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학
유교 경전을 신주단지처럼 모시고 탐구하는 교조적 서지학
經學

경학經學은 유교 경전을 진리의 문헌으로 떠받들며 연구하는 학문을 말한다. 근대 이전 대부분의 유교적 이론들은 결국 경학으로 수렴된다. 누가 얼마나 정밀하고 합리적으로 경전을 해석했느냐 여부에 따라 학문적 품격이 갈렸을 뿐 경학을을 넘는 새로운 이론이나 가설들이 제기될 여지는 거의 없었다. 유교를 경학이라고 파악하는 관점에 따르면 유교는 곧 종교이다. 동아시아의 유교주의자들은 경전의 권위를 의심치 않고 묵수墨守하며 개인적 삶과 사회적 운용의 모든 국면에서 경전의 힘을 빌렸다.

주희朱熹는 기존의 십삼경十三經 체제를 무너뜨리고 새롭게 사서오경四書五經 체제를 확립시켰다. 그 과정에서 기존 경전 가운데 몇몇 내용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재편집하기도 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경전 자체에 대한 종교적 신념을 버린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가 집대성한 성리학性理學을 일컬어 신유학新儒學이라고도 하지만, 경학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에서 참신성은 떨어진다.

양명학陽明學의 창시자인 왕수인王守仁은 경학에 지나치게 몰두하는 성리학을 비판하면서 실천의 중요성을 역설했으나 경전의 권위 자체를 의심하는 단계에까지 나가지는 않았다.

경학의 권위를 전면적으로 의심하면서 새로운 유학을 도모한 활동은 19세기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시도되었다. 특히 조선의 최한기崔漢綺는 유교 경전을 총망라한 기념비적인 총서叢書인 사고전서四庫全書 가운데 쓸모없는 부분이 90% 이상이라고까지 단언하면서 경학의 권위를 전면적으로 부정했다.

그러나 최한기는 경학의 권위를 부정하면서도 유교 자체까지 부정하는 단계로 나가지는 않았다. 유교의 핵심적 내용인 인의예지仁義禮智라는 사덕四德과 오륜五倫의 윤리학은 그대로 답습했다. 경전의 힘을 빌리지 않고서도 사덕과 오륜의 가치를 설득력 있게 제기할 수 있으리라고 그는 믿었다. 허나 안타깝게도 그의 시도가 성공적이지는 않았다. 그는 아무런 제자도 길러내지 못했고 현실에 어떠한 기여도 한 바 없다. 이론적 체계 자체도 정합성이 매우 떨어진다.

20세기에 이르러 유교 경전 연구를 믿음의 차원이 아닌 학술적 연구 차원에서 접근하는 시도가 서구를 통해 유입되었다. 최근 『논어』, 『대학』, 『효경』 등에 대한 주석 작업을 활발히 전개하고 있는 김용옥의 노력이 대표적이다. 믿음의 경학이 합리적 탐구의 경학으로 환골탈태하는 과정이다.

채석용, 『철학 개념어 사전』(서울: 소울메이트, 2010), 3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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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hey Network Architecture (JNA) 최종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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