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군은 해군사관학교에서의 장교 양성 과정 외에 장교, 하사관 및 병에 대한 양성 및 보충교육을 실시했다. 해안경비대는 실전의 경험이 있는 하사관을 선발하여 사관후보생 교육을 실시하는 특별교육대(特別敎育隊)를 설치하였다. 1948년 6월 29일 사관후보생 특별교육대의 제1차 교육이 실시되었다. 특별교육대의 교육은 처음에는 병조장(兵曹長)으로서 병과장교로 승진할 수 있는 길을 열고자 설치한 것이었으나 후에는 점차 일보진전하여 특과의 장교를 교육시키는 기관이 되었다. 당시 특과(特科)로는 법무 · 경리 · 군의 · 선박기술 · 정훈 · 항해 · 기관 · 시설 · 병기 · 통신 · 수로 · 기상 등이 있었다.
특별교육대에서 실시하는 교육의 목적은 특과에 해당되는 특기를 가진 인재를 장교로 임명하기 직전에 해군장교로서 필요한 군사지식과 지도능력을 단기간에 교육하여 습득하게 하는 것이었다. 1950년 전쟁 직전까지 제9기까지 배출하였고, 제10기는 교육 중에 있었다.
하사관교육을 위하여 1947년 9월 1일 항해교육대(航海敎育隊)를 비롯하여 기관교육대, 공작교육대, 통신교육대, 위생교육대, 경리교육대, 표지(標識)교육대 등 각 교육대를 학교로 승격시켰다. 당시까지 실시해오던 해군하사관의 교육을 정비하여 기술분야에 치중하는 것과 동시에 각 기능을 세분화시킨 것이었다. 그 후 1949년 11월 포술학교(砲術學校)와 12월 신호학교(信號學校)를 증설하여 해군 간부의 질적 향상을 위한 보수교육을 강화하였다.
사병교육을 위해 설치된 신병교육대(新兵敎育隊)에서는 입대 지원자 중에서 신체가 건강하고 두뇌가 명석한 자를 선발하여 기초학과 교육과 훈련을 실시하였다. 신병교육대에서는 신병들의 소질과 희망을 고려하여 수병(水兵)들을 갑판과(甲板科), 기관과(機關科), 통신과(通信科) 등으로 구분하여 3개월간의 교육을 실시하여 1950년까지 16개 기 6,137명을 배출하였다. 그밖에 간호장교후보생(看護將校候補生) 교육대가 설치되어 1950년까지 2개 기의 장교 27명이 배출되었다.
정부수립 직전까지 설치된 해군의 군사학교는 해군병학교, 항해학교, 기관학교, 공작학교, 통신학교(해안경비대), 위생학교, 경리학교, 표지학교, 통신학교(조선경비대), 군기학교, 보병학교, 자동차학교, 제1훈련학교, 제2훈련학교, 제3훈련학교 등이 있었다.
해군의 부대훈련인 함정편대훈련이 1947년 8월 17일 인천 근해에서 실시되었다. 훈련 지휘는 이희정(李熙晶) 대위가 맡았고, 훈련에는 기함(旗艦) 충무공정을 비롯하여 각 기지에 배속된 함정들이 참가하였다. 묵호기지에서는 ‘강계(江界)’, 포항기지에서는 ‘김해’ · ‘춘천’, 부산기지에서는 ‘개성’, 진해특설기지에서는 ‘충무공’ · ‘광주’ · ‘강릉’, 목포기지에서는 ‘청주’ · ‘진남포’, 인천기지에서는 ‘경주’ · ‘금강산’ 등 여러 함정이 동원되었다.
1949년 8월 16일 인천 외항에서 함정편대훈련이 실시되었다. 이 훈련에서 이희정 중령이 탑승한 기함 509정을 비롯하여 502 · 505 · 506 · 507 · 510 · 512 · 513 · 516정 등 각 함정이 다양한 편대행동과 함포사격을 실시하였다.
해군은 당시 보유하고 있는 함정이 대부분 소해정(掃海艇)이었고, 함정에는 포 · 장비도 없는 점을 고려하여 미국에 원조를 요청했지만 단시일 내에 해결될 전망이 없었다. 이에 1949년 6월 해군은 자체적으로 함정건조기금 갹출위원회(醵出委員會)를 결성하고, 기금을 조성하여 1949년 10월 17일 구잠함(驅潛艦) 1척을 구입하였다. 1950년 4월 10일 진해에 입항한 구잠함은 4월 27일 백두산호(白頭山號, 701艦)로 명명되었다. 정부는 같은 해 5월 제702함, 제703함, 제704함을 추가로 구입하였는데 이들 함정은 6․25전쟁 이후인 7월 14일 진해에 입항하였다.

최초의 전투함 백두산호(PC-701): 백두산호(PC-701)는 우리 해군이 최초로 구입한 전투함으로서 6․25전쟁 기간중 한국 해군의 주력함으로 크게 활약하였다(1949. 10. 17).
이로써 해군은 함포(艦砲)를 장비한 전투함을 보유하게 되었고, 이들이 6․25전쟁 초기에 기함(旗艦)이 되어 해상작전을 수행하면서 제해권을 담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