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론
인간이 인식하는 근거는 오로지 경험뿐이라는 인식론
empiricism

유럽 철학의 성격은 크게 경험론empiricism과 합리론rationalism으로 구분된다. 이러한 대립이 크게 부작된 것은 근대에 이르러서이지만, 그 본원은 이미 고대 희랍에서부터 발견된다. 소크라테스와 소피스트들 사이의 다툼에서부터 경험론과 합리론의 장대한 대립과정을 엿볼 수 있다. 소크라테스는 영원불변의 참된 진리를 주장했지만 소피스트들은 이런 진리를 부정한다. 모든 것은 인간의 경험에 따라 상대적인 것으로 판별될 뿐이다. 프로타고라스는 “인간이 만물의 척도”라고 설파했다.

본래 경험론은 앎의 문제를 다루는 인식론의 문제이지만 고대의 경험론은 존재론적 측면이 강했다. 통상 경험론이라고 하면 근대 이후의 인식론 차원의 주장들을 가리킨다.

근대의 경험론은 주로 영국을 무대로 펼쳐졌다. 베이컨F. Bacon, 로크J. Locke, 버클리G. Berkeley, 흄D. Hume은 영국 경험론의 4대 천왕이다.

베이컨은 소박한 차원에서 경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가 강조한 것은 귀납법이다. 개별적인 경험적 사실들을 통해 과학적 지식을 쌓을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도대체 얼마만큼의 경험을 쌓아야 그것이 지식이 되는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초인적인 여성 편력을 자랑하는 바람둥이도 “여자를 잘 모르겠다.”라고 말하는 걸 보면 경험의 축적이 곧바로 지식이 되지는 않는가 보다.

로크는 ‘타불라 라사tabula rasa, 백지‘를 내세워 경험론을 주장했다. 인간이 지식을 쌓아가는 것은 백지에 그림을 그리는 것과 같다. 이미 알고 있는 것은 없다. 데카르트R. Descartes가 말한 생득관념生得觀念, innate ideas, 즉 태어나면서부터 타고난 관념이라는 것은 없다. 모든 관념은 태어난 후 얻는다. 습득관념만 있을 뿐이다.

그러나 로크의 경험주의 또한 한계가 뚜렷하다. 그는 사물들의 성질을 제일성질primary quality과 제이성질secondary quality로 구분한다. 제일성질이란 사물 자체의 성질로서 누구나 동일하게 받아들이는 성질이며, 제이성질은 사람들마다 서로 다르게 느끼는 주관적 성질이다. 그런데 제일성질의 내용은 로크의 경험론이 내세우는 전제에 위배된다. 로크에 따르면 우리가 받아들이는 것은 사물에 대한 경험들일 뿐인데, 제일성질이라는 것은 사물 자체에 있는 고유한 성질로서 이미 우리의 경험 이전부터 정해진 것이기 때문이다. 로크는 영국 경험론을 본격적으로 펼쳐간 인물이지만 그의 이론에는 이처럼 근본적인 모순점이 있었다.

버클리는 매우 관념적인 측면에서 경험론을 전개한다. 그는 우리가 받아들이는 것은 경험 뿐이라고 주장하면서 일체의 외적 실재reality를 부정한다. 로크는 제일성질과 제이성질로 사물의 성질을 구분해 제일성질만큼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라 보고자 했다. 그러나 버클리는 아예 제일성질의 객관성 자체를 부정한다. 사물이 있다는 생각 자체가 경험의 산물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막무가내로 모든 사물이 완전히 없다고 본 것은 아니다. 사물이 있기는 있되 그 사물의 성질은 우리의 경험을 통해 비로소 확인된다고 보았던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직접 경험하지 못하는 일체의 것들은 완전히 존재의 측면에서 배제된다.

그러나 우리가 경험하지 못하는 것들이라고 해서 정말로 존재 자체가 부정되어야 하는 걸까? 고래를 한 번도 못 본 사람에게는 고래가 없는 것이 되는 건가? 아마존 원시부족을 한 번도 못 본 사람에게는 아마존 원시부족이 없는 것일까? 물론 그렇지는 않다. 그렇다면 이런 문제는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버클리는 이런 난점을 극복하기 위해 신God을 도입한다. 아니, 애초에 그의 경험론은 신학적 믿음에서부터 출발한다. 우리가 한 번도 고래를 직접 경험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신은 고래를 경험했다. 따라서 신의 관념에 의해 고래는 존재한다고 버클리는 주장한다. 모든 지식을 경험에서 찾아야 한다고 호기롭게 나섰지만, 결과는 어처구니없게 신학적 교설이 되어버린다.

경험론의 선배들이 이런저런 모순에 봉착한 것과 달리 흄은 대단히 엄격하고 극단적으로 경험론을 전개한다. 그가 내세운 방법은 바로 회의주의skepticism이다. 그는 경험을 통해 얻는 지각perception을 인상impression과 관념idea으로 나눈다. 인상이란 우리가 사물을 통해 받아들이는 직접적인 지각을 말하며, 관념은 이런 인상을 통해 형성된다.

그런데 직접적 인상을 통해 형성되는 우리의 관념은 늘 부정확하다. 눈을 감은 채 상자 안의 물건이 무엇인지를 맞히는 게임을 해보면, 우리의 직접적 인상을 통해 형성되는 관념이 얼마나 부정확한지 알 수 있다.

여기서 더 나아가 흄은 사태들 사이의 인과관계causality까지 부정한다. 바람이 불고 흙먼지가 일어난다고 해서 바람이 흙먼지의 원이이라고 볼 수 없다. 두 현상 사이에 필연적 인과관계가 있다고 여기는 것은 단지 관념이 일이킨 착각에 불과한 것이다. 따라서 과학적 진리라는 것도 인정될 수 없다. 단지 개별적 사실들과 이에 대한 경험들만이 있을 뿐이다.

흄에 이르러 경험주의는 이론적 극단에 도달했다. 더 이상의 경험주의는 없다. 그러나 흄의 경험주의는 회의주의라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한계를 갖는다. 참된 진리를 알 수 없다면, 즉 우리의 지식이 보편적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라면 도대체 어떻게 다른 사람들과 의사를 소통하고 설득하며 공동의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회의주의는 건강한 해답을 제시해주지 어렵다.

흄의 회의주의적 경험론은 칸트I. Kant에게 결정적 영향을 끼친다. 흄이 아니었다면 독일은 여전히 신비주의적 실재론의 질곡을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보편적 진리라는 신기루만 좇던 유럽의 실재론은 흄의 회의주의라는 도전을 맞아 스스로를 비판할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이후 경험론은 프랑스의 합리론 전통에도 강한 영향을 미쳐 계몽주의enlightenment를 탄생시키는 데 영향을 끼친다.

20세기에 들어서 경험론은 언어를 중심으로 하는 철학사조의 흐름 속에서 논리실증주의logical positivism의 사상적 밑거름으로 작용하게 된다. 현대에도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과학철학 분야의 논쟁은 경험론적 토대에서 전개되고 있다.

영국을 중심으로 전개된 겸험론은 대륙의 합리론 전통과 양대 산맥을 이루며 지금도 다양한 논란거리들을 제기하고 있다.

채석용, 『철학 개념어 사전』(서울: 소울메이트, 2010), 3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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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hey Network Architecture (JNA) 최종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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