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敎皇 〔라〕 Papa  〔영〕 Pope

교황이라는 명칭의 원어 ‘papa’는 아버지라는 뜻의 ‘papas’에서 유래하였다. 이 용어는 본래 지역 교회의 최고 장상(주교, 대수도원장, 총주교)을 부르던 말인데 8세기 이후부터 차츰 로마의 주교, 곧 교황에게만 사용되기 시작하여 그레고리오 7세 교황(1073~1085) 때부터 교황에게만 독점적으로 부여되었다. 《교황청 연감》(Annuario Pontificio)에서는 교황을 로마 교구의 교구장 주교, 그리스도의 대리자, 사도 베드로의 후계자, 서방 교회의 최고 사제, 총대주교, 이탈리아의 수석 대주교, 바티칸 시국의 원수(元首)로 포현하고 있으며, 실제적으로 세계 주교단의 단장으로서 현세 교회의 통괄적 최고 사목자이다.

 

〔교황직의 교리적 내용〕

사도 베드로의 후계자: 예수 그리스도는 당신의 교회를 순전한 사상 운동으로만 선포하지 않고 구체적인 공동체로 세웠다. 예수는 교회의 이념인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면서 열두 사도들을 선택하여 그들에게 교회를 지도할 권한을 주고 파견하였다(마태 10, 1-4 ; 마르 16,15 ; 마태 18, 18 ; 28, 19-20 ; 사도 1,8). 사도단을 구성할 때에 그들 중에서 시몬을 ‘베드로(반석)라고 개명하여 사도단의 으뜸으로 세웠다. 베드로 위에 교회를 세우겠다는 약속(마태 16, 15-19), 베드로에게 다른 형제들을 부탁한 것(루가 22, 31-32), 베드로가 양들을 맡긴 일(요한 21, 15-17) 등은 분명히 베드로를 사도단의 으뜸으로 세울 의향을 명시하는 것이다. 초대 교회에서 베드로는 마티아를 사도로 보선하고(사도 1, 15) 최초로 공개 설교를 하고(사도 2, 14 이하), 유대 원로원에서 사도들의 활동을 변호하고(사도 4, 8 ; 5, 29), 이방인 개종자 문자(사도 10, 24-28)와 구약 율법의 문제(사도 15, 7-22) 등에 있어서 단장격으로 행세하였다. 베드로는 예루살렘과 팔레스티나에서 선교하다가 로마를 떠나서 다른 곳으로 갔는데(사도 12, 17), 역사의 증언에 의하면 42~43년에 로마에 가서 로마 교회를 창설하였고, 거기서 그의 첫째 편지를 썻으며(1베드 5, 13), 네로의 박해 때인 64년에 로마에서 순교하였다. 그래서 그의 후계자인 로마의 주교는 당연히 베드로의 권위와 책임을 계승한 것으로 확신하였고 교회도 그렇게 인정하였다. 1세기 말에 베드로의 3대 후계자 즉 4대 교황인 성 글레멘스 1세는 멀리 고린토 교회의 분쟁을 조정하였고, 2세기 초에 안티오키아의 주교 이냐시오와 2세기 중엽에 리용의 주교 이레네오는 로마의 주교가 전교회의 으뜸이라는 것을 증언하고 있으며, 2세기 말에 교황 성 빅톨 1세는 동방의 부활 축일 논쟁에 개입 조정 하였고, 3세기 중엽에 성 스데파노 1세 교황은 재세례(再洗禮)를 금하는 조처를 북아프리카와 소아시아 주교들에게 내리고 있다. 이와 같이 교황의 수위권(首位權)은 이론적으로 정립되기 전에 이미 고대 교회에서 실시되고 있었고, 그 후 역사적인 기복을 거쳐서 제1차 바티칸 공의회(1869~1870)에서 신조(信條)로 정의되었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가 재확인되었다(교회 22항).

세계 주교단의 단장: 교황의 수위권이 아무리 확고하고 강력할지라도 각 지역 주교들의 고유한 사목 권한을 배제하거나 축소하거나 대행하지 않는다. 주교들은 주교품을 받음으로써 사도들의 후계자가 되고, 위임된 지역 교회의 완전한 사목자가 되며, 로마 교황과 더불어 한 주교단을 이룬다. 베드로가 사도단의 단장이었던 것처럼 교황도 주교단의 단장이며, 따라서 교황을 제외한 주교단이나 주교단과 유리된 교황이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것이다(동 22항). 그러므로 주교단 안에서 각 주교들은 그들의 사목권을 교황으로부터 받는 것이 아니고 주교 서품을 통하여 하느님으로부터 받기 때문에, 자기에게 위임된 지역 교회(교구) 안에서는 교황의 대리가 아니고(동 27항), 교유하고 직접적이고 통상적인 사목자이며(동 23항), 세계 교회에 대해서는 교황과 함께 한 주교단으로서 전반적 최고 사목권의 주체가 된다. 주교단의 단체성은 세계 공의회에서 잘 나타난다. 공의회의 결의는 단장인 교황의 동의를 받아서 교회 전체에 대한 보편적 사목 지침이 되는 것이다. 공의회 밖에서도 세계 주교들의 일치된 결정은 동의를 전제로 하여 교회의 최고 사목권의 발로로 인정된다(동 22항 ; 주교 4항).
교황도 로마의 주교이기 때문에 다른 주교들과 함께 유일한 주교직에 참여하고 있다. 일찍이 치프리아노는 3세기에 다음과 같이 주교직의 단일성을 강조하였다. “주교직은 하나이고 각 주교는 여기에 연대적으로 참여한다” (De unitate 5). 전체 교황의 수위권은 모든 교회 문제에 대한 완전한 것이고(plena), 주교를 포함한 모든 신자 개인과 단체에 미치는 보편적인 것이고(universalis), 공의회 보다 더 높은 최고의 것이고(suprema), 직책상 당연히 가지고 있는 통상적인 것이고(ordinaria), 누구를 통하지 않고 직접 개입할 수 있는 것이고(immediata), 필요하면 언제 어디서나 발동할 수 있는 자유로운 것이다.

 

 

〔직무〕

교황의 직무도 교회의 직무 내용처럼 진리를 가르치는 예언직(預言職)과 이에 상응하는 교도권(敎導權), 인간을 성화하는 사제직(司祭職)과 신품권(神品權), 교회를 다스리는 왕직(王職)과 통치권(統治權)으로 대별하여 생각할 수 있다.

교도권(potestas magisterii): 구원의 계시 진리를 가르치는 책임을 진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권위를 부여받은 주교들이다”(교회 25항). 주교들의 통상 권위로 가르치는 것은 통상 교도권이라 하고, 주교들이 세계 공의회를 통하여 가르치는 것과 교황이 교황 직위를 발동하여 가르치는 것을 장엄 교도권이라 한다. 교황의 통상 교도권 행사는 일반 주교들처럼 공식 설교, 교리 해설, 사목 교서, 교구 회의 등으로 하고, 교황청 행정 부서의 율령이나 법원의 판결같이 간접적으로 행사하기도 한다. 교황의 장엄 교도권은 세계공의회를 통하여 행사하기도 하고, 교황 스스로 ‘교좌에서의 선언’에 의하여 행사하기도 한다. 그런데 교황이 장엄 교도권으로 신앙이나 도덕에 관한 최종 결정을 하는 경우에는 절대로 그르칠 수 없다는 것이 가톨릭 교회의 신앙이다. 교황의 이 특은을 무류지권(無謬之權)이라 한다. 교황이 교좌에서 (Ex cathedra) 선언한 것이 무류하기 위하여 다음 조건이 채워져야 한다. 전체 교회의 최고 목자로서 공식으로 선언한다. 따라서 교황도로마 교구장의 자격이나 개인 학자의 자격으로 주장하는 것은 무류하지 않다. 계시 진리를 최종적으로 정의하려는 의도를 밝혀야 한다. 따라서 교황의 자격으로 할지라도 통상적인 지도, 권유, 해설, 반박, 경고 등은 무류하지 않다. 또한 신앙이나 도덕에 관한 문제에 국한되기 때문에 과학, 예술, 사회, 경제, 정치 기타 문제에 관한 교황의 선언은 무류하지 않다.

신품권(potestas ordinis): 교황의 신품권은 다른 주교들의 신품권과 같다. 모든 주교는 주교품을 받음으로써 완전한 신품권을 받아서 칠성사를 집전하고 모든 전례를 주관한다. 그래서 어떤 주교가 교황으로 선출되어도 더 큰 심품권을 받는 것이 아니며, 주교 아닌 사람이 교황으로 선출되면 즉시 주교품을 받아야 로마의 주교가 되고 세계 교회의 교황이 된다. 교황이 전례의 유효성에 관한 절차나 조건을 정하고, 전례문을 제정하거나 변경하거나 또는 전례상의 관면이나 제한을 하는 것과 성년을 선포하고 시성식을 거행하는 행위는 주교보다 더 큰 신품권이 있어서 하는 것이 아니며, 다음에 말할 더 큰 교회 통치권을 행사하는 것이다. 따라서 교황이 집전한 성사나 주교가 집전한 성사나 (자기 권한 내에서) 신부가 집전한 성사의 객관적 가치는 완전히 동일한 것이다.

통치권(poteatas jurisdictionis): 교황의 통치권은 그의 수위권 때문에 모든 성직자들의 통치권을 능가하고 포괄한다. 교황의 통치권은 주교를 포함한 모든 신자에게 미치고, 교회의 사명 수행에 직접 관련되는 모든 사항에 해당한다. 교황의 통치권은 교회를 지도하기에 필요한 입법권과 사법권과 행정권을 포함한 것이다. 교황은 이러한 삼중 통치권을 행사할 때에 여러 가지 보좌 기관(법원, 행정 부서, 회의 등)을 이용하지만 최종 결정권자는 교황 자신이다. 그래서 현대 국가의 삼권 분립 제도는 교회나 교황에게 해당되지 않는다. 그러나 교황의 통치권에 의한 결정 중에서 (장엄 교도권과 직접 결부된 신조 선언이 아닌) 일반 명령이나 지시는 그 자체로서 무류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교황의 지시를 존경과 순명으로 받아들이면 충분하고, 교회의 현세적 조건(정교 조약, 재산 관리 등)에 대한 교황의 결정은 비판할 수도 있는 것이다.

 

 

〔교황직의 약사(略史)〕

고대 교회: 초대 교회에서부터 로마 주교는 베드로의 후계자라는 위치로 인하여 전체 교회의 중심 인물이었으므로, 이단자들도 자기네 주장을 변명하기 위하여 로마로 갔으며(마르치온, 노바시아노, 몬타누스, 그노시스 이단파의 지도자들), 교부들도 반대자들의 핍박을 피하여 로마의 보호를 청하였다(아타나시오 등). 콘스탄틴 대제가 로마 제국의 수도를 비잔틴(후에 콘스탄티노플로 개칭)으로 옮긴 후부터 로마의 정치적 비중은 줄어 들었지만 로마 주교의 종교적 권위는 더욱 커졌다. 박해 후에 신학적 사색이 발전하면서 동방에서 논쟁이 분분할 때에 로마 황제들은 여러 번 공의회를 개최하여 문제의 해결을 시도하였다. 주로 동방 주교들이 참석하여 결의하였지만 그 결의는 언제나 교황의 명시적 또는 묵시적 동의를 얻어야만 공의회로 인정되었으며, 칼테돈 공의회(451)는 성 레오 1세 교황의 사절들이 사회하였다. 이때에 이르러 명실공히 교호아의 수위권이 확립된 것이다. 서로마 제국이 멸망할 무렵부터(476) 서유럽의 수호자로 등장하였고, 게르만 민족을 교화시키고 수도회와 성당을 통하여 로마 문화를 전수하였다. 6세기 말에 성 그레고리오 1세 교황은 영국을 개종시키고 로마 주교에 대한 동로마 황제의 압력을 물리치고 중세 유럽의 형성자가 되었다. 한편 동로마 황제의 후광을 입고 있는 콘스탄티노플의 총주교들은 계속하여 로마 교황과 동등한 동방에서의 수위권을 요구하여 사소한 교리 해석의 차이와 전례의 차이 등을 핑계로 삼아 교황의 수위권에 도전함으로써 결국 동서 양교회가 분리될 소지를 만들었다.

중세 교회: 중세는 로마 교황과 신흥 세력은 게르만 민족들과의 관계에서 시작되었다. 게르만 민족들이 개종하고 교화되면서 서유럽에 많은 왕국이 형성되었고, 교황은 이들 신생 국가들의 왕권에 교회의 보호를 요청하게 되었는데, 시초에는 교황이 왕권의 후견인이었다. 그러나 왕권이 비대해지고 교회를 보호한다는 구실 하에 왕권이 교권에 간섭하게 되자 양자의 충돌이 일어났다. 8세기 프랑크 왕국은 강력해지고 칼 대제는 교황 성 레오 3세에 의하여 서유럽의 황제로 대관식을 받아서(800) 교회를 옹호함과 동시에 교권에 깊이 간여하였다. 그 동안에 동프랑크(독일)도 개종하여 오토 대제가 교황 요한 12세에 의하여 황제로 대관되고(962) 소위 신성 로마 제국을 형성함으로써 교권에 간섭하였다. 이렇게 7~10세기의 교황들은 정권의 비호와 간섭을 받으면서 수위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였고 10세기에서 11세기에 걸쳐서 정권의 동요와 경제의 불황으로 사회는 혼란하였으며, 교황권의 약화는 성직자들의 기강 문란과 성직 서임권에 관한 왕권과의 다툼을 초래하여 서유럽 사회와 교회는 암담한 상태에 빠졌다. 이러한 시기에 편승하여 동방 교회는 해묵은 수위권 시비로 결국 1054년 로마 교회와의 관계를 단절하고 말았다.
이러한 와중에서도 로마 교회는 꾸준히 복음 선포에 힘써서 7세기에 스페인, 8세기에 독일, 9세기에 슬라브족과 스칸디나비아족, 10세기에 폴란드와 러시아, 11세기에 유럽의 대부분을 그리스도교화하였다. 동방 교회의 이교(離敎) 후에는 교황의 권위는 서방 교회에 국한되었다. 11세기에 성 그레고리오 7세 교황은 집요한 투쟁으로 교권을 왕권에서 해방시켰고, 12~13세기의 교황들은 여러 번 공의회를 열어서 교회의 개혁과 분리된 동서방 교회의 재일치를 시도하였으나 크게 성공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12세기부터 프란치스코회와 도미니코회의 활약과 새로 등장한 대학의 노력으로 13세기에는 중세 문화의 전성기를 이루었다. 그러나 이 전성기는 쇠퇴기의 시작이었으나 14세기에 여러 명의 대립 교황들이 출현하여 소위 서구 대이교(1327~1417) 사태가 벌어져서 교황의 위신을 땅에 떨어졌다. 다행히 콘스탄츠 공의회(1414~1418)로 이교 사태는 수습되었지만 교황의 지위는 약화되고 때마침 일어난 문예부흥 사조와 지리상의 대발견 등으로 서유럽긔 통일과 정신적 일치의 구심점으로서의 교황의 위치는 결정적으로 흔들리고, 신학의 퇴조와 교회 생활의 타락은 새로운 사조의 발흥을 소화하지 못한 채로 종교 개혁이라는 정식적 대혁명을 겪게 되었다. 14~15세기의 교황들 중에서 성인으로 시성된 교황이 한 분도 없었다는 사실이 그간의 사정을 잘 말해준다.

근세 교회: 종교 개혁 운동으로 독일 · 영국 · 북유럽의 여러 교회들이 로마와 절연하는 와중에서 교황들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교회 개혁에 착수하여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를 통하여 개혁론자들의 이단을 배격하고 교회를 체계화하고 교회 생활의 모든 분야를 혁신하는 조처를 취하였고, 성 비오 5세, 그레고리오 13세, 식스토 5세 교황들은 정력적으로 트리엔트 공의회의 결의를 실시하였다. 활력을 다시 찾은 교회는 신생 예수회를 비롯한 많은 선교 수도회를 통하여 극동 선교에 나섰으며, 로마에 포교성성(布敎聖省)을 설립하여 포교 사업을 지휘하였다(1622). 17세기에는 프랑스에, 18세기에는 독일에 국수주의적 교회관이 생겨서 소위 정교 분리 사상이 강력히 대두되어(갈리아주의, 페브로니우스주의, 요셉주의) 교황의 수위권은 도 한 번 도전에 직면하였다. 이로써 속사에 대한 교황의 간섭권은 크게 약화되었으며, 프랑스 대혁명과 나폴레옹의 승리는 전반적인 교황권의 실추를 초래하였다. 19세기에는 이탈리아의 통일 기운이 성숙하여 1870년에 근 천년 동안 유지해 온 교황 영토가 이탈리아에 합병됨으로써 교황의 속권(俗權)은 영구히 무산되었다.
한편 세계는 점점 민주주의에 심취하고, 과학 만능주의 · 유물론 등이 성행하면서 유럽 여러 나라들이 교회의 영향력을 벗어나고 있을 때에, 교황의 교권이나마 굳건히 세우기 위하여 비오 9세 교황은 제1차 바티칸 공의회를 소집하였다. 공의회는 싱앙의 근본 문제에 대한 오류를 배척하고, 교황의 수위권과 무류지권을 신조로 선언하였다. 공의회이후로 속권에서 벗어난 위대한 교황들이 속출하여 교회뿐 아니라현대의 사회 문제에도 훌륭한 지침을 제시하였다. 교황 레오 13세는 민주주의를 승인하고 노동 문제에 빛을 던졌으며, 성 비오 10세는 근대주의를 단죄하고 전례 운동을 촉진하였다. 베네딕도 15세는 교회법을 개혁하였고(1917), 비오 11세는 공산주의를 단죄하고 사회 문제의 해결책을 제시하는 한편 세계의 선교 사업을 크게 촉진하였으며, 바티칸 시국의 독립을 달성하였다(1929). 또 비오 12세는 성모 승천 교리를 선포하고 동유럽이 공산화되는 고통을 겪었다. 위대한 교황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세계는 점점 탈(脫) 그리스도교화하는 과정에 있는데, 교황 요한 23세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개최하여 교회의 쇄신과 개방을 선언하였다. 공의회 이후로 바오로 6세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공의회의 정신을 구현하기 위하여 동분서주하였고, 교황의 위신은 교회 내에서는 물론 교회 밖에서도 정신적 지도자로서 인정받고 있다.

 

〔역대 교황표〕

초대 교황 사도 베드로에서 시작하여 그를 계승한 교황들, 즉 로마 주교들의 명단은 이미 2세기 중엽부터 작성되기 시작하였다. 리용의 이레네오(Irenaeus)는 180년경에 작성한 로마 주교 명단에 동시대인인 엘레우테로 교황(174~189)까지를 포함시켰다. 그런데 이러한 초기의 로마 주교 명단들에게는 그들의 재위 연대가 표시되지 않았다. 그것은 당시의 주된 관심이 역사 보다는 교의의 정통성을 입증하려는 데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교의의 순수성 내지는 정통성을 다름 아닌 사도적 전승과 계승에서 찾으려 했었다.

그 후 역사에 관심이 생기면서 연대가 첨가되기 시작하는데 이 작업을 최초로 시도한 사람은 바로 역사가인 에우세비오(Eusebius)이다. 그는 4세기 초에 저술한 《교회사》에서 28명의 교황 명단과 함께 그들의 즉위 연대를 첨가시켰다. 이러한 연대식 방식은 그후 계속 되면서 실용적인 목적에서 교황들의 즉위 연월일까지 기록하는 완전한 역대 교황표가 작성되기에 이르는데, 그 최초의 것이 리베리오 교황까지 다룬 이른바 354년의 ‘리베리오 교황표’ (Catalogus Liberianus)이다. 물론 그 모든 기재 사항에 역사적 가치를 부여할 수는 없다. 또한 이 무렵부터 교황사의 일환으로, 교황의 이름과 내력, 지체 기간 중에 반포한 법령과 전례 규정 등, 일정한 양식에 의한 전기 형식의 ‘연대 교황표’ (Liber Pontificialis)가 편찬되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매우 간략하였으나 점점 상세해지고 또 15세기까지 지속되었다. 뒤센느(L. Duchesne)는 이러한 연대 교황표들을 기반으로 하여 새롭고 보다 완전한 연대 교황표 (2권, 1886~1892)를 편찬, 간행하였다. 이를 계기로 연대 교황표가 초기 교회사의 중요한 사료로 새삼 알려지게 되었다.

한편 본연의 교황사의 서술은 19세기부터, 특히 바티칸의 문서고가 개방되면서부터 그 연구가 확대되어 교황사의 전집이 나오고 동시에 교황 문서집이 대량으로 간행되었다. 이러한 많은 연구와 방대한 자료의 간행들은 자연히 역대 교황표를 학문적으로 새로이 검토하게 만들었고 마침내 1947년 완전히 개정된 공식적인 역대 교황표가 《교황청 연감》 (Annuario Pontificio: 이하 《연감》으로 약칭)에 발표되었다. 그러나 이 역대 교황표가 완전하며, 또 의무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며 교황표에서 역대 교황에 일련 번호를 매기지 않은 것도 아마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대립 교황은 〔 〕로 표시하였다). 실제로 완전한 역대 교황표를 작성한다는 것은 아직도 자료들이 부분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불가능한 일이다. 특히 많은 교황들의 합법성 여부는 극히 어려운 문제이다. 역대 교황사의 역사는 교화사상 여러 시기의 많은 교황들의 합법성 문제에 대한 이해가 변천하였음을 보여 준다. 이번 역대 교황표에서도 그러하다. 왜냐하면 서구 대이교 시기의 피사계 교황인 알렉산델 5세와 요한 23세를 1946년까지는 합법적인 교황으로 취급하였으나 1947년 부터는 대립 교황으로 간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래 역대 교황표는 원칙적으로 《연감》을 따랐다. 그러나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는 일부 교황들에 대해서는 다른 권위 있는 교황표들을 참고하여 약간의 수정을 가하였다. 교황 대수에 있어서는 《연감》을 따라 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를 264대로 간주하였다(번호가 없는 것은 대립교황). 피사계 두 교황을 합법적인 교황에 포함시켜 현 교황을 266대로 보는 교회사가들도 있다. 특히 독일 교회사가들이 그러하다(Franzenm Bäumer 등).  《연감》은 119대 그리스도포로 교황을 대립 교황으로 보았고, 또한 138대 보니파시오 7세는 대립 교황으로 아예 명단에서 제외시킴으로써 다른 교황표와는 달리 그를 두번 더 등장시킴으로써 결국 155대 니콜라오 2세에 와서는 그 대수가 같아진다. 《연감》은 그리스도포로와 보니파시오 7세가 모두 교황위를 빼앗고 교황이 되었다고 하여 대립 교황으로 간주한 것 같은데, 그렇다면 2명의 선임 교황을 살해하고 교황이 된 세르지오 3세도 당연히 대립 교황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합법적 교황으로 인정되고 있다. 사실 이 시기는 소위 교황의 암흑 시기(880~1046)여서 교황들이 멋대로 임명, 파면, 투옥, 살해되었다. 15대 제피리노까지 물음표(?)를 붙인 것은 그때까지는 재위기간이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그 후로는 연대가 어느 정도 확실해진다. 《연감》은 18대부터 즉위와 사망 연월일까지 기록하고 있다. 54대 펠릭스 3세까지는 2명을 제와하고 모두 성인으로 인정되고 있다(S. 는 성인, B. 는 복자의 약자).

한국교회사연구소, 『한국가톡릭대사전』 1, pp.640-644.

 

교황 이름 라틴어 이름 재임 기간
1 베드로 S. Petrus 64/67 순교
2 리노 S. Linus 64/76 ~ 79(?)
3 아나글레토 S. Anacletus 79 ~ 90/92(?)
4 글레멘스 1세 S. Clemens I 90/92 ~ 101(?)
5 에바리스토 1세 S. Evaristus 99/101 ~ 107(?)
6 알렉산델 1세 S. Alexander I 107 ~ 116(?)
7 식스토 1세 S. Sixtus I 116 ~ 125(?)
8 텔레스포로 S. Telesphorus 125 ~ 138(?)
9 히지노 S. Hyginus 138 ~ 142(?)
10 비오 1세 S. Pius I 142 ~ 154/155(?)
11 아니첼로 S. Anicetus 154/155 ~ 166(?)
12 소텔 S. Soter 166 ~ 174(?)
13 엘레우테로 S. Eleutherus 164 ~ 189(?)
14 빅톨 1세 S. Victor I 189 ~ 198/199(?)
15 제피리노 S. Zephyrius I 199 ~ 217(?)
16 갈리스도 1세 S. Calixtus I 217 ~ 222
히폴리토 S. Hippolytus 217 ~ 235
17 우르바노 1세 S. Urbanus I 222 ~ 230
18 본시아노 S. Pontianus 230 ~ 235
19 안테로 S. Anterus 235 ~ 236
20 파비아노 S. Fabianus 236 ~ 250
21 고르넬리오 S. Cornelius 251 ~ 253
노바시아노 Novatianus 251 ~ 258(?)
22 루치오 1세 S. Lucius I 253 ~ 254
23 스데파노 1세 S. Stephanus I 254 ~ 257
24 식스토 2세 S. Sixtus II 257 ~ 258
25 디오니시오 S. Dionysius 259/260 ~ 267/268
26 펠릭스 1세 S. Felix I 268/269 ~ 273/274
27 에우티키아노 S. Eutychianus 274/275 ~ 282/283
28 가이오 S. Cajus 282/283 ~ 295/296
29 마르첼리노 S. Marcelinus 296 ~ 304
30 마르첼로 1세 S. Marcellus I 307 ~ 308(?)
31 에우세비오 S. Eusebius 308 ~ 309/310
32 멜키아데스 S. Melchiades (Miltiades) 310 ~ 314
33 실레스텔 1세 S. Silverster I 314 ~ 335
34 마르코 S. Marcus 336
35 율리오 1세 S. Julius I 337 ~ 352
36 리베리오 Liberius 352 ~ 366
펠릭스 2세 Felix II 355 ~ 358
37 다마소 1세 S. Damasus I 366 ~ 384
우르시노 Ursinus 366 ~ 367
38 시리치오 S. Siricius 384 ~ 399
39 아나스타시오 1세 S. Anastasius I 399 ~ 402
40 인노첸시오 1세 S. Innocentius I 402 ~ 417
41 조시모 S. Zosimus 417 ~ 418
에울라리오 Eulalius 418 ~ 422
42 보니파시오 1세 S. Bonifatius I 418 ~ 419
43 첼레스티노 1세 S. Coelestinus I 422 ~ 432
44 식스토 3세 S. Sixtus III 432 ~ 440
45 레오 1세 S. Leo I (대 교황) 440 ~ 461
46 힐라리오 S. Hilarius 461 ~ 468
47 심플리치오 S. Simplicius 468 ~ 483
48 펠릭스 2세 S. felix II (III) 483 ~ 492
49 젤라시오 1세 S. Gelasius 492 ~ 496
50 아나스타시오 2세 Anastasius II 496 ~ 498
51 심마코 S. Symmachus 498 ~ 514
라우렌시오 Laurentius 498 ~ 506
52 호르미스다 S. Hormisdas 514 ~ 523
53 요한 1세 S. Joannes I 523 ~ 526
54 펠릭스 3세 S. Felix III (IV) 526 ~ 530
55 보니파시오 2세 Bonifatius II 530 ~ 532
디오스코로 Dioscorus 530
56 요한 2세 Joannes II 533 ~ 535
57 아가비도 1세 S. Agapetus I 535 ~ 536
58 실베리오 S. Silverius 536 ~ 537
59 비질리오 Vilgilius 537 ~ 555
60 펠라지오 1세 Pelagius I 556 ~ 561
61 요한 3세 S. Joannes III 561 ~ 574
62 베네딕도 1세 Benedictus I 575 ~ 579
63 펠라지오 2세 Pelagius II 579 ~ 590
64 그레고리오 1세 S. Gregorius I (대 교황) 590 ~ 604
65 사비니아노 Sabinianus 604 ~ 606
66 보니파시오 3세 Bonifatius III 607
67 보니파시오 4세 S. Bonifatius IV 608 ~ 615
68 데우스데딧 S. Deusdedit (Adeodatus I)  615 ~ 618
69 보니파시오 5세 Bonifatius V 619 ~ 625
70 호노리오 1세 Honorius I 625 ~ 638
71 세베리노 Severinus 640
72 요한 4세 Joannes IV 640 ~ 543
73 테오도로 1세 Theodotus I 643 ~ 649
74 마르티노 1세 S. Martinus I 649 ~ 653
75 에우제니오 1세 S. Eugenius I 654 ~ 657
76 비탈리아노 S. Vitalianus 657 ~ 672
77 아데오다토 2세 Adeodatus II 672 ~ 676
78 도노 Donus 676 ~ 678
79 아가토 S. Agatho 678 ~ 681
80 레오 2세 S. Leo II 682 ~ 683
81 베네딕도 2세 S. Benedictus II 684 ~ 685
82 요한 5세 Joannes V 685 ~ 686
83 코논 Conon 686 ~ 687
테오도로 Theodorus 687
파스칼 Paschalis 687 ~ 692
84 세르지오 1세 S. Sergius I 687 ~ 692
85 요한 6세 Joannes VI 701 ~ 705
86 요한 7세 Joannes VII 705 ~ 707
87 시신니오 Sisinnius 708
88 콘스탄티노 1세 Constantinus I 708 ~ 715
89 그레고리오 2세 S. Gregorius II 715 ~ 731
90 그레고리오 3세 S. Gregorius III 731 ~ 741
91 자카리아 S. Zacharias 741 ~ 752
92 스데파노 2세 Stephanus II (III) 752 ~ 757
93 바오로 1세 S. Paulus I 757 ~ 767
콘스탄티노 2세 Contantinus II 767 ~ 768
필립보 Philippus 768
94 스데파노 3세 Stephanus III (IV) 768 ~ 772
95 하드리아노 1세 Hadrianus I 772 ~ 795
96 레오 3세 S. Leo III 795 ~ 816
97 스데파노 4세 Stephanus IV (V) 816 ~ 817
98 파스칼 1세 S. Paschalis I 817 ~ 824
99 에우제니오 2세 Eugenius II 824 ~ 827
100 발렌티노 Valentinus 827
101 그레고리오 4세 Gregorius IV 827 ~ 844
요한 Joannes 844
102 세르지오 2세 Sergius II 844 ~ 847
103 레오 4세 S. Leo IV 847 ~ 855
104 베네딕도 3세 Benedictius III 855 ~ 858
아나스타시오 3세 Anastasius III 855
105 니콜라오 1세 S. Nicolaus I 858 ~ 867
106 하드리아노 2세 Hadrianus II 867 ~ 872
107 요한 8세 Joannes VIII 872 ~ 882
108 마리노 1세 Marinus I 882 ~ 884
109 하드리아노 3세 S. Hadrianus III 884 ~ 885
110 스데파노 5세 Stephanus V (VI) 885 ~ 891
111 포르모소 Formosus 891 ~ 896
112 보니파시오 6세 Bonifatius VI 896
113 스데파노 6세 Stephanus VI (VII) 896 ~ 897
114 로마노 Romanus 897
115 테오도로 2세 Theodorus II 897
116 요한 9세 Joannes IX 898 ~ 900
117 베네딕도 4세 Benedictus IV 900 ~ 903
118 레오 5세 Leo V 903
119 그리스도포로 Christophrus 903 ~ 904
120 세르지오 3세 Sergius III 904 ~ 911
121 아나스타시오 3세 Anastasius III 911 ~ 913
122 란도 Lando 913 ~ 914
123 요한 10세 Joannes X 914 ~ 928
124 레오 6세 Leo VI 928
125 스데파노 7세 Stephanus VII (VIII) 929 ~ 931
126 요한 11세 Joannes XI 931 ~ 935
127 레오 7세 Leo VII 936 ~ 939
128 스데파노 8세 Stephanus VIII (IX) 939 ~ 942
129 마리노 2세 Marinus II 942 ~ 946
130 아가비도 2세 Agapetus II 946 ~ 955
131 요한 12세 Joannes XII 955 ~ 963
132 레오 8세 Leo VIII 963 ~ 965
133 베네딕도 5세 Benedictus V 964
134 요한 13세 Joannes XIII 965 ~ 972
135 베네딕도 6세 Benedictus VI 974
보니파시오 7세 Bonifatius VII 974 ~ 983
136 베네딕도 7세 Benedictus VII 974 ~ 983
137 요한 14세 Joannes XIV 983 ~ 984
138 보니파시오 7세 Bonifatius VII 984 ~ 985
139 요한 15세 Joannes XV 985 ~ 996
140 그레고리오 5세 Gregorius V 996 ~ 999
요한 16세 Joannes XVI 997 ~ 998
141 실베스텔 2세 Silvester II 999 ~ 1003
142 요한 17세 Joannes XVII 1003
143 요한 18세 Joannes XVIII 1003/1004 ~ 1009
144 세르지오 4세 Serguis IV 1009 ~ 1012
145 베네딕도 8세 Benedictus VIII 1012 ~ 1024
그레고리오 6세 Greforius VI 1012
146 요한 19세 Joannes XIX 1024 ~ 1032
147 베네딕도 9세 Benedictus IX 1032 ~ 1045
148 실베스텔 3세 Silvester III 1045
149 그레고리오 6세 Gregorius VI 1045 ~ 1046
150 글레멘스 2세 Clemens II 1046 ~ 1047
151 다마소 2세 Damasus II 1048
152 레오 9세 S. Leo IX 1049 ~ 1054
153 빅톨 2세 Victor II 1055 ~ 1057
154 스데파노 9세 Stephanus IX (X) 1057 ~ 1058
베네딕도 10세 Benedictus X 1058 ~ 1059
155 니콜라오 2세 Nicolaus II 1058 ~ 1061
156 알렉산델 2세 Alexander II 1061 ~ 1073
호노리오 2세 Honorius II 1061 ~ 1071/1072
157 그레고리오 7세 S. Gregorius VII 1073 ~ 1085
글레멘스 3세 Clemens III 1080 ~ 1100
158 빅톨 3세 B. Victor III 1086 ~ 1087
159 우르바노 2세 B. Urbanus II 1088 ~ 1099
160 파스칼 2세 Paschalis II 1099 ~ 1118
테오도리코 Theodoricus 1100 ~ 1102
알베르토 Albertus 1102
실베스텔 4세 Silvester IV 1105 ~ 1111
161 젤라시오 2세 Gelasius II 1118 ~ 1119
그레고리오 8세 Gregorius VIII 1118 ~ 1121
162 갈리스도 2세 Calixtus II 1119 ~ 1124
163 호노리오 2세 Honorius II 1124 ~ 1130
첼레스티노 2세 Coelestinus II 1124
164 인노첸시오 2세 Innocentius II 1130 ~ 1143
아나글레토 2세 Anacletus II 1130 ~ 1138
빅톨 4세 Victor IV 1138
165 첼레스티노 2세 Coelestinus II 1143 ~ 1144
166 루치오 2세 Lucius II 1144 ~ 1145
167 에우제니오 3세 B. Eugenius III 1145 ~ 1153
168 아나스타시오 4세 Anastasius IV 1153 ~ 1154
169 하드리아노 4세 Hadrianus IV 1154 ~ 1159
170 알렉산델 3세 Alexander III 1159 ~ 1181
빅톨 4세 Victor IV 1159 ~ 1164
파스칼 3세 Paschalis III 1164 ~ 1168
갈리스도 3세 Calixtus III 1168 ~ 1178
인노첸시오 3세 Innocentius III 1179 ~ 1180
171 루치오 3세 Lucius III 1181 ~ 1185
172 우르바노 3세 Urbanus III 1185 ~ 1187
173 그레고리오 8세 Gregorius VIII 1187
174 글레멘스 3세 Clemens III 1187 ~ 1191
175 첼레스티노 3세 Coelestinus III 1191 ~ 1198
176 인노첸시오 3세 Innocentius III 1198 ~ 1216
177 호노리오 3세 Honorius III 1216 ~ 1227
178 그레고리오 9세 Gregorius IX 1227 ~ 1241
179 첼레스티노 4세 Colestinus IV 1241
180 인노첸시오 4세 Innocentius IV 1243 ~ 1254
181 알렉센델 4세 Alexander IV 1254 ~ 1261
182 우르바노 4세 Urbanus IV 1261 ~ 1264
183 글레멘스 4세 Clemens IV 1265 ~ 1268
184 그레고리오 10세 B. Gregorius X 1271 ~ 1276
185 인노첸시오 5세 B. Innocentius V 1276
186 하드리아노 5세 Hadrianus V 1276
187 요한 21세 Joannes XXI 1276 ~ 1277
188 니콜라오 3세 Nicolaus III 1277 ~ 1280
189 마르티노 4세 Martinus IV 1281 ~ 1285
190 호노리오 4세 Honorius IV 1285 ~ 1287
191 니콜라오 4세 Nicolaus IV 1288 ~ 1292
192 첼레스티노 5세 S. Coelestinus V 1294
193 보니파시오 8세 Bonifatius VIII 1294 ~ 1303
194 베네딕도 11세 B. Benedictus XI 1303 ~ 1304
195 글레멘스 5세 Clemens V 1305 ~ 1314
196 요한 22세 Joannes XXII 1316 ~ 1334
니콜라오 5세 Nicolaus V 1328 ~ 1330
197 베네딕도 12세 Benedictus XII 1334 ~ 1342
198 글레멘스 6세 Clemens VI 1342 ~ 1352
199 인노첸시오 6세 Innocentius VI 1352 ~ 1362
200 우르바노 5세 B. Urbanus VI 1362 ~ 1370
201 그레고리오 11세 Gregorius XI 1370 ~ 1378
202 우르바노 6세 Urbanus VI 1378 ~ 1389
글레멘스 7세 Clemens VII 1378 ~ 1394
203 보니파시오 9세 Bonifatius IX 1389 ~ 1404
베네딕도 13세 Benedictus XIII 1394 ~ 1423
204 인노첸시오 7세 Innocentius VII 1404 ~ 1406
205 그레고리오 12세 Gregorius XII 1406 ~ 1415
알렉산델 5세 Alexander V 1409 ~ 1410
요한 23세 Joannes XXIII 1410 ~ 1415
206 마르티노 5세 Martinus V 1417 ~ 1431
글레멘스 8세 Clemens VIII 1423 ~ 1429
207 에우제니오 4세 Eugenius IV 1431 ~ 1447
펠릭스 5세 Felix V 1439 ~ 1449
208 니콜라오 5세 Nicolaus V 1447 ~ 1455
209 갈리스도 3세 Calixtus III 1455 ~ 1458
210 비오 2세 Pius II 1458 ~ 1464
211 바오로 2세 Paulus II 1464 ~ 1471
212 식스토 4세 Sixtus IV 1471 ~ 1484
213 인노첸시오 8세 Innocentius VIII 1484 ~ 1492
214 알렉산델 6세 Alexander VI 1492 ~ 1503
215 비오 3세 Pius III 1503
216 율리오 2세 Julius II 1503 ~ 1513
217 레오 10세 Leo X 1513 ~ 1521
218 하드리아노 6세 Hadrianus VI 1522 ~ 1523
219 글레멘스 7세 Clemens VII 1523 ~ 1534
220 바오로 3세 Paulus III 1534 ~ 1549
221 율리오 3세 Julius III 1550 ~ 1555
222 마르첼로 2세 Marcellus II 1555
223 바오로 4세 Paulus IV 1555 ~ 1559
224 비오 4세 Pius IV 1559 ~ 1565
225 비오 5세 S. Pius V 1566 ~ 1572
226 그레고리오 13세 Gregorius XIII 1572 ~ 1585
227 식스토 5세 Sixtus V 1585 ~ 1590
228 우르바노 7세 Urbanus VII 1590
229 그레고리오 14세 Gregorius XIV 1590 ~ 1591
230 인노첸시오 9세 Innocentius IX 1591
231 글레멘스 8세 Clemens VIII 1592 ~ 1605
232 레오 11세 Leo XI 1605
233 바오로 5세 Paulus V 1605 ~ 1621
234 그레고리오 15세 Gregorius XV 1621 ~ 1623
235 우르바노 8세 Urbanus VIII 1623 ~ 1644
236 인노첸시오 10세 Innocentius X 1644 ~ 1655
237 알렉산델 7세 Alexader VII 1655 ~ 1667
238 글레멘스 9세 Clemens IX 1667 ~ 1669
239 글레멘스 10세 Clemens X 1670 ~ 1676
240 인노첸시오 11세 Innocentius XI 1676 ~ 1689
241 알렉산델 8세 Alexader VIII 1689 ~ 1691
242 인노첸시오 12세 Innocentius XII 1691 ~ 1700
243 글레멘스 11세 Clemens XI 1700 ~ 1721
244 인노첸시오 13세 Innocentius XIII 1721 ~ 1724
245 베네딕도 13세 Benedictus XIV 1724 ~ 1730
246 글레멘스 12세 Clemens XII 1730 ~ 1740
247 베네딕도 14세 Benedictus XIV 1740 ~ 1758
248 글레멘스 13세 Clemens XIII 1758 ~ 1769
249 글레멘스 14세 Clemens XIV 1769 ~ 1774
250 비오 6세 Pius VI 1775 ~ 1799
251 비오 7세 Pius VII 1800 ~ 1823
252 레오 12세 Leo XII 1823 ~ 1829
253 비오 8세 Pius VIII 1829 ~ 1830
254 그레고리오 16세 Grogorius XVI 1831 ~ 1846
255 비오 9세 Pius IX 1846 ~ 1878
256 레오 13세 Leo XIII 1878 ~ 1903
257 비오 10세 S. Pius X 1903 ~ 1914
258 베네딕도 15세 Benedictus XV 1914 ~ 1922
259 비오 11세 Pius XI 1922 ~ 1939
260 비오 12세 Pius XII 1939 ~ 1958
261 요한 23세 Joannes XXIII 1958 ~ 1963
262 바오로 6세 Paulus VI 1963 ~ 1978
263 요한 바오로 1세 Joannes Paulus I 1978
264 요한 바오로 2세 Joannes Paulus II 1978 ~ 2005
265 베네딕도 16세 Benedictus XVI 2005 ~ 2013
266 프란치스코 Franciscus 20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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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hey Network Architecture (JNA) 최종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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