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일상 그리고 특별한 선택
예비역일지라도 자부심과 전우애로 가득
육군60보병사단서 근무
개인 이상 실현…본업 유지하며 복무 병행
현역 때 익힌 노하우 임무수행 큰 도움
비상근 제도 도입 후 부대관리 능력 향상
세 아이의 엄마, 평범한 회사원, 미래를 그리고 있는 20대 청년까지. 남다를 것 없어 보이는 이들에게는 한 가지 특별한 점이 있다. 1년에 3분의 1가량 군복을 입고 부대에 출근한다는 것이다. 위병소를 들어서는 순간 이들은 평범한 ‘시민’에서 ‘군인’으로 변신한다. 이들의 정체는 ‘장기 비상근 예비군’. 국방부는 2014년 단기 비상근 예비군에 이어 지난해부터 장기 비상근 예비군을 선발·운용하고 있다. 올해는 장기 비상근 예비군의 복무 유형을 두 가지(Ⅰ·Ⅱ형)로 구분하고, 복무 일수를 다양화(40~180일)하는 등 2단계 시험 운용에 돌입했다. 예비군 주간을 맞아 민간인에서 군인으로 특별한 변신을 선택한 육군60보병사단 윤예지, 박준연, 안재원 장기 비상근 예비군 3인방을 만나봤다. 글=임채무/사진=양동욱 기자
각자 계기는 달라도 마음만은 ‘진짜 군인’
이리 보고 저리 봐도 현역 군인들이었다. 전투복을 반듯하게 입고 있어서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주위에서 부르는 호칭도 ○○○ 예비군이 아니라 윤 대위, 박 중위, 안 병장이었다. 그나마 차이점이 있다면 전투복 상의에 있는 예비군 마크 정도. 무엇보다 군인 특유의 절제된 모습은 이들을 ‘진짜 군인’같이 느끼게 했다. 이들은 왜 다시 군복을 입게 된 걸까? 인터뷰 첫 질문은 기자의 궁금증에서 시작했다.

육군60보병사단 윤예지 장기 비상근 예비군이 임무수행 현장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저는 의정병과 장교로 근무하다 전역했습니다. 여군이라서 전역과 퇴역을 선택할 수 있었는데, 퇴역으로 명령이 났더라고요. 재입대를 고려하고 있을만큼 군에 대한 애정이 컸기에 육군본부에 정정명령까지 요청해서 ‘전역’으로 바꿨습니다. 그런데 세 아이를 낳다 보니 결국 재입대할 수 있는 나이를 넘기게 됐어요. 그러던 차에 소속 동대에서 보낸 홍보 문자를 받고 장기 비상근 예비군 제도를 알게 됐습니다. 모집 인원과 복무 일수, 보상비, 지원 기간 등을 자세하게 안내했더라고요. 이번 기회가 아니면 군에서 근무하는 기회가 다시는 없을 것 같아 지원했습니다.”(윤예지 예비역 육군대위)

육군60보병사단 박준연 장기 비상근 예비군이 임무수행 현장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저는 육군9사단 포병연대에서 관측장교, 전포대장 임무를 수행하고 2016년 6월 30일 전역했습니다. 처음 동대에서 홍보 문자가 왔을 때는 별 관심이 없었어요. 그러던 중에 우크라이나전이 발발했습니다. 당시 아동복지센터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만약 전쟁이 일어난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이 있을까’라는 고민을 하게 됐습니다. 그 순간 장기 비상근이 떠올랐습니다. 동대에서 온 문자를 찾아보고 바로 지원했죠.”(박준연 예비역 육군중위)

육군60보병사단 안재원 장기 비상근 예비군이 임무수행 현장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저는 병으로 복무하면서 부사관을 꿈꿨습니다. 부모님께 지원하겠다고 말씀드렸더니 반대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병장으로 전역했는데, 동대 홍보 문자를 통해 병 출신도 비상근 예비군에 지원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미래를 위한 준비와 군 복무를 동시에 할 수 있다고 생각해 지원했습니다. 다행히 부모님도 이번에는 말리지 않으시더군요.”(안재원 예비역 육군병장)
현역 때보다 더 열심히 공부하지만 만족도 높아
이들이 하는 일은 현역 때와 거의 동일했다. 다만 포병장교 출신인 박 예비역 중위의 경우 생소한 방공중대장을 맡았다. 하지만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박 예비역 중위는 독학으로 방공중대장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쌓았다.
“어려움이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죠? 하지만 제가 선택했으니 책임감을 갖고 노력했어요. 육군방공학교 인트라넷 홈페이지에 접속해 온라인 강의도 수시로 듣고, 각종 교범을 읽으면서 공부했습니다. 그래도 모르는 게 생기면 부대 주위 방공부대를 찾아가 물어보기도 했습니다. 열정을 인정해 주셔서인지 모두 잘 알려주시더군요. 현역 때보다 더 열심히 공부한 거 같아요.”
안 예비역 병장은 현역 당시 K1 전차 조종수였으나 지금은 화포정비원으로 전차 정비를 맡고 있다. 같은 직책은 아니지만, 조종수도 전시 응급상황에 대비해 전차 정비를 배우기 때문에 임무수행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윤 예비역 대위는 현역 때 경험해본 보급정비과장 직책을 수행하고 있다. 근무했던 부대와 유형이 달라 일부 익숙하지 않은 부분도 있지만, 현역 때 노하우를 살려 실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최근에는 의무대장님 지시로 산업동원계획을 확인하고, 전시 의무군수 분야 보급·분배 계획을 검토하고 있어요. 현역 시절 전방 부대에서 근무해서인지 이런 분야는 조금 약하거든요. 아무래도 전방은 현행작전 위주라서요. 그렇지만 전반적으로 알고 있거나 해봤던 업무라서 빠르게 적응하고 있어요. 물론 그 과정에서 현역 때 익힌 여러 노하우들이 업무를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데 도움이 되고 있어요.”
장기 비상근 예비군의 ‘팔색조’ 매력에 푹 빠져
본업을 유지한 가운데 군 복무를 병행할 수 있다는 점은 비상근 복무의 매력 중 하나다. 이들도 이런 점을 비상근 복무의 장점으로 꼽았다. 이들이 말한 또 하나의 매력은 끈끈한 ‘전우애’다. 윤 예비역 대위는 비상근 예비군으로 처음 출근한 날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그는 “부대원 모두가 저를 반갑게 맞아줬고, 개인 사물함에는 제 이름과 예비군 마크가 붙어 있는 전투복이 반듯하게 걸려 있었다”면서 “전우로서 대해준다는 생각에 가슴이 뭉클했었다”고 기억했다. 이어 “제설작전, 배수로 정비, 치장 창고 재물조사 등 많은 게 기억에 남지만 40㎞ 야간 행군을 하면서 함께 땀 흘리고 서로 응원해줬던 일은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이라고 소개했다.
박 예비역 중위는 비상근 예비군과 현역들이 함께 동원훈련을 완벽하게 마무리했던 것을 예로 들었다. 그는 “제가 작성한 방공중대 동원훈련계획을 현역 장병과 예비군들이 적극적으로 따라와줘 신뢰를 쌓을 수 있었다”며 “이를 바탕으로 훈련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고, 예비군들에게 좋은 평가도 받았다”고 회상했다. 안 예비역 병장은 “부대에 출근해 현역 용사, 간부들과 함께 일과를 시작할 때마다 현역 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착각이 든다”며 “그래서인지 퇴근 후 모여 저녁도 먹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개인적인 얘기까지 털어놓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이들이 말한 비상근 복무의 장점은 다양했다. 윤 예비역 대위의 경우 군 복무를 하고 싶으나 여러 이유로 재입대 나이를 넘긴 사람들에게 복무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박 예비역 중위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국가안보에 보탬이 될 수 있다는 ‘개인 이상 실현’을 매력으로 꼽았다. 또 피동적으로 느껴지는 예비군이 아닌 현역처럼 주도적으로 임무를 수행하고 훈련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라고 말했다. 안 예비역 병장은 경제적인 측면에서 설명했다. 미래를 위해 준비하고 있는 자신에게는 공부하면서 돈도 벌 수 있다는 점이 크게 다가왔다는 것. 더불어 국가안보에 도움이 되고 있다는 ‘자부심’도 빼놓을 수 없는 장점이라고 덧붙였다.
비상근 예비군 투입으로 현역들 업무 부담 줄여줘
이들은 비상근 복무가 반드시 필요한 제도라는 점에 한목소리를 냈다. 병역자원 급감에 따라 예비전력 정예화가 이뤄져야 하는 상황에서 비상근 예비군이 대안이 된다는 것이었다. 실제 비상근 제도가 도입된 후 동원사단 예하 여단급 부대의 경우 전투준비 투입 시간이 약 29% 감소하고, 부대관리 능력은 7~17%가량 향상됐다.
안 예비역 병장은 “비상근 예비군이 도입되고 여러 분야에서 수치상으로 크게 효과를 거두고 있다는 안내를 받았다”면서 “부대원들의 말을 들어보면 이틀 걸리던 정비가 하루면 끝날 정도로 성과를 체감하고 있다”고 피력했다.
비상근 예비군이 투입돼서 인력이 충원된다는 점도 있지만, 자신이 알고 있던 노하우를 나누면서 부대 전투력이 더욱 강해지고 있다는 게 그의 평가였다.
다른 두 사람도 같은 의견이었다. 윤 예비역 대위와 박 예비역 중위는 “동원사단은 적은 인원으로 전방사단과 동일한 업무를 수행해야 한다”면서 “비상근 예비군들이 투입되면서 현역들의 업무 부담을 조금이나마 줄여주고, 자신들이 지닌 노하우를 토대로 전시작전계획 등을 함께 발전시키는 등 여러 활약을 하고 있다”고 거들었다.
그렇다면 비상근 복무에 어려움은 없을까? 다행스럽게도 큰 어려움은 모두 느끼지 않고 있었다. 다만 박 예비역 중위는 제도가 아직 잘 알려지지 않아 지원 당시 어려움을 겪었던 일을 꺼냈다. 그는 “비상근 복무를 하기 위해서는 회사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사실 포기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며 “무엇보다 회사에서 자리를 비우는 만큼 동료들에게 업무가 전가될 수 있다는 점이 내심 마음에 걸린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그는 제도가 발전함에 따라 이러한 부분도 해소될 것으로 기대했다.
윤 예비역 대위와 안 예비역 병장은 주위의 응원이 큰 힘이 되고 있다고 밝혔다. 윤 예비역 대위는 6·25 참전용사인 할아버지와 국군통신사령부에서 30년 넘게 근무하고 준위로 전역한 아버지의 전폭적인 지지와 응원을 받고 있다. 그는 “두 분께서 ‘힘들지 않냐’며 걱정해 주시고, 열심히 하라는 말을 아끼지 않는다”며 “무엇보다 6·25 참전용사이신 할아버지께서 매주 출근은 잘 하고 있는지, 또 출근해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물어보실 정도로 큰 관심을 갖고 응원해 주신다”고 말했다.
안 예비역 병장은 “왜 사서 고생을 하냐는 말을 주위에서 듣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대단하다는 얘기를 해준다”고 부연했다.
“복지 개선 필요…안정적으로 자리 잡아야”
인터뷰가 후반부에 다다르자, 이들은 조심스럽게 장기 비상근 제도 발전을 위한 방안을 제언했다. 서로 생각하는 것은 달랐지만, 한마음으로 제도가 안정적으로 자리 잡기를 희망했다. “아직 제도가 시험 운용 중이라는 점은 잘 알고 있습니다. 제도가 계속 확대 시행되는 만큼 파상풍 예방접종이나 소음 환경에서 작업하는 인원에 대한 난청검사 지원 등 비상근 복무 예비군에 대한 복지 개선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윤 예비역 대위)
“일반적으로 전역 후 1계급 명예 진급할 수 있는 제도와 별개로 장기 비상근 예비군이 예비역으로 계속 진급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됐으면 합니다. 제도가 확대되면 될수록 초급간부는 물론 중·소령, 원·상사 등의 직위가 필요하게 될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부대 인근에 거주하는 분들이 지원해야 하는 상황에서 아무래도 초급간부 직위는 많은 자원이 있기에 모집이 수월하다고 봅니다. 그러나 중·소령, 원·상사는 많지 않을 뿐만 아니라 대부분 정년을 채우고 군복을 벗기에 계급정년을 적용받아 자원 확보가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장기 비상근 예비군으로 임무 수행한 기간과 지휘관 평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장기 비상근 예비군의 예비역 진급이 좋은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박 예비역 중위)
그러면서 세 사람은 “예비군들을 대표한다는 마음가짐으로, 군복을 입고 있는 동안 예비전력 정예화에 앞장서겠다”며 인터뷰를 마쳤다.
출처: 국방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