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주의
인간이 구조를 만든 것이 아니라 선험적 구조가 인간을 지배
structuralism

‘운동장’이라는 단어를 예로 들어보자. 무엇이 떠오르는가? ‘운동장’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 사람들마다 떠올리는 내용은 저마다 다를 것이다. 어릴 때부터 천연 잔디가 깔린 운동장에서 축구를 즐긴 유럽 아이들과 맨땅에서 먼지 먹어가며 무릎이 까지도록 뒹구는 경험을 가진 우리나라 40대가 떠올리는 운동장은 서로 다르다.

그런데 놀랍게도 유럽의 아이들과 우리나라 40대는 ‘운동장’이라는 하나의 단어를 구사하면서도 서로 의사를 소통할 수 있다. 따지고 보면 세상 모든 단어들이 그렇다. ‘사랑’이라는 단어도 마찬가지다. ‘사랑’이라는 단어를 통해 아름답고 시린 경험을 떠올린 수도 있고, 충족감으로 부푼 마음을 떠올릴 수도 있다. 개별적 경험들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사랑’이라는 단어를 가지고 의사를 소통할 수 있다.

도대체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구조주의자들은 그 이유를 바로 구조에서 찾는다. ‘운동장’이라든가 ‘사랑’이라는 단어들은 우리의 개별적 경험들을 직접적으로 가리키지 않는다. 대신 그 단어들은 언어라고 하는 전체 구조 속에서 그 의미를 갖는다.

‘운동장’이라는 단어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운동장들을 일일 직접 가리키지 않는다. 대신 ‘여러 사람들이 몸은 움직여 즐기기 위해 마련된 넓은 공간’이라고 추상적으로 규정된다. 즉 단어들은 그 단어가 지칭한다고 여겨지는 개별적 사물이나 사실들을 실제로는 지칭하지 않은 채 언어라고 하는 전체 구조 안에서 다른 단어들과의 ‘관계’를 통해 규정되는 것이다.

인간의 구사하는 모든 단어들은 우리의 상식과는 달리 실제로는 사물이나 사실들을 직접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언어라는 전체 구조 안에서 다른 단어들에 의해 규정됨으로써 의미를 갖게 된다고 하는 것이 바로 구조주의structuralism의 기본적 생각이다.

이렇듯 언어학을 통해 구조주의의 기틀을 민든 인물이 소쉬르F. de Saussure이다. 그는 인간의 언어현상을 랑그langue와 빠롤parole로 구분한다. 빠롤이란 개별적인 언어행위들을 말하고, 랑그란 그러한 개별적 언어행위들 이전에 이미 선험적으로 갖춰진 인간의 언어능력을 말한다.

가령 아이들이 자기 엄마를 가리켜 “맘마”, “마마”, “마”, “찌찌”, “마미” 등 갖가지 방식으로 부르는 개별적 행위들은 빠롤이다. 이런 빠롤은 매우 다양함에도 불구하고 ‘엄마’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는 공통적이다. 서로 다른 빠롤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엄마’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고 우리가 일괄적으로 묶을 수 있게 만드는 구조적인 틀을 랑그라고 한다. 랑그가 이미 태어나기 전부터 선험적으로 인간에게 갖춰져 있기 때문에 바롤을 구사할 수 있게 된다. 랑그의 구조를 인간들이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개별적 빠롤들이 서로 다르더라도 우리는 의사를 소통할 수 있다. 구조주의에서는 개별적 단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단어들 사이의 관계가 중요한 것이다.

이에 따라 개별적 단어들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변모해 왔는가 하는 통시적diachronic 측면보다 현존하는 단어들이 서로 어떻게 관계를 맺는가 하는 공시적synchronic 측면이 중요하게 된다. 언어가 역사적 변천을 통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고 보는 것이 아니라, 언어라는 것 자체에 이미 일정한 구조가 본래부터 갖춰져 있기 때문에 시간의 변화는 언어의 본질을 파악하는 데 있어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인간이 역사를 통해 장시간에 걸쳐 언어를 만들어온 것이 아니라 인간의 역사 이전에 이미 선험적으로 존재하는 구조에 의해 개별적 언어들이 탄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역사주의적 관점은 구조주의와 양립하지 못한다.

소쉬르에 의해 언어학적 측면에서 구조주의의 기틀이 갖춰진 이후 수많은 다른 분야의 학자들이 구조주의의 견해에 동참했다. 레비-스트로스C. Levi-Strauss는 인류학적 측면에서 구조주의를 전개했다. 그는 개별적 인간의 행위를 중시하지 않고 행위들 사이의 관계를 중시했다. 누군가의 행위를 독립적으로 떼어내 평가하고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그 행위자가 속한 집단 내의 관계망 속에서 그 행위를 구조적으로 파악하고자 했다.

가령 나는 아버지이며 아들이고, 남편이며 큰아버지이다. 나는 나 하나의 존재만으로 파악될 수 없고 관계망 속에서만 파악될 수 있다. 내가 윗사람의 부당한 간섭에 굴복하고 불의를 저질렀다면 그것은 단지 나 자신의 부도덕함의 문제인 것이 아니라 가족들을 부양해야 하는 책임감의 문제이기도 하다.

소쉬르의 언어학에서 단어들이 개별적 의미를 가지지 않고 다른 단어들과의 관계를 통해서만 의미를 갖게 되는 것처럼 개인 또한 다른 친족들과의 관계를 통해서만 의미를 갖게 된다. 바로 이 지점에서 근대적 의미의 개인, 즉 주체subject는 부정된다. 구조주의는 탈주체의 철학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인간의 삶은 역사적 측면에서 개별적으로 파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들의 삶은 그가 속한 구조를 분석함으로써 파악될 수 있다. 인간세계에는 제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일관된 구조적 틀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원시적 풍습을 그대로 유지한 미개 부족들에게서도 그러한 구조를 발견할 수 있다. 레비-스트로스는 사회적 제약으로 인해 그 구조를 파악하기 힘든 유럽 사회 대신 원시부족들을 연구대상으로 택했다. 미개 사회와 현대 유럽 사회에는 공통된 구조가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후 구조주의는 주로 프랑스 철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으며 또 스트로스주의로 이어졌다. 개인가 역사를 통해 삶의 의미와 진리를 발견하고자 했던 독일 중심의 주체철학은 구조와 관계를 중시하는 구조주의의 강력한 도전에 직면하게 되었다. 유럽을 중심으로 한 현대철학은 이들 두 가지 큰 흐름의 대결을 중심으로 무궁무진한 논란 거리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물론 독일 출신으로서 프랑스 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 니체F. W. Nietzsche와 같은 예외도 있겠지만.

채석용, 『철학 개념어 사전』(서울: 소울메이트, 2010), 57–61.

 

 

About Author

Jhey Network Architecture (JNA) 최종관리자.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