에 빠졌다. 이번 포사격 훈련을 모두 참가하면 38시간을 넘어버린다.

인증 시간만 받고 초과 시간은 열정으로 함께 할 수도 있었지만, 명령 외 시간에 문제가 발생하면(나의 부상이라던가 현역 및 동원예비군과의 마찰 등) 이는 온전히 나의 지휘관에게 책임이 지워지는 사안이기도 했다. 음….다시 머리를 쥐어짜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 지휘관인 포병대장과 의논하여 결론을 이끌어 냈다.

1일차 8시간, 2일차 10시간만, 3일차도 10시간만. 1일차는 훈련장 말고 부대 출근 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다들 한창 바쁘게 훈련 중인데 퇴근하겠다 하면 그 모습도 참 보기 않좋기 때문이다.

D-1일. 화포및 부대이동을 위해 포병여단 연변장에 집결했다. 전 포차를 기동시킬 수 없어 HET차량에 반을 싣고 이동하기로 했다. 포를 올리고 결박하다 보니, 예전 호국훈련 가기 전에 장갑차를 HET차에 결박하던 시절이 떠올라 혼자 빈웃음만 지었다.

HET차량은 떠나고 본대 출발을 위해 집합했지만, 생각보다 출발하기는 쉽지 않았다. 안전에 대한 문제를 확인하고 체크하고 점검하다보니 늦어진 것이다. 나 또한 이번 기동에서 전투차량 선탑을 맡았다. 10여년만의 기동차량 선탑이라 긴장했다. 예전 비망록을 꺼내서 선탑에 관한 내용이 있나 찾아 보기도 했다.

기동을 무사히 끝내고, 나는 통신반장과 함께 사단주임원사님 차량으로 복귀했다. 약간의 친분이 있었던지라 이런 저런 선문답이 오갔는데, 나의 예상보다 사단주임원사라는 직책은 개인시간이 몹시 부족한 극한직업이었다. 그리고 예비군에 관해서까지 깊은 고민할 여유까지는 없으신 듯 했다. 하긴 나도 총괄사장 수행비서로 근무하는 동안 평균 15시간 정도를 근무했지만 내 일정이 아니라 사장님의 일정을 소화한 후 내 업무를 했기에, 주임원사님의 고충을 살짝은 이해할 수 있었다.

 

 

훈련 1일차. 나와 통신반장은 주둔지로 출근했다. 오늘의 제1임무는 포병대 창고정리. 제2임무는 빈 나무상자 해체하기. 내가 작년 동료들(2전사관, 舊통신반장)과 정리하긴 했었는데, 내가 없던 2개월동안 발디딜 틈 없는 몹시 ‘바쁜’ 창고로 변해져 있었다. 게대가 작년 말부터 화포수입 후 모아두었던 쓰레기까지 퍼레이드를 벌이고 있었다.

작업을 시작했다. 노가다에 막먹는 작업이었지만 나보다 힘이 더 좋은 통신반장 덕에 작업은 엄청난 속도로 진행되었다. 작년보다 인원은 1명 줄었는데 능률은 3배정도 올랐다.

솔직히 당일에 다 끝낼 자신은 없었다. 창고정리 혹은 박스해체 중 한 가지는 아예 손대 대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했지만, 엄청나게 일 잘하는 통신반장 덕분에 창고정리(쓰레기 버리기 및 물자 재배치)를 끝내고 박스까지 해체할 수 있었다. 전부를 다 한 건 아니었지만, 고작 두명이서 6시간만에 이정도 성과를 낼 수 있어서 뿌듯했다.

또한 오랫만에 부대에서 점심식사를 하게 되면서 사단 직할에서 근무중인 다른 장기비상근예비군들을 오랫만에 만났다. 그간의 안부를 나누고 앞으로 어떻게 이 제도가 흘러갈지에 대한 의견들을 나눴다.

훈련2일차. 나는 복귀시에도 전투차량 선탑으로 임무가 정해져 있어서 통신반장의 개인차량을 얻어타고 훈련장으로 이동했다. 훈련장에 도착하자마자 지휘관에게 출근 보고를 하고, 훈련에 합류했다. 이번 훈련의 메인은 포탄사격이라, 모든 일정은 거기에 맞춰서 진행되었다.

이틀 동안 나와 함께할 동원예비군 포반원들과 인사하고, 사격진지로 이동 후 본격적인 사격준비를 시작했다. 이 중 하이라이트는 단연코 땅파기 였다. 가신을 묻는 구덩이 두개, 이 두개를 파내고 묻는데 걸린 시간만 두시간이었다. 거기에 폐장약호까지 파니 세시간.  나도 오랫만에 폼이 올라서 곡괭이 옆치기 까지 선보이며 모두가 지칠 때까지 땅을 팠다.

이와중에 나를 화내게 한 것은 포탄가림막. 어떻게 무슨 생각을 하면 이렇게 만들어놓은 걸까….라는 생각만 하게 만든 포탄가림막이었다. 화가 나긴 하지만 내가 작업한 물건도 아니고, 또 어떻게든 포탄가림막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전환했다. 저번 쉬는 시간에 사격장에 나뒹굴던 노끈이 생각났다. 해당 장소로 가보니, 이미 방치된지 몇개월은 지났을 만한 노끈뭉치가 아직 있었다. 그걸 줏어가지고 예비군들과 함께 제작하기 시작했는데, 컨셉은 D형텐트였다. 4개의 지주대 를 마주보도록 경시끈을 내리고 지주팩이 없는 관계로 그나마 큰 돌을 줏어다 묶고 흙으로 묻어 고정했다. 또한 4개의 지주를 X라로 엮어 내력과 외력의 균형을 맞추었다.

이때 사고가 좀 있었다. 경시끈은 묶던 중 다른 사람이 들어올리던 곡괭이 자루에 등이 부딪힌 것이다. 처음엔 그렇게 안아펐는데, 예비군들이 모두 복귀하고 나서 현역과 장기비상근만 남아 방열점검을 다시 할때 부터 근육이 뭉친것같은 통증이 발생했다. 결국 현역들과 함께 한개 포를 다시 묻는 작업을 진행할 때 거의 도움을 주지 못했다.

어떻게든 사격준비를 마치고, 현역들도 막사 복귀를 했는데 여기서도 이벤트가 발생했다.

바로 PX. 모든 동원훈련에 발생한다는 100% 확률의 민원. PX사용은 의무사항이 아니라고 강변하는 주관부대 전포대장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예비군인 내가 PX를 이용 못했다고 해서, 인원점검을 연기하라고 민원넣는건… 그 인원의 현역시절 군생활이 어땠는지 상상하게 되버린다.

 

 

훈련3일째. 현역들은 새벽 3시 반 정도부터 기상해서 훈련을 준비했다. 에비군을 4시에 기상시킨 후 사격장으로 이동시켜야 했기 때문이다. 사격장으로 이동 후 현장에서 식사를 하고 본격적인 사격 준비에 들어갔다.

조식을 먹지 않고 있었다. 사격 끝나고 마음 편히 먹고 싶었다. 그래서 앉아서 쉬고 있는데, 다른 여단의 장기비상근들끼리 무슨얘기를 하다가(일반적인 대화 볼륨이었기 때문에 목소리만 들리고 내용은 잘 안들리는 거리 정도 떨어져 있었다) 그러다 한 인원이 내가 들리도록 큰 소리로

“누가 예비군에서 현역으로 갈 수 있다고 했다며!” 바로 뒤이어 내가 돌아본걸 확인하더니
“이진혁 상사가 예비군에서 현역으로 갈 수 있다고 했다며!” 라고  다 들으라고 하듯이 말했다. 당황했다.

군인사법 제35조제3항(본인의 의사에 따른 전역) 예비역의 장교·준사관 또는 부사관으로서 소집되어 군에 복무중인 사람은 본인이 지원하면 국방부령(군인사법 시행규칙 제41조(지원))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현역에 편입할 수 있다.[전문개정 2011. 5. 24.]
군인사법 시행규칙 제41조(지원)법 제35조제3항에 따라 예비역의 장교·준사관 또는 부사관으로서 소집되어 복무중인 사람이 현역 편입을 지원하려면 별지 제6호 서식의 현역복무지원서를 소집해제 3개월 전에 부대장을 거쳐 참모총장에게 제출하여야 한다.[전문개정 2012. 5. 1.]

이런 법령이 있다. 그래서 한때 육규를 운용했던 동기와 함께, 만약 장기비상근예비군이 이 절차대로 서식을 작성해서 제출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법률적 쟁의 포인트(소집, 복무, 훈련 등의 용어의 법적 의미, 장기비상근은 어느 의미로 운용되고 있는지, 이 제도가 임관 최소나이에 적용을 받는지 등)를 확인하고 토론하며, 상하위 법을 찾아 검토하고 있다.  만약 이게 되는 일이라면, 장기비상근예비군 제도에 하나의 장점이 되고, 지원율을 높힐 수 있다고 생각해서 진행중인데(젊은 친구들 중에는 다시 현역으로 임관하고 싶어 장기비상근을 하면서 재임관 준비를 하는 친구들도 있다)  마치 무슨 폭로하듯이 뒤통수에 대고 저리 말하면, 하던 일도 그만두고 싶어진다.

기분이 팍 상햇다. 정말로 그냥 다 부질없다… 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그래도 내가 1기이며 선배인 이상, 비록 나는 혜택을 받지 못하더라도 후배들을 위해 길을 내야 한다는 생각이 더 무겁기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 찾아내고 만들어 갈 생각이다. 앞으로 대한민국에 예비역의 비중은 더 크고 중요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어제 설치했던 부분들을 다시 한번 살피고, 모든 안전통제관이 집합했다. 이때 공기조절기를 확인해보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쫄래쫄래 뛰어가서 공기조절기를 살펴봤다. 지정된 만큼 설정되어있어야 하는데 어두운 곳에 있어 저게 제대로 되어 있는건지 아닌지 확인이 불가능했다. 2차통제관도 같이 와서 확인했다. 살짝 고민했다. 정말로 실탄사격을 하고 싶어서 사격진행을 강행하고 싶었다. 하지만 내 욕심 때문에 전체가 피해를 볼 수 없다는 최종결론을 스스로 내리고 부운 것들을 다시 생각하며 재점검을 시작했다.

나도, 2차통제관도 확신을 못하고 있을때, 구세주처럼 총소정비소대장님이 오셨다. 방탄을 쓴 모습을 처움 봐서 순간 못알아봤는데 소대장님인걸 확인하고 불안함이 가셨다.

이때 알았다. LED 손전등을 항상 휴대하자. 핸드폰 플래시로는 빛조차 희미하게 들어가는데, LED 손전등으로 비치니 밝은곳에서 보는 것처럼 명확하게 확인되었다.

지정된 도구로 수치를 변경시켜봤다. 기어가 걸리는 느낌이 나야 하는데, 걸림없이 휙휙 돌아간다. 바로 상황을 소대장님께 알리고 2차점검을 받았다. 역시나 똑같은 이상작동을 하였다. 총포소대장님과 나는 각각 다른 포로 이동하여 작동여부를 확인하러 이동했고, 다른 총포소대원이 예비로 가지고 있는 부품을 우리 포로 가지고 왔다.

다른 두 개의 포는 정상작동하는 것을 각각 확인하고 돌아온 후 예비부품 또한 정상작동하는 것을 확인했다. 해당부품을 교체하기위해 결합체까지 조립했으나, 본래대로라면 포신을 내리고 교체해야 하는 부품을 현장에서 가능할 리 없었다. 소대장님께서 이 포는 사격이 불가능할 것 같다. 라고 판단하시고 나 또한 같은 결과로 판단하여 2차통제관에게 알린 후 사격지휘소에 사격불가 보고를 했다.

총포소대장님이 다른 곳으로 이동하시기 전에 “현역보다 더 뛰어다닌다”고 칭찬해주셨지만, 사격을 못한다는 아쉬움에 “예”라고만 대답하고 별다른 응답을 하지 못했다.

우리가 사격하려고 받아온 포탄까지도 다른 포에게 돌리게 되고, 이렇게 나의 첫 번째 사격은 한번 쏴보지도 못하고 끝나게 되었다. 나와 함께한 포반원들도 어제 그렇게 고생했는데 사격 한 번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을 표현해주었다. 말을 안했지만 고맙고 미안했다.

모든 포가 사격을 하는 동안, 사격을 하는 과정과 절차, 어떤 소리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마지막 의지를 가지고 설명해주었다. 예비군들은 마지막 화포이동까지 적극으로 도와주어서 나 또한 예비군이지만 정말 고마웠다. 귀찮았을 텐데도 마지막 하나의 장비까지 적재해 주어서 그저 계속 고마울 뿐이었다.

오히려 나랑 같은 장기비상근이 포반장으로 있는 기준포가 이날 제일 많은 사격을 하였다. 솔직하게 말하면 부러웠다. 한 번 한 번의 경험이 필요하고 소중한데, 나보다 더 많은 경험을 쌓고 있는 저 인원이 부러웠다. 하지만 나만의 욕심으로 사격을 강행했을 때, 일어날 수 있는 사고를 예방했다는 점으로 스스로 위안 삼고 싶었지만….실패했다.

 

 

이제 예비군들은 동원훈련 퇴소준비를 하러 떠나고 우리만 남았다. 다시 대열을 정비하고 복귀 기동을 시작했다.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운전병이 살짝 얼굴이 하얘지면서 화장실을 가야 할 것 같다고 했다. 나는 첫번째 쉼터가 나오면 차량을 세우자 했지만, 고속도로 진입에 직면할 때까지 쉼터는 안나왔다. 운전병은 아까보다 얼굴이 더 하얘졌고, 나는 결단을 해야 했다. 고속도로 진입 전에 식당이 있었고, 덤프트럭 뒤에 차량을 정차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되어, 운전병에게 바로 지시를 내려 차를 이동 정차하고 화장실을 보냈다.

나 또한 차량에서 내려서 운전병이 화장실을 들어가는 것을 확인하고 있을때, 현역간부가 내게 와서 일갈했다.

“뭡니까!”

현재 상황을 같이 있는 인원과 설명했더니, 가타부타 답도 없이 돌아서 가버렸다. 잠시 후 대대장께서 오셨다. 운전병의 생리현상 때문에 급하게 차를 세웠고, 제 판단으로 얼굴이 하얘질 정도면 더 이상 정상적 운전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고 말씀드렸더니 이해해 주셨다.

복귀 기동을 하면서 잠시 혼자만의 생각에 빠졌다. 내가 이렇게 무시당하는 것은 내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더 열심히 공부하고 한 번이라도 더 장비를 만져볼 수 밖에 없다. 라는 생각.

또 하나는, 저 장기비상근은 부대운영이나 훈련에 있어서 본인이 하고자 하는 것을, 심지어 훈련계획에 없던 사항까지도 만들어서 하고 있다. 하사 시절 행정보급관 보직을 수행하고 파병까지 다녀왔어서 이런 부분에 대해서 더 잘 하는 걸까. 나는 현역시절 내내 훈련 또 훈련, 정비 또 정비. 중사 때 잠시 고참들의 파견을 땜빵해서 다닌 적이 있었지만 나는 그저 훈련과 정비로 다져진 전투형 군인… 저 인원은 존인 자가 차량까지 끌고 군 작전에까지 참가하는데, 내가 더 부족한가, 이왕이면 잘하고 싶은데, 하지만 저렇게까지 해도 된다는 규정은 있는걸까. 등등의 복잡한 생각까지 했다.

주둔지에 기동 복귀를 하고 인원,장비 이상 없이 훈련 복귀를 했지만, 내겐 아쉬움이 많이 남았던 대포사격 훈련이었다. 그래도 사무실 복귀 후에 여단장께서 직접 오셔서 수고했다고 격려하시고, 우리 포병대장도 정말 수고했다고 말해주어서 그래도 장기비상근예비군으로서의 기대한 만큼의 성과는 해냈구나 라는 확신을 얻고 마음의 평안을 얻었다.

 

이렇게 5월이 지나갔고, 나는 이제 73일의 근무일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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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장기 비상근예비군 1기. 이 제도가 어떻게 되는지 두 눈으로 보기 위해 다니던 직장을 때려치고 다시 한 번 군에 투신한, 두번째 복무를 불태우는 중년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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