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
사람이 죽어서 변하는 것이라고 여겨지는 신비주의적 존재
鬼神
동아시아인들은 전통적으로 삶과 죽음을 두부 자르듯 구분하지 않았다. 죽음 후의 일도 우주 안에서 벌어지는 것이라 여겼다. 우주는 기氣로 구성되어 있으며 하나의 통일적 전체이다. 삶과 죽음은 그 안에서 벌어지는 여러 현상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따라서 사람이 죽어서 귀신鬼神이 된다 해도 그것은 기氣에 포함된다. 기氣는 음陰과 양陽으로 구분되므로 인간이 죽어서 귀신이 되더라도 그것은 음약으로 이루어진 기氣적 존재이다. 귀신도 인간처럼 기氣의 운동법칙에 지배된다. 영원무궁토록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죽은 후 3~4세대, 그러니가 약 100년 남짓한 기간에 걸쳐 서서히 사그러진다고 보았다. 인간 세상과는 완전히 전연된 별개의 세상에서 영혼이 초월적으로 영원무궁토록 존재한다고 보았던 유럽인들의 사후세계관과 다르다.
귀신을 굴신屈伸, 즉 수축하는 성질과 팽창하는 성질을 갖는다. 귀鬼는 수축해 한데 모이고 음습한 음陰의 성질을 갖는다. 신神은 팽창하고 퍼지며 따뜻한 양陽의 성질을 갖는다. 그래서 귀의 성질이 강한 귀신은 나쁘고, 신의 성질이 강한 귀신은 좋다고 본다. 같은 맥락에서 ‘귀’ 자가 붙으면 좋지 않은 뜻으로 쓰인다. 악귀惡鬼라고는 하지만 악신惡神이라고는 잘 하지 않는다. 산신령山神靈이라고는 하지만 산귀령山鬼靈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그런데 과연 귀신이 정말로 존재하기는 하는 것일까? 귀신에 관한 입장은 네 가지로 구분된다.
첫째, 공자처럼 귀신에 관한 논의 자체를 불필요하다고 보는 입장이 있다. 인간 세상의 일을 논하기도 바쁜 마당에 귀신을 논할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둘째, 주희朱熹처럼 귀신의 존재 여부를 애매하게 보는 입장이 있다. 귀신에 관한 주희의 여러 이야기들을 보다 보면 도대체 이 사람이 귀신에 대해 확고한 입장이 있기나 한지 의문이 들 정도다. 여기서는 귀신이 있다는 식으로 말하고, 다른 곳에선 귀신이 없다는 식으로 말한다.
주희의 이런 애매한 입장은 그가 집대성한 이기론理氣論과 제사윤리祭祀倫理가 서로 모순되는 데서 비롯된 필연적 결과이다. 이기론에 의하면 우주는 하나의 통일체이며, 거기에는 어떠한 신비주의적인 요소도 개입되지 않는다. 우주를 창조한 신神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초월적 존재에 대한 경배도 인정하지 않는다. 이기론에 의하면 귀신이건 조물주건 모두 다 원리상 부정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제사라고 하는 유교적 관습에선 귀신을 인정한다. 귀신이 없다면 제사도 무의미해진다. 죽은 조상이 제사 때 온다는 믿음이 없다면, 제사란 하나의 상징적 의식에 지나지 않아 그 격식과 절차의 중요성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주희는 함리적인 우주론을 주장하면서도 여전히 전통적인 주술적 세계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빙의憑依 현상을 실제 귀신이 씌워 벌어진 신비한 현상이라고 인정한 적도 있었으며, 주술사들의 행위가 현실에서 효험을 가질 수 있다고 보기도 했다.
이기론적 우주론에 따라 귀신을 인정하지 않게 되면 지사의 의미가 없어진다. 반면 제사 윤리에 따라 귀신을 인정하게 되면 이기론이라는 깔끔한 형이상학이 신비주의로 오염된다. 주희는 이런 딜레마 상황에서 명쾌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은 채 시종일관 애매한 태도를 취함으로써 후대 학자들에게 과제를 던져주게 된다.
그러나 후대 학자들이라고 해도 별로 뾰족한 수가 없었다. 조선의 유학자들은 주희가 해결하지 못한 과제에 그다지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결국 귀신론은 조선이 아닌 일본에서 더 심도 있게 논의되었다. 일본 학자들에 의해 귀신에 관한 세 번째와 네 번째 입장이 제기되었다.
셋째 입장은 무귀론無鬼論, 즉 귀신이 없다고 하는 주장이다. 이토오 진사이伊藤仁斎가 이 입장을 취했다. 그는 주희 체계에 남아 있던 신비주의적 요소를 말끔히 제거해 버리고자 했다. 17세기 중후반에 벌써 일본에서는 탈주술적 측면에서 성리학을 논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조선은 효종과 그 왕비가 죽은 후 가족들이 상복을 몇 년간 입어야 되느냐 하는 지엽말단적인 문제를 가지고 서로를 헐뜯는 예송禮訟논쟁으로 국력이 한창 소모되고 있었다. 주희 체계를 과감히 수정한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다. 17세기부터 이미 ㅈ도선 사상계는 활력을 잃었다. 조선 사상가들은 창의적인 생각을 내놓지 못하고 주석가로서만 만족한 너무도 겸손한 사람들이었다.
넷째 입장은 유귀론有鬼論, 즉 귀신이 있다고 하는 입장이다. 오규 소라이荻生徂徠가 이 입장을 취했다. 그는 유교 경전에 빈번히 등장하는 귀신 숭배 행위를 알레고리가 아닌 현실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신비주의적인 입장을 취했던 것을 아니다. 그는 성인聖人이 강력한 리더쉽을 발휘할 수 있었던 근거를 귀신에 대한 믿음에서 찾는다. 쉬긴을 숭배하는 제사행위를 통해 백성들의 정서를 응집해 사회적 통합을 이룩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즉 귀신에 대한 제사를 당위가 아닌 필요의 측면에서 파악했다.
반면 소라이처럼 유귀론을 주장하면서도 신비주의적인 입장을 취했던 일군의 학자들이 있다. 아라이 하쿠세키新井白石, 하라타 아츠타네平田篤胤, 아이자와 세이시사이会沢正志斎 등이 그들이다. 그들은 귀신을 정말로 존재한다고 믿었다. 그리고 거기에 그치지 않고 아이자와 세이시사이는 귀신 가운데 으뜸 귀신이 바로 천황天皇이라고 주장하기까지 이른다. 그는 천황이 곧 신神이라고 믿었다.
천황에 대한 이런 종교적 믿음은 일본이 근대화하는 과정에서 일본 민중들을 결속하게 하는 강한 힘을 발휘한다. 마치 막스 베버가 말한 가치합리론과 목적합리론의 분리 과정처럼 그들은 철저히 가치합리적 측면을 천황에게 의탁해버리고, 현실 속에서는 탈주술적으로 일체의 관습에서 벗어나 목적합리적으로 근대화와 자본주의화에 매진해 성공할 수 있었다.
현대에 이르러 귀신은 단지 재미난 이야기의 소재로만 다뤄진다. 사기꾼 기질이 강한 무당과 퇴마사들만이 귀신 운운할 뿐이다. 수천 년에 걸쳐 명맥을 유지해온 귀신에 대한 믿음은 일순간에 붕괴되었지만 귀신에 대한 믿음이 남긴 흔적은 곳곳에 남아있다. 천황제는 아직도 유지되고 있으며, 신사神社는 여전히 참배객들로 붐빈다.
채석용, 『철학 개념어 사전』(서울: 소울메이트, 2010), 66–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