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국군준비대(朝鮮國軍準備隊)는 광복 이후 귀환한 일본군 출신 장병들이 치안유지를 위해서 1945년 8월 17일 서울 교동초등학교에서 발대식을 가진 귀환장병대(歸還將兵隊)와 그 해 8월 30일 발족한 귀환군인동맹(歸還軍人同盟)을 통합한 것이었다. 총사령에는 학병출신인 이혁기(李赫基)가, 그리고 부사령에는 박승환(朴承煥)이 맡았다.

조선군군준비대: 광복을 맞아 귀환한 장병들을 중심으로 국군준비대가 결성되었고, 1945년 12월 26일에는 중앙학교 강당에서 전국대회가 개최되었다. 미 군정은 1946년 1월 21일 모든 군사단체의 해산령을 내렸다
조선국군준비대는 서울 명동에 본부를 두고 과거 일본군 지원병 훈련소 자리에 훈련소를 설치하여 훈련을 실시하였다. 조선국군준비대는 남한 각도에 지대를 설치하고 60,000여명의 대원을 포섭하여 일제시대 일본군 부대막사인 태릉훈련소에서 15,000명을 훈련시키는 등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조선국군준비대는 광복 이후 설립된 어떤 군사단체보다도 강력한 무장력을 갖추고 있었다. 간부들은 공산당의 전위대인 ‘남한인민항쟁유격사령부(南韓人民抗爭遊擊司令部)’의 역할을 하였다. 조선국군준비대는 김두한(金斗漢)의 대한민청청년대원들의 조직적인 습격을 받고 조직이 분쇄되었고, 여기에 미 헌병대가 김두한 부대의 무장 해제와 함께 국군준비대의 무기를 압수하면서 와해되었다.
조선국군준비대에 속했던 대원들은 미군정 당국에 의해 군사단체가 해산된 이후 남로당의 지시에 의해 많은 인원이 경비대를 창설할 때 사병으로 들어오게 됨으로써 결국 제6연대 및 제14연대 반란의 불씨 역할을 하게 되었다. 국군준비대 출신으로 군에 침투한 대표적인 인물로는 김종석(金鍾碩), 하재팔(河載八), 표무원(表武源) 등이 있었다.